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존재 관찰 일기

존재와 존재가 만나 하나의 울림을 만들다

by 영업의신조이

05화.

경이로운 존재, 나


"무한한 우주와 확률의 사다리를 건너 도착한 하나의 의식"


우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시작되었다.

기원이라 불리는 그 순간, 빅뱅은 어떤 의도도 없이 터졌고, 그 폭발 안에는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가능성들이 섞여 있었다.

빅뱅이 “일어났을 확률”이라는 질문은 사실 잘못된 질문에 가깝다. 그것은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시간과 공간의 전제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확률 이전의 사건, 계산 이전의 시작. 그 무한한 가능성의 장에서 우주는 태어났고, 그 이후의 모든 것은 연쇄였다.


그 폭발 이후 약 138억 년. 우주는 식어가며 구조를 만들었고, 현재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우주 안에 존재하는 은하의 수는 약 2조 개 이상으로 추정된다. 셀 수 있는 숫자처럼 보이지만, 인간의 감각으로는 거의 무한에 가까운 수다.

그리고 그 수조 개의 은하 중 하나, 아주 평범한 나선 은하, 은하수. 우리는 바로 그 은하의 가장자리에 가깝게 붙어 있는 태양계를 안고 존재한다.


은하수에는 약 2천억에서 4천억 개의 별이 있다. 그 별들 중 상당수는 행성계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지며, 그중 일부는 태양계와 구조적으로 유사할 수도 있다.

그러니 태양계는 특별하지만, 동시에 압도적인 다수 속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다음 단계부터 확률은 급격히 좁아진다.


태양계 안에서, 적당한 거리, 적당한 질량, 적당한 물과 대기, 적당한 자전과 공전을 가진 행성. 우리는 그 행성을 지구라고 부른다. 지구는 우주 전체에서 보자면 먼지에 가까운 크기이고, 태양계에서도 그저 셋째에 불과한 행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은 출현했다. 생명이 출현할 수 있었던 조건은 아직도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그래서 과학은 이 지점에서 종종 침묵하고, 인간은 경외라는 감정 앞에 서게 된다.


지구의 전체 표면적은 약 5억 1천만 제곱킬로미터, 제곱미터로 환산하면 약 5.1 ×10 ¹⁴제곱미터에 달한다. 이 광대한 표면 중 단 1제곱미터를 점유하고 ‘여기에 내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확률은 계산은 가능하지만, 의미로는 거의 표현되지 않는다. 거의 0에 수렴하지만 분명 0은 아닌 값. 이 애매한 값 위에 인류의 역사는 올라타 있다.


그리고 생명은 바다에서부터 시작되었지만, 나는 바다가 아닌 육지의 생명으로 태어났다. 육지 생명이라는 갈림길, 그 안에서도 식물과 곤충, 파충류와 조류, 수많은 포유류의 갈래를 지나 인간이라는 종으로 수렴한다. 진화는 목적 없이 흘렀지만, 그 흐름의 한복판에서 의식이 생겨났다.


그러나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곧바로 ‘내가 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지구에는 약 80억 명의 인간이 살아 있고,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까지 합치면 그 수는 약 1천억 명에 가깝다는 추정이 있다.

그 수많은 인간 중 나는 아시아라는 대륙, 그중에서도 대한민국, 그리고 서울이라는 도시에 태어났다. 대륙의 수, 국가의 수, 도시의 밀도를 하나씩 통과할수록 확률은 체감 불가능한 크기로 축소된다.


그런데도 아직 ‘나’는 등장하지 않는다.


먼저 아버지가 태어나야 했다. 우주의 시작부터 이어진 시간의 흐름을 통과해, 같은 은하, 같은 행성, 같은 시대에 도착해야 했다. 그리고 어머니 역시 동일한 확률의 미로를 지나 같은 지점에 서 있어야 했다. 이 두 존재가 같은 시공간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설명되지 않는 우연이다.


그러나 존재한다고 해서 만나는 것은 아니다. 공간적으로 스쳐야 했고, 시간적으로 엇나가지 않아야 했으며, 무엇보다 감정이라는 계산 불가능한 영역까지 작동해야만 했다. 지나침과 외면과 무관심이 기본값인 인간관계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멈췄고, 선택했고, 청혼이 받아들여지는 지점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야 비로소 생물학이라는 또 하나의 미로가 시작된다. 한 번의 사정에서 배출되는 수억에서 수십억 개의 정자 중 단 하나가 난자에 도달한다. 그러나 결합이 끝이 아니다. 46개의 염색체가 만들어내는 조합의 경우의 수는 수십조, 혹은 수백조를 넘는다. 그 수많은 가능성 중 대부분은 사라지고, 일부는 형태를 갖추지 못하며, 아주 소수만이 심장의 첫 박동에 도달한다.


이 경우에만,

하나의 심장이 뛰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박동은 지금까지 멈추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이 모든 확률의 사슬을 통과한 결과가 바로 지금 여기 존재하는 ‘나’다. 이것을 단순한 우연이라 부르기에는 과정이 지나치게 치밀하고, 필연이라 부르기에는 너무나 우발적이다. 그래서 인간은 이 지점을 경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모든 계산의 끝에서, 이 모든 확률의 미로를 통과한 뒤에야 나는 비로소 하나의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이렇게 경이롭게 태어난 내가, 지금 눈앞의 타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하는 질문 앞에서 말이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불편해지는 얼굴,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다고 밀어냈던 이름.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 사람 역시 나와 같은 경로를 통과해 여기 도착해 있다. 같은 우주의 시작을 공유하고, 같은 은하의 회전을 지나, 같은 생명의 사다리를 올라 이 자리에 서 있는 존재였다.


내가 원망했던 사람도, 나를 괴롭혔던 그 사람도, 실은 우주가 허락한 단 한 번의 결과였다는 사실 앞에서 미움의 감정은 서서히 방향을 잃어간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지금 이 생에서 우연히 곁에 온 사람, 숨과 체온을 나누는 사람. 그 사람 역시 이 모든 확률을 통과해 지금 내 앞에 서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사건이 된다.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우주의 배열이 지금 이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나는 그 사람을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이제 나는 안다.

내가 고맙다고 말해야 할 사람이 있고,

미안하다고 사과해야 할 사람이 있으며,


사랑한다고 말해야 할 시간은 아직 남아 있고,

아직 말하지 못한 말들은 살아 있는 오늘 안에 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지금이라는 시간이 여기 주어져 있다는 사실도 말이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존재들 하나하나가,

나와 동일한 확률의 무게를 견디고 여기까지 도착한

경이로운 결과라는 사실을.


이제 나는 이 세계를 조금 다른 눈으로 바라본다.

나만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이 순간 나를 둘러싼 존재들 모두가 이미 충분히 특별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여기서,

행복하다.


우주가 나를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 우주 속에 함께 서 있는 존재들의 소중함을

비로소 인지했기 때문이다.


경이로운 존재, 나.

그리고

경이로운 존재, 너.


이 사실을 알아차린 지금,

나는 충분히 살아 있다.

그리고 나는 당신 앞에 서 있다.



나와너 by 영업의신조이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