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do I live?

나는 왜 사는가? 명상일기 시즌1. 05

by 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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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당신이 주신 귀한 생명 잘 빌려 쓰고 언젠가는 꼭, 돌려드리겠습니다 ㅡ



나의 작업실 택호는 꼬방이다. (꼬마방) (고방/창고의 된소리) (원고/글 쓰는 방)의 의미를 담았다. 집에서 도보 10분 거리의 건물 옥상에 두 평 반짜리다. 나머지 공간의 주인공 블루베리 30주와 각종 채소, 약차류 덩굴 식물을 키우며 나만의 멍 때리기에 안성맞춤으로 설계된 하늘 정원이다. 서울에서 음악학원을 정리하고 고양시민으로 입적한 지도 30년을 훌적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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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꼬방의 옥상 정원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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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7. 8. 흐림


목요일에는 청계천 복개공사 현장앨 가보았다. 장마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객기도 발동해서 하루전부터 단단히 벼르고 베낭을 메고 을지로 3가에서 내려 복개공사 현장을 따라 동대문 쪽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올망졸망 공구상들이 밀집되어 있는 앞을 지나 조명등이 즐비한 청계4가를 지나 청계천이 시작되는 기점을 돌아 다시 을지로에서 방향을 틀어 종로5가를 거슬러 내려오다. 도로변에서 구렁이 쇼를 하는 약장수, 자라의 효능을 외쳐대는 자라쇼, 장어를 들통에 담아 파는 노점상들, 몰려드는 구경꾼 사이를 비집고 나도 모르게 그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는게 아닌가,


탑골 공원에 이르면서 거리는 점점 희끗한 노인들로 가득찼고, 70년대의 파고다 공원 근처에는 학원가로 유명했고 젊음의 거리였다. 나도 한 때 70년 초반 그 거리의 학원가를 누비며 중등교사 자격 검정시험을 치렀고 사립학교 국어교사에 채용되어 4년간 근무하게 되었다.


결혼과 출산으로 퇴직하게 된 당시의 관행은 여성 은행원이나 사립하교 여교사는 결혼과 동시에 퇴직을 해야 했다. 그럼에도 출산 때까지 학기를 마무리할 수 있게 배려해 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떠나왔다. 공직에 근무하는 남편 만으론 버거울 거란 당연함과 이미 각오한 바대로 나는 또다른 미래를 위해 혼수 대신 피아노를 샀다.

그동안 꾸준히 출근 길 새벽, 개인렛슨으로 다져 온 부족한 실력이지만 용기를 내어 단칸 방에서 두칸짜리를 겨우 얻어 갖 백일을 치른 아기를 들쳐 없고 피아노 개인 랫슨을 시작했다.


그동안 공교롭게도 입덧을 안 하는 바람에 연년생 삼형제를 출산하게 되었고. 답은 정해졌다. 전문대 음악과에 입학해서 실기교사 자격증이라도 취득해야 관인학원 허가를 받을 수 있으니. 그 꿈을 8년 만인 85년도에 이루었고 학원을 운영하면서 또 다시 바이올린 개인렛슨을 받으며 92년까지 열정을 불태우며 서울 음악 CONSER VATORY를 졸업했다.


종각에 다달았을 때 삼성증권 건물이 새단장을 하고 운치있는 쉼터로 변신해 있었다.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숨을 고르고 나서 광화문 교보문고로 향했다. 내 탐구의 몸부림은 변화에 적응하고 새로움을 창출해 내는 것이며. 살아 남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나는 작가의 꿈을 접을 수가 없었다 일찍이 고향을 떠나 처음 상경했을 때의 두려움과 미약함을 오직 글을 쓰며 감래하고 의지하는 또 다른 나, 나의 아바타를 사랑하는 것에 소홀하지 않았기에 오늘에 이르렀다.


1960년 후반 처음 서울역에서 길음동에 다달았을 때 미아리에서 수유리로 넘어가는 도로를 확장하기 위해 미아리 "눈물 고갯"길을 허물고 확장하던 시절이였으니, 4대문 안에서는 당연히 활개치며 거리를 누볐던 아득한 간극의 세월을 어찌 잊을 수가 있으랴.


**메모란 // 일상의 소소한 감동과 시류의 기사 등을 캡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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