3부: 메시지

그 너머의 책임

by 영업의신조이

8화.

죄의식


예배가 끝난 뒤, 남자친구가 문자로 물었다.

“점심? 시내에서 만나서, 바로 혼수 보러 가자.”

그는 언제나 약속에 정확한 사람이었고, 그 정확함은 늘 서현에게 안정을 주곤 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정확함의 선명함이 오히려 불안의 날을 드러내는 칼처럼 느껴졌다. 어제의 황금열쇠 이벤트 이후, ‘딸깍’ 하는 소리가 그녀의 귓속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금속과 금속의 맞물림은 단순한 잠금과 해방의 절차가 아니라, 어떤 세계가 다른 세계와 연결되는 힌지 같았다. 힌지가 한 번 움직일 때마다 그녀의 근육과 관절이 미세하게 달라지는 듯했다.


혼수점을 도는 내내 두 사람의 대화는 사소한 데서 빗나갔다. 식기 코너 앞에서, 숟가락의 곡선 모양 때문에 의견이 갈렸다. 남자친구는 머리가 둥글고 깊은 숟가락이 밥이나 국을 떠 넣을 때 중심이 잡혀 좋다고 했다. 그러나 서현은 앞이 약간 뾰족해야 입술 사이로 매끄럽게 빠져나온다고 주장했다. 그녀가 자라온 집에는 늘 그런 숟가락이 있었다.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입에 닿는 감촉이 부족해.”

서현은 웃으며 답했다.


“나는 그 부족함이 좋아. 밥알과 국이 모여 흘러가는 방향이 분명해서.”


가벼운 말처럼 흘렀지만,

그 순간 서현은 처음으로 깨달았다. 자신의 감각이 몸 안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손목의 각도와 혀의 습관이 어떻게 남자친구와 다르게 자라왔는지를. 숟가락 가게 안은 빛보다 어둠이 먼저 감싸고 있었다. 진열대 위에 놓인 숟가락과 젓가락 세트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제각기 다른 운명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서현은 유리 진열장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나무 숟가락의 뾰족한 앞부분을 바라보다, 그녀의 시선은 현실을 떠나 있었다. 손끝에 닿는 나무 숟가락의 매끄러움은 곧 벌목의 메아리로 변했다.


아프리카 북부 코트디부아르 지역에서 불법으로 벌목된 나무들이 잘려나가며 쓰러지는 광경이 머릿속을 강타했다. 뿌리째 뽑혀나간 대지의 울음, 무너져 내린 나무의 신음은 아무도 듣지 못했지만, 서현만은 그것을 뼈마디처럼 선명히 느꼈다.


남자친구는 그녀의 침묵이 이해되지 않았다.

숟가락 하나쯤 고르면 될 문제라 여겼다. 그러나 서현에겐 그 단순함이 무겁게 다가왔다. 숟가락 하나에도 지구의 고통이 배어 있다는 사실이 가슴을 조였다. 결국 나무 숟가락을 집어 들며 숨을 몰아쉬었을 때, 나뭇결 사이로 스며든 세월과 잘려나간 숲의 상흔이 손등으로 번져왔다.


지친 그녀를 보며 남자친구는 알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그는 달래려는 듯 말했다.


“밥이나 먹자.”


근처 식당으로 들어서자 또 다른 고통이 밀려왔다. 테이블 위 숟가락과 젓가락이 모두 나무였다. 수십, 수백 그루의 나무들이 잘려나 이런 도구로 변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서현은 밥 한 숟갈도 삼키지 못했다. 눈앞의 음식은 풍요가 아니라 죄의 증거였다.


남자친구는 여전히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에게 식당은 배를 채우는 곳, 도구는 도구일 뿐이었다. 애써 웃으며 말했다.


“그냥 밥 먹고, 커피 한잔하자.”


그러나 카페 앞에서 서현의 눈은 또다시 흔들렸다.

줄을 선 사람들,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커피컵, 하얀 뚜껑과 투명한 빨대들. 모든 것이 플라스틱으로 덮여 있었다.


한때는 무심히 지나쳤던 풍경이 이제는 지구가 몸부림치는 장면으로 보였다. 바다 위를 떠다니는 쓰레기 섬, 플라스틱을 삼키고 죽은 새들의 사체 사진이 폭발하듯 겹쳐졌다. 서현은 그 자리에 서서 눈물을 흘렸다. 아무도 모르게, 그러나 분명히. 어깨의 떨림은 곧 가이아의 울음이었다.


남자친구는 당황했지만, 그녀를 달리 데려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케이크 하우스로 향했으나 그곳도 다르지 않았다. 작은 디저트조차 플라스틱 포크와 나이프, 비닐 포장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달콤해야 할 케이크 향은 그녀에겐 고통의 냄새로 변했다. 지쳐가는 그녀를 부축하며 남자친구는 집으로 향했다.


도로에 들어서자마자 차의 계기판에 경고등이 켜졌다. 주유소에 멈춰 휘발유를 넣는 순간, 콸콸 쏟아지는 소리가 서현의 귀를 찔렀다. 화석연료가 태어나던 깊은 땅속의 시간, 그것이 불길로 변해 공기를 더럽히는 과정이 선명히 재생됐다. 기름 냄새가 스며들자 그녀는 몸을 떨며 주저앉을 듯 고통스러워했다.


도로 위 수많은 자동차가 뿜어내는 배기가스는 그녀에겐 보이지 않는 독이었다. 창문 너머 흐려진 공기, 스며드는 매연은 그녀의 폐를 조여왔다. 닫을 수도 열 수도 없는 창문 앞에서, 서현은 무력하게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그 눈물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지구가 흘리는 눈물의 조각이었다.


옆에서 핸들을 잡은 남자친구는 한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그녀의 고통이 단순한 기분이 아님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위로는 어설펐다. 현실적 조언과 억지웃음은 오히려 사회 전체의 무감각을 상징하는 듯했다.


같은 차 안에 앉아 있었지만,

두 사람의 세계는 달랐다.


서현은 느끼는 죄의식을 설명할 수도, 감출 수도 없었다. 그녀에게 세상은 더 이상 편안한 일상이 아니었다. 숟가락 하나, 커피 한잔, 자동차 한 대조차 지구를 찢는 칼날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서현은 눈을 감고 속으로 되뇌었다.

“나는 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다.”


그러나 옆의 남자친구 얼굴에는, 그 말이 들리지 않는 이의 표정이 어둡게 드리워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