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1

수호자, 헤타

by DEN


나는 우리 마을의 수호자다. 나를 소개하기에 앞서 먼저 우리 마을에 대해 소개를 해야할 것 같다. 우리 마을은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다. 사계절이 뚜렷한 편이나 여름에는 크게 덥지 않고 겨울에도 그리 춥지 않은 적당한 기후다. 마을 전체적으로 산이 있는 편이나 서쪽 지역에 있는 큰 산을 제외하고는 큰 산은 없다. 주민은, 세대가 바뀌면서 달라지긴 하지만 대략, 300명 정도 되는 수의 사람이 살고 있고 40가구쯤 된다. 가끔 이주민이 들어오기도 한다. 반면, 우리 마을에서 누군가 이민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여러 가지 곡물과 채소를 농사지어 살고 있고 돼지, 소, 닭 등의 가축도 기르고 있다. 다만 가축은 많지는 않기에 큰 축제 때 다 같이 나눠 먹고 보통 곡물과 채소 위주로 먹고 살며, 물고기를 잡아먹는다. 다행히 농사지을 땅이 충분하고 물고기도 많이 잡히는 편이라 먹는 것에 대한 문제는 거의 없다. 여름에는 얇은 천 옷을 입고 겨울에는 두꺼운 솜옷을 입는다. 천과 솜 모두 마을 내에서 생산할 수 있지만, 가끔 부족할 때는 다른 마을에서 사 오기도 한다. 집은 나무로 만든 오두막집에서 사는데, 집을 수리하는 경우는 많지만 새로 짓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절도, 폭행, 살인, 강간 등의 범죄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 편이고 간혹 그런 일이 생기면 각 가구마다 대표들이 나와 논의하고 수호자가 그 모든 의견을 모두 종합하여 결정한다. 그 외의 작은 다툼이나 문제들은 대부분 당사자끼리 해결하고, 해결하지 못한 문제는 모아서 농사일을 논의할 때 부수적으로 다룬다. 대체로 일 년에 4번, 즉 계절마다 한 번─일반적으로 겨울에는 작물 선택 및 파종 계획, 봄에는 구체적인 노동 분담, 여름에는 중간 점검, 가을에는 추수 등으로 이루어진다─정도 한다.

따로 정치 집단이나 단체는 없고 모든 사람이 평등한 지위를 가지고 있으나,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는 깍듯하게 대하는 것을 예의 있는 것으로 여기고 나이가 많은 사람들 또한 자신보다 나이가 적다고 하더라도 존중해주는 것을 예의 있는 것으로 여긴다.

북쪽 지역에는 광산이 있어 여러 광물이 나오는데, 광물을 계속 캐내는 것은 아니고 다른 마을에서 물건을 사 올 일이 있거나 광물로 어떤 물건을 만들어야 하는 일이 생기면 회의를 통해 정해진 양만큼만 캐낸다. 마을 안에 광물을 제련하는 사람이나 대장장이는 없고 보통 다른 마을의 기술자에게 청탁한다. 그렇기에 광물은 캐는 일은 거의 없다.

섬이라는 지형의 특성상 바다의 신을 섬긴다. 신을 섬긴다고 해서 제사를 지내거나 무언가를 바치는 것도 아니고 제사장이 있거나 종교 지도자가 있는 것도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일반적으로 말하는 신을 떠올린다면, 바다의 신을 섬긴다고 말하기도 애매하다. 그저 가끔 바다를 보며 무언가를 빌거나 사람이 죽으면 배를 타고 나가 바다에 시신을 던지는 방식으로 장례를 치르는 정도다.

결혼은 마을 사람들끼리 하는데, 가구의 수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와 결혼하는 경우가 많고 가까운 혈육 외의 적당한 대상이 없으면 부모가 중매해주기도 한다. 결혼식은 하나의 마을 축제로 여겨지며, 모든 사람이 함께 모여서 고기와 술을 나눠마신다. 결혼하면 남자가 여자의 집에 가서 사는데, 섬이 그리 크지는 않기 때문에 친가에도 자주 들릴 수 있다.

축제는 매년 크게 두 번 열리는데, 파종이 끝나고 무더워지기 전, 늦봄에서 초여름 사이에 하는 체육대회가 있고 추수가 끝나고 작물의 저장을 다 하고 나서 늦가을에 하는 추수제가 있다. 체육대회에서는 보통 여러 종목을 만들어 경쟁하고 즐기며, 추수제에서는 술과 고기, 여러 음식을 먹으며, 노래와 춤을 즐긴다. 그 외에도 결혼식과 같은 작은 축제들이 수시로 열리기도 한다.

교육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매우 기본적인 기술, 예의•예절 등을 배우고 흔히들 교육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학문을 가르치지 않는다. 굳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호자와 무역 담당자, 회의를 주관하는 사람 등, 흔히 공무원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일부의 사람들은 다른 마을에 가서 각자 필요한 기술, 학문, 법, 언어 등을 배워온다.

그리고... 아니다, 마을에 대한 소개는 이 정도만 해도 상관없을 것 같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이 마을의 수호자다. 그렇기에 만약 마을에서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나는 마땅히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만약 누군가 대표로 나서야 한다면 나는 마땅히 누구보다 앞서 나서야한다. 딱히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겠지만.

나는 수호자로서 다른 마을에서 교육받았다. 무술, 무기, 전술, 리더십 교육처럼 수호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에 대해서 교육을 받은 것은 당연했고 그 외에도 기본 상식, 자연과학, 사회학, 사상과 철학, 교양, 여러 기술 등 전반적인 기초교육은 모두 받았다. 또 그곳에서 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특히, 우연한 기회로 신부님을 알게 되고 교회를 알게 되고 기독교라는 종교를 알게 되었다. 우리 마을에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유일신의 개념은 없기에, 처음에는 다소 낯설었지만『성경』이라는 그 종교의 책과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태도는 나의 마음을 감동하게 했다. 그때부터 나도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믿기로 했다.

다만, 우리 마을에 이것을 알리자는 결심을 품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고민도 했지만 결국에는 그 마음을 접었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으로서 그 말씀은 전파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지만, 나는 마을 수호자의 자격으로 교육을 받았고 그것을 우선으로 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마을에서 수호자가 해야 할 일이 많지는 않다. 마을 안에서 다툼이 일어나더라도 평화적인 방법으로 거의 해결했고 다른 마을의 사람들이 침입하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곧이어 말하겠지만, 아마 이것이 사랑 말고는 큰 장점이 없는 내가 수호자가 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수호자로서 마을을 위협하는 위기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언제든지 준비되어 있어야 하기에 공부와 훈련을 게을리하지는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쯤에서 왜 내가 수호자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말하는 것이 좋아 보인다. 내가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사상과 철학을 배울 때 옛날 그리스라는 마을의 한 철학자는 수호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지혜라고 했다는 것을 배운 적이 있다. 그 철학자는 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고, 이 철학자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은 내가 이 마을에서 가장 지혜 있는 자이기 때문에 수호자를 담당하게 되었다고 추측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마을에서 수호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은 사랑이다. 아마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가져야 하는 덕목이며, 사랑이라는 능력으로 한 공동체에서 제일 중요한 직책을 맡는다는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조금 더 근원적으로, 사랑이라는 것을 능력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사랑을 좋음과 나쁨, 귀함과 천함, 높음과 낮음, 많음과 적음 등의 우위관계를 가지고 평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에 사랑이라는 덕목으로 수호자를 결정하는 일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항상 수호자를 결정할 때는 이견이 없다. 우리 마을에서는 수호자나 무역 담당자, 회의 주관자 등이 교육을 받고 오고 공직을 이어받은 뒤 시간이 지나 어느 정도 질서가 잡히면, 그 직책을 계승할 자를 교육하기 위해 각 직책에 적절해 보이는 청소년을 뽑아 교육받게 한다. 보통 다른 직책들의 후보를 뽑을 때는 의견이 갈리는 경우가 많지만, 수호자만큼은 항상 의견이 갈리는 일이 없다. 정확한 것은 아니고 어렴풋이 추측해 보면,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은 사랑을 구체적으로 수치화하거나 어떤 기준을 세워 평가할 수는 없지만, 추상적으로, 감각적으로 조금 더 좋은 사랑에 대한 공통적인 느낌이나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수호자로 생활하고 있다 보니 왜 사랑을 수호자의 덕목으로 정했는지도 알 것 같다. 대체로 큰 위기나 문제가 생기지 않는 우리 마을에서 수호자는 크게 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크게 하는 일도 없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모두가 평등하고 지배-피지배 관계가 아닌 우리 마을에서 우리 마을을 대표하는 한 사람을 꼽자면 그것은 수호자다. 한 마을의 대표는 그 마을의 평가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그 대표가 사랑으로 가득 찬 모습을 보인다면, 당연히 그 마을은 사랑으로 가득 찬 마을로 보일 것이다. 또 수호자는 일종의 공인이다. 마을의 모든 사람이 그를 안다. 그런 측면에서 수호자는 훌륭한 인품을 가지고 모든 사람을 따뜻하게 대해야 한다. 그렇게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대해주면, 그 사람들도 수호자를 사랑으로 대해주고 이 과정은 긍정적으로 순환된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수호자는 최고의 사랑을 가지고 있고 또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모로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사람의 천성에 대해 그리 믿는 편은 아니지만, 천성적으로 사랑을 많이 가지고 태어난 것 같고 또 우리 가족은 나를 엄청나게 사랑해 주셨다. 친구들과도 항상 사이좋게 잘 지냈고 동•식물 같은 자연들도 너무 좋았다. 무엇보다 우리 마을도 너무 좋았다. 우리 마을의 모든 것이 그저 아름답고 사랑스럽게만 보였다. 그래서 나는 항상, 최소한 내가 받은 사랑만큼은 모두에게 베풀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운 좋게 수호자로 뽑힌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기독교에 빠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1)”는 구절처럼,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니까.


1) 고린도전서 13:13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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