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인들의 삶에 비춰보는 오늘의 이집트? 10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이집트 여행기 서적과 역사 책을 주문했더니 그 내용이 거의 구약 성경에 비견할 만큼의 성경역사가 대부분이었다. 짧은 요약, 가나안 땅에 극심한 기근이 들자, 야곱과 그의 열두 아들이 이집트로 이주했다. 이집트의 총리였던 요셉의 영향력으로 이스라엘 가족은 안전하게 정착하며 민족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나름 몇 권의 책을 읽었으니 지형은 현장에 가서 익혀도 될거라는 생각에 빙그르 지구본을 한 번 돌려보며 위치만 확인하고 출발헸더니 동서남북, 분간도 어렵고 심지어 해가 서쪽에서 뜨는 느낌마저 들었다. 평소의 고정관념 때문에 많이 햇갈렸던 기억이 난다.
주로 밤 비행기와 밤기차, 크루즈도 숙소로 이용하는 편이컸다. 대부분 전용버스로 이동했으며 시내 통과는 정체가 심해서 주로 이른 새벽이나 해질녁을 선호하기가 일수다. 그런데 나는 아무리 지형을 떠올려봐도 알 수가 없었다. 이집트의 국토 면적은 우리나라(남한)의 약 10배 인데 나일강 근처에서만 살 수 있으니요.
그 넓은 땅이 모두 사막이고 나일강변에만 인구가 몰려 살다보니 사막을 몇바퀴 돌아도 아무런 표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건물이나 마을이 없어 어디가 어딘지? 더욱 분간이 가지 않었다. 단 유물 지도만 통용되고 있어 구체적인 지형을 익히기가 너무 어려웠다. 다음 여행자 분들은 지도를 미리 익히면 좋을 것 같아 올려 본다.
나일강은 대표적인 '외래 하천(exotic river)'입니다. 강수량이 많은 습윤 지대에서 발원해 건조한 사막을 관통하는 하천을 의미해요. 그래서 사람들이 모여들고 농사와 정착 생활이 가능했지요. 이집트인들은 나일강 주변 비옥한 땅을 '케메트(검은 땅)'라 부르며 찬미했고, 나일강을 '하피'라는 신으로 숭배했어요.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이집트를 '나일강의 선물'이라 표현했답니다. 오늘날 나일강 하구의 삼각주(강 하구에 퇴적물이 쌓여 만들어진 지형)에 이집트 인구 대부분이 몰려 살아요.
나일강을 둘러싼 분쟁의 역사는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가요. 수단, 우간다 등 나일강 상류 지역을 식민지로 삼았던 영국은 1929년 이집트에 전체 나일강 수량의 80%를 우선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나일강 분할조약'을 체결했습니다.
지중해와 홍해, 인도양을 잇는 이집트 수에즈운하의 통행권을 확보하기 위해서였어요. 하지만 1960년대부터 이 국가들이 속속 독립하면서 나일강 이용을 둘러싼 분쟁이 본격화되었습니다. 아프리카 최초의 유엔 사무총장인 부트로스갈리는 "아프리카의 다음 전쟁은 나일강으로 인해 터질 것이다"라고 경고하기도 했어요.
아프리카 북동쪽에 길게 흐르는 나일강은 에티오피아, 수단, 이집트 등 11국을 통과하는 아프리카 최대 하천이자, 아마존강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긴 강으로 불려요.
아프리카 동부 아비시니아 고원의 타나호(에티오피아)에서 발원한 '청나일'과 적도 부근 빅토리아호(탄자니아·우간다·케냐)에서 발원한 '백나일'이 수단의 수도인 하르툼에서 하나로 합쳐지지요.
이후 거대한 강물은 이집트를 거쳐 곧장 지중해로 흘러들어요. 나일강의 총 길이는 약 6700㎞(한반도 길이의 약 6.7배)로 아마존강과 '세계에서 가장 긴 강' 타이틀을 두고 경쟁하기도 했는데요. 두 강의 길이가 측정 주체마다 다르기 때문에, 기네스북에도 '세계 최장의 강'은 빈칸이라고 합니다.
이집트의 확인된 역사는 BC3100년경으로 추정된다. 나르메르왕의 팔레트에서 시작된다. 로제타스톤으로 인해 이집트의 상형문자가 해석되면서 이집트 최초의 통일왕국을 세운 나르메르왕의 이름이 밝혀졌고, 그 시기가 BC3100년경으로 추정되게 된 것이다. 유물이 발견된 위치는 Edfu 인근의 히에라콘폴리 Hierakonpolis다.
이집트를 대표하는 피라미드는 80여기가 발견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기자의 피라미드는 멘카우레(65m), 카프레(136.4m), 쿠푸(146.6m)왕의 무덤이다. 쿠푸왕은 BC2609-2584, 카프레왕은 BC2576-2551, 멘카우레왕은 BC2551-2523년에 이집트를 다스리던 파라오들이다. 피라미드가 사각뿔의 형태를 갖추기까지는 마스타바, 계단식 피라미드, 굴절 피라미드의 과정을 겪어 왔다.
카이로 인근의 기자 피라미드는 BC27세기부터 26세기에 만들어졌다. 이전 파라오들의 계단식, 굴절식 피라미드를 거치면서 완벽한 사각뿔의 형태로 완성되었다. 기자의 피라미드에는 스핑크스가 같이 있다.
피라미드가 만들어지고 1,200년이 더 지난 BC14세기에 투트모스4세가 기자를 방문해서 스핑크스를 발견하고 스핑크스 꿈 석비를 세운게 지금 남아 있다. 피라미드나 스핑크스는 그리스어로 이집트말로는 피라미드는 메르(운하, 사랑, 괭이), 스핑크스는 세세푸우 앙크(지평선의 호루스)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