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사는가? * 명상일기 시즌 1. 20
ㅡ 당신이 주신 귀한 생명 잘 빌려 쓰고 언젠가는 꼭, 돌려드리겠습니다 ㅡ
작년 이맘 때는 느닷없이 행운목 꽃이 두 대나 피어서 경이한 마음으로 설래며 지냈다. 세상에는 영원히 머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한 가문의 세도가 무너지면 세대관도 지각 변동을 일으키게 되나 보다.
추석을 일주일 앞둔 지난해 아주버님의 돌연사는 내 뇌리 속에서 오래도록 떠나지 않았다. 훤칠한 미모에 누구보다 당당하고 리더십이 강했던, 문중 어르신이나 대소가에서 무결점 리스크로 존경받으며 화목했던 가장이었다.
딸 셋, 막내아들, 아직은 한창 성장하고 있었을 사 남매를 두고 어찌 눈을 감으셨을까? 고향 가기가 겁 날 정도로 산천과 동네가 텅 빈 것 같았다. 부득이 형님은 포항 시내로 나와서 반친가게를 개업했고. 본가는 서예를 하는 분에게 아주 후한 가격으로 당분간 전세를 놓았다.
추석 차례를 지낸 형제들도 아직은 말 꺼내는 게 뜨거운 감자다. 산 입에 거미줄 치겠냐 마는 그런대로 살아지기는 하겠지만, 조카들이 성인 계열에 진입하긴 했어도 지금부터 각자도생의 길을 찾아야 하니 여간 안쓰러운 일이 아니다. 형제들은 사는 게 거의 도토리 키 재기로 공직자이다 보니,
ㅡ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읽는 다면 결국 반쪽짜리 인생을 살 수밖에 없으리라 ㅡ
결국 시 어머니의 거처문제로 형제간 의견 조율로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5형제 둘째이지만 장남 역할을 맡아야 하는 처지에 먼저 제안을 냈던 것이 나였다. 아파트 주변에 원룸을 얻어서 날마다 오며 가며 모시겠다고 했더니 바로 첫째 시동생이 사생결단 반대 비난이 쏟아졌다.
후속으로 "그럼 도련님 집에서 먼저 모셔보시고 그다음 제가 모실게요' 했더니 묵묵부답이다. 그날은 허사로 돌아갔다 며칠 뒤 여러 가지 아이디를 총 동원해서 우리 동네 가까운 숲 속 요양원에 모시는 제안을 했다.
이번에는 브라질에 파견근무 나간 막내 시동생까지 합세해서 극구 반대란다. "그럼 전업주부도 아닌 제가 다 맡을 수는 없으니 기발한 대안이 있으시면 추후 연락 주세요" 하고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남편도 덩달아 벌떡 일어나서 따라 나오고 말았다.
부모 자식 간이란 무엇이며,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내야 하는가?
물질이란 무엇이기에 서로 상처 주고 상처받으며 이해관계에 예민해지고 오해하고 증오하고, 아무것도 관심 갖고 싶지 않은 것들. 내 개인적인 내면의 세계도 혼란스럽다. 오랜 기간 방황하고 시나브로 흐르는 시간들이 안타까울 뿐,
인간들은 변화를 바라면서도 막상 어떤 변화와 부딪치면 두렵거나 짜증스러워하며 외면하려고 발버동 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세상 모든 것들은 늘 변하고 있다. 또 스스로 변해야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내가 살아내야 할 황혼의 무게도 녹록지 않다. 57세의 나이로 탈없이 둘째와 셋째가 학업을 마치고
알뜰하게 가정을 이루고 살기만 한다면 나만의 평온한 일상이 보장될 수 있을까?
오랜 궁리 끝에 결국 홀로 남은 형님이 그 책임을 맡아 주선해 주셨다. 시부모님 살아계실 때 이미 재산은 장남에게만 몰아주기로 하고 서울로 나간 형제자매 모두는 포기 각서를 제출했고 마무리 지은 상태여서 형님이 순리에 따르신 것 같아 감사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나 보다 세 살이나 어린 형님이 결단해 주신 것에 존경심이 느껴졌다. 따듯한 온기로 모아진 가족애가 다시 발동되어 어머님을 고향 포항 근처 전문 요양병원에 거처를 정하게 되었다. 문중에서도 형님의 처신에 화답하며 가족이 한 마음으로 화해한 것에 칭찬과 위로를 해주셨다.
대소사 때마다 서울에서 포항으로 문안드리러 갈 때면 침상에서 나무젓가락으로 한 자 한 자 짚어가며 성경 구절을 읽으시던 모습, 그 온기와 사랑으로 지내시다가 아름다운 삶을 슬기롭게 완성하시고 영면에 드셨다.
< 지인, 김혜원 님의 수채화 "나팔꽃"을 인용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