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소중한 아들이 여자를 데려왔다.
우리 아들은 더 잘 나가는 여자랑 결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결혼하더니 내 아들의 등골을 빼먹는 것 같다.
이번에 또 가방을 새로 샀나 보네.
애들 교육에는 또 왜 저렇게 돈을 많이 쓰지?
여행은 왜 저렇게 많이 가고?
가세가 기운 건 며느리의 잘못이야.
우리 아들은 잘못한 게 없어.
친정에서 도움을 받고 있다는데 얼마나 받았길래 유세를 떨지?
아르바이트 좀 하는 것 가지고 뭐가 힘들다고?
얼마나 아프길래 김장하러 못 와?
며느리로서 해야 할 역할을 소홀히 하고 있어.’
시댁 식구들은 왠지 모르게 나에게 불만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 때문인지 나는 시댁에 가는 게 항상 불편했다.
남편에게서 받기 힘들었던 배려는, 그곳에서는 더더욱 기대하기 힘들었다.
남편은 시댁에 우리가 처한 어려운 현실을 솔직히 알리고, 나에 대한 오해와 부정적인 감정을 풀 수 있도록 중재했어야 했다.
하지만, 남편은 중재자의 역할을 전혀 하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남편은 타인에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의 감정도, 나의 불편함도.
그곳에서 자기만 멋진 아들이면 그만이었다.
결혼 초반에, 남편은 시어머니가 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여과 없이 말해줬다.
그 뒤로 시어머니를 편하게 대하기가 힘들어졌다.
나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고 계신다는 게 슬프고 화가 났다.
가끔은 생전 들어본 적 없는 모진 말도 들어야 했다.
그래서 난 시댁에 가는 게 점점 더 불편해졌다.
내가 혼자서 당하고 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남편은 모른 척하며 그들과 웃고 떠들었다.
집에 돌아와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면, 남편은 몰랐다고만 했다.
“그냥 별 뜻 없는 말이야.”
내가 시댁 식구들에 관해 얘기할 때마다, 남편은 얼굴이 이내 굳어지며 자신과 자신의 원 가족을 방어하기 바빴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그는 늘 그것을 공격으로 받아들였고 곧 언성을 높였다.
부부는 서로의 다른 생각을 대화를 통해 접점을 찾아가며 함께 맞춰나가는 거 아닌가.
우리에게 접점이란 없었다.
아니, 애초에 생각을 공유하는 대화가 불가능했다.
그는 나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게 아니라, 원 가족과 자신을 동일시했다.
그런 면에서, 나는 그에게 어떤 사람인지 의문이 생기곤 했다.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