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 클레오 파트라 여왕 일생기. 08
클레오파트라 7세(기원전 69-30)는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마지막 파라오로, 뛰어난 지성과 매력으로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를 사로잡아 이집트 독립을 지키려 했으나 로마의 옥타비아누스에게 패배, 자결하며 고대 이집트의 300년 왕조를 마감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여왕이다.
그리스계 마케도니아 혈통으로, 여러 언어에 능통하고 정치적 수완이 뛰어나 이집트의 위기를 극복하려 노력했으나 결국 로마 제국에 흡수되는 비극적 최후를 맞이했다.
클레오 파트라의 석상을 박물관에서는 너무 인파가 복잡해서 자세히 볼 수 없었다. 그 아쉬움이 커서 검색을 하게 되었고, 유럽 여러 국가에서 자기네 나라의 이미지에 맞게 두상이나 흉상을 제작해서 에술품으로 박물관에 소장하고 있다는 것에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버스로 이동하는 시간에 클레오 파트라의 생애에 대해 상세히 해설해 준 가이드 덕분에 각별한 관심을 같게 되었고. 돌아와서도 그냥 떨처버릴 수가 없었다. 마치 성모마리아의 성상이 각 나라의 풍습과 의상 그리고
인종에 따라 제작하는 의미와 맞 닿아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아래와 같이 편집을 하게 되었다. 나는 이번 여행 전에는 클레오 파트라가 유럽사람 인 줄로만 알고 있었기에 더 세심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 나라별 석상 사이로 클래오 파트라의 생애가 이어지고 있어요!
독일의 클레오 파트라 로마의 클레오 파트라
1) 출생과 초기 통치 (기원전 69년 ~ 기원전 48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마지막 통치자: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부하 장군 프톨레마이오스 1세부터 이어진 마케도니아계 왕조의 마지막 여왕입니다.
총명한 지도자: 어릴 때부터 총명했으며, 9개 국어를 구사하고 정치, 철학, 과학에 능통했다고 전해집니다.
권력 투쟁: 남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공동 통치를 시작했으나 권력 다툼으로 추방당했습니다.
그리스의 클레오 파트라 프랑스의 클레오 파트라
2) 카이사르와의 만남과 권력 회복 (기원전 48년 ~ 기원전 44년) 이집트 도착: 폼페이우스의 뒤를 쫓아 이집트에 도착한 로마의 최고 권력자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만났습니다. 권력 회복: 카이사르의 도움을 받아 남동생을 몰아내고 이집트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습니다. 아들 탄생: 카이사르와의 사이에서 아들 카이사리온을 두었습니다.
한국의 클레오 파트라 러시아 클레오 파트라
3) 안토니우스와의 사랑과 제국 건설 야망 (기원전 41년 ~ 기원전 31년) 카이사르 사후: 카이사르 암살 후 로마 권력이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로 나뉘자, 이집트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안토니우스와 동맹을 맺습니다. 사랑과 야망: 안토니우스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그들 사이에서 아이 셋을 낳아 로마와 이집트를 잇는 대제국을 꿈꾸었다.
아프리카 클레오 파트라 이스라엘의 클레오라
4) 비극적 최후 (기원전 30년) 악티움 해전 패배: 옥타비아누스와의 해전(악티움 해전)에서 패배하면서 꿈은 무너졌습니다. 자결: 안토니우스가 자결한 후, 클레오파트라 역시 독사(코브라)에게 물려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독극물 사용 등 다양한 설이 있습니다. 로마의 속주 편입: 그녀의 죽음으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막을 내리고 이집트는 로마의 속주가 되었습니다.
# 핵심 요약: 클레오파트라는 단순한 미녀가 아닌, 뛰어난 지성과 정치력으로 로마의 두 거물(카이사르, 안토니우스)을 매료시켜 이집트의 독립을 지키려 했던 마지막 파라오로, 이집트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을 장식한 인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