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 이제 나는 말할 수 있다.
나는 왜 사는가? 명상일기 I can speak now. 시즌1 0
어쩌면 "명상일기 시즌1"은 춥고 어두운 긴 터널을 건너며 고단했던 시간들이 고뇌 속에 새겨진 저의 보석들을 캐내는 작업이었지도 모릅니다. 작가님들의 따듯한 배려와 격려로 성원해 주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용기 있게 잘 살아낼 희망의 끈을 주셨으니 오래도록 그 마음 간직하며 열심히 살아내겠습니다.
좀처럼 잘 뭉쳐지지 않는 이 모래 알갱이들이 파도의 부드러운 혀 끝으로 이토록 멋지고 아름다운 무늬를 짜낼 수 있다니? 경이롭기 그지없다. 학창 시절 고등학교 3학년 때, 단임 선생님이 저에게 가끔 심부름을 시켜놓고 그 결과를 보고하러 교무실로 가면 묘한 표정을 지으며 심부름과 상관없는 것으로 나무라기 시작하셨다.
"야, 너네들은 한놈 한 놈씩 떼어놓고 보면 다 쓸만한 놈들이 도대체 모래알처럼 뭉치는 꼴을 못 봐! " 정치경제(정경) 과목을 담당하신 선생님은 성격이 급하고 다혈질 스타일이라 학생들에게도 늘 직설적으로 야단을 칠 때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눈치가 빠른 학생들은 가급적 부딪지 않으려고 슬그머니 피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단임 선생님을 피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학급일을 시키거나 사택으로 심부름을 보내면 당연히 가야 하는 입장이었다.
한 번은 사택 심부름을 갔는데 우리 반 학생이 거실에서 나왔다. 좀 놀란 표정으로 웬일이냐고 물었더니, 선생님의 초등학교 3학년 아들 학업을 도와주고 있다고 했다. 내가 좀 의아한 표정을 지으니 "얘, 선생님, 집에서는 절대 그렇지 않아 친절하시고 인정이 많으셔" 하는 것이었다.
수십 년을 지나 어느 날 해변에 모래가 만들어 낸 장면을 바라보며 감탄에 앞서 그 고약한 선생님을 떠올리게 된 것에 기분이 떨떠름했다. "챗! 그렇게도 쓸모 있다면서 채근보다 칭찬을 해 주셨으면 어땠을까? " 글을 쓰면서 세상을 많이 알아가고 삶에 대한 진정 어린 배려와 소신을 가늠할 수 있는 나로 거듭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모든 독자님들 읽어주시고 위로해주심에 감사드리며 새해에도 건강하고 따뜻한 이웃으로 남고 싶습니다.후속 연재는 최근에 다녀 온 이집트 여행기를 준비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다시 뵙기를 기대합니다.
25년 마지막 날이었다. 저녁 준비를 하려는데 갑짜기 폰 벨이 길게 울렸다. 물 묻은 손으로 급히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누구신가요?" 나 유병민 인데...." 약간 허스키한 남자 목소리가 경쾌하게 들렸다. 잠시 머뭇 거리다가 "ㅎㅎ선생님 혹시 동창인가, 후배인가 했어요. 그럼 널러간다. 선생님 맞으시죠?" 그래 맞어, ㅎㅎ 목소리를 들으니 바로 알겠네. 네 선생님 저 정숙입니다. 정말 오랜만 이시네요~"
잠시 침을 꼴깍 삼키는 사이 몇개의 물음표가 뇌리를 스치는 찰라에 "니네들 잘 살아 줘서 고맙다." 순간, 가슴이 먹먹해서 울컥하는 바람에 한동안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니네들이라니" 이 나이에, 그렇게 불러줄 수 있는 분이 계시다니! 52년이란 세월이 어디론가 도망처버린 듯 했다. 선생님은 들뜬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셨다.
올 한해 마지막 장식을 누구에게 전화할까 궁리 끝에 여러 학교를 근무해 봤지만 첫 발령지 DH상고 야간 반과 수업(화학)했던 추억이 많이 생각나서 몇명에게 연락해 봤더니 다들 잘 살고 있더라고 하셨다. 그 터프하시고 순수 열정파 총각( 선생님을 기억할 수 있는 나의 키워드는 딱, 하나, 뿐이다. 선생님 아직도 널러 가시나요? 했더니
"널러 가기만 하간. 굴러가유~ 하면. 벌써 굴렀다 왔시유 하던데 ㅎㅎ" 격의 없는 너스레에 빠져 한참을 웃다 보니 정작 선생님의 전번을 저장하려는데 도무지 성함이 기억이 나질 않았다. 찹찹한 마음으로 졸업 앨범을 찾아 겨우 저장하면서. 잊혀져가는 추억사진도 꺼내 보며 참 많이도 숨가쁘게 달려온 내 삶의 성적표에 위로와 응원을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