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타의 자질 논란
수호자 교육을 마치고 돌아온 지 1년하고 조금 더 지났을 때였다. 수호자님께서 서거하셨다. 인간의 죽음에 대해서 인간은 알 수 없다. 오직 신만이 알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완벽하게 대비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큰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한 일반적으로 인간이 죽는 나이대가 있다. 이에 보통 차기 공무원의 교육 시기는 지금 그 직책을 맡고 있는 담당자의 나이가 일반적으로 죽는 나이대보다 10~20년 정도 전에 끝나도록 정한다. 즉, 차기 공무원─나의 경우는 수호자인데─이 교육을 마치고 그 직책을 맡기 전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교육을 받고 와서 대충 5~15년이라는 기간을 두고 충분히 선대 담당자와 동행하며 경험해 보고 조언을 들으며, 자신의 역량을 더욱더 다듬을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간혹 선대 담당자가 장수하는 경우에는 더 늦어지는 경우도 있었고 일찍 죽는 경우에는 더 빨라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의 경우는 전대미문의 일이었다. 아무리 일찍 죽더라도 그전까지 모든 공무원은 차기 담당자가 교육을 마쳐 돌아오고 3년은 지나서야 죽었다. 이번 수호자님께서는 내가 교육을 마치고 1년하고 조금 더 지난 시점에 서거하셨으니,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거기다가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각 직책 간의 우위를 매길 수는 없다고는 하지만 이 마을에서 가장 대표되는 사람, 가장 중요한 사람을 뽑으라고 한다면, 100의 99명, 사실상 모두는 수호자라고 할 것이다.
그렇게 중요한 수호자라는 직책을 맡은 사람이 너무 빨리 죽어버린 상황에서 차기 수호자인 나는 당장 수호자가 되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누구의 이견도 없이 만장일치로 차기 수호자로 결정되었고 교육까지 모두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고는 해도 실무 경험이 1년밖에 되지 않았다. 또 다른 마을에서 교육받는 시간 동안 우리 마을에 대해 어느 정도 잊었고, 이곳 환경에 맞게 맞추어 살기 위해서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실무 경험은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상황이 이러자 우리 마을은 큰 혼란에 빠졌다. 재빠르게 장례를 치르고는 긴급회의를 소집하여 이 사태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논의했다. 이 회의에서 가장 중요한 대상은 역시 나였고 주제는 이전의 관례대로 바로 나를 수호자로 임명할 것인가, 핵심 쟁점은 내가 수호자를 맡을 자질이 있는지 없는지가 되었다.
이분법적으로 구별할 수 있는 주제였기에 찬성 측과 반대 측이 나뉘어져서 논쟁을 벌였다. 일종의 찬성 측에서는 애초에 수호자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인 사랑을 잘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만장일치로 차기 수호자로 결정했었고 수호자의 역할을 행하기 위한 교육을 받은 상태에서 나의 자질에 대해 의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일종의 반대 측에서는 기본 뼈대만 있다고 건축물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비유를 들어 덕목이나 교육 등 기본 골조는 잘 갖추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다양한 경험과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나머지 것들을 잘 채우지 못했다면 완성된 건축물이라고 부를 수 없고 마찬가지로 내가 조금 더 성장할 시간을 벌기 위한 다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찬성 측과 반대 측에서 여러 차례 의견을 주고받았지만, 양쪽의 의견이 매우 팽팽하여 좀처럼 결정할 수 없었다.
그러던 도중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토론의 방향이 점점 핵심 쟁점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찬성 측에서는 그렇다면 다른 방안을 생각할 수 있느냐고, 반박하고 싶다면 납득할 만한 방안을 제시하라고 주장했고, 반대 측에서는 일단 이 사안을 결정한 뒤에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반대 측에서는 이렇게 실무 경험이 없고 어린 수호자는 여태껏 없었고 이전의 사례가 없었다며, 명분이 떨어진다고 주장했고, 찬성 측에서는 애초에 이 사태가 이전의 없었던 사례이며, 이전과 다르더라도 그에 맞는 대처를 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전까지는 각 의견이 합당하여 반박하기가 힘들었다면, 논의가 이상하게 전개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의견들이 너무 허무맹랑하고 이상하기에 반박이 쏟아졌다. 이런 경향은 점점 심해졌고 한 번씩은 완전히 언어도단인 의견이 제시되었고 이에 대한 매우 합당한 반박이 제시되는 이상한 상황이 펼쳐졌다. 이 상황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심해져 어느 순간부터는 언성이 높아지더니 논의가 핵심 쟁점에서 완전히 벗어나 버렸다.
찬성 측에서는 급기야 사실상 수호자가 하는 일이 많지도 않고 상징일 뿐인데, 그리 실무경험에 대해 따져야 하냐고 물으며, 반대 측이 합당한 이유도 없이 그저 내가 싫어서 반대하는 것은 아니냐는 둥, 너무 형식에 얽매여 있다는 둥 비방하기 시작했고, 반대 측은 수호자를 모욕하는 매우 불건전한 발언이며, 이렇게 무식하고 예의 없는 사람들이 넘치는 데 수호자가 할 일이 많을 수밖에 없다며, 죽은 전 수호자도 찬성 측과 같은 사람들을 보다가 화병이 나서 일찍 죽은 거라고 비방하기 시작했다. 이에 찬성 측에서 그건 수호자가 아니라 회의 주관자의 일이라는 등의 말을 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내가 소리를 지르며 일어나자, 그 말을 다 하지 못한 채 모두 조용해졌다.
나는 이번 토의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잠자코 지켜보고 있었다. 나의 주관적인 입장에서 하는 말이 사람들을 그릇된 판단의 길로 이끌 수도 있고 나의 자질에 대한 논의였기에 당사자인 나는 함구하고 있는 것이 바람직한 처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마을 전체를 위한 논의가 아니라 서로를 헐뜯기 위한 비방과 모욕이 지속되자 이 회의를 가만히 놔두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인내심을 가지고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적절히 중재할 타이밍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존경하던 전 수호자님을 모욕하는 것만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물론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수호자라는 것이 그만큼 중요한 직책이고 이번의 사태가 그만큼 심각했다. 그런 상황에서 감정적으로 변하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 최소한 내가 마을에 있는 동안에는 우리 마을의 사람들이 그 어떠한 일로도 이만큼 언성을 높이고 서로를 욕하는 경우가 없었다.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이 사람들이 아니라 그 위기의 상황이 사람들을 감정적으로 만든 것으로 생각하며, 분노의 감정이 아니라 연민의 감정을 가지고 잘 타일러야겠다고 생각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들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게 무엇입니까? 우리가 이 회의를 통해 얻고자 했던 바가 무엇이었고 지금 얻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비록 제가 오랜 시간 동안, 이 마을을 떠나 다른 곳에서 교육받고 왔다고 하더라도 제 마음속 깊숙한 곳에 항상 우리 마을을 간직한 채 살아왔고, 마을을 위해 교육을 받는다는 사명감을 품고 우리 마을을 기억하는 일을 하루도 놓친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제가 지금, 이 마을에서 일어난 문제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회의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는 것이 외람되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다고 생각되지만, 이 말씀을 꼭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제가 여러분들보다 더 고귀한 존재라거나, 더 높은 존재라거나, 혹은 차기 수호자의 직책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기에 여러분들에게 조언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며, 여러분들보다 현재 우리 마을에 대해 더 잘 알고 있거나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많은 분이 납득할 만한 좋은 의견을 가지고 있기에, 말씀을 드려야겠다는 경솔한 생각에서 오랜 회의 동안 지켜왔던 침묵을 깬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저는 여러분들과 동등한 지위를 가진 한 마을의 사람으로서, 또 저에 대한 교만이 조금만 허락된다면, 감히 여러분들에게 선택받았던 차기 수호자로서 혼란스러운 상황을 수습하고 잠시 어긋난 이 회의의 방향을 다시 올바르게 설정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또 그런 능력이 부족하게나마 있다고 생각되기에 말씀드립니다.
지금 제가 정확히 이 회의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제가 생각하기로 이 회의는 우리 마을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인 수호자의 요절이라는 중대한 사안 속에서 우리 마을의 수호자라는 매우 중요하고 이런 표현이 허락된다면, ‘존귀한 직책’에 걸맞은 사람을 수호자로 세울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것입니다. 또 그 속에서 가장 좋은 방안은 차기 수호자인 저의 부족한 경험을, 부작용은 가장 적으면서 동시에, 가장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어 저를, 이 마을의 수호자라는 직책에 걸맞은 적합한 인물로 만들어내는 것이었고, 그런 논의 과정에서 저의 자질이 수호자로서 충분하게 갖추어져 있는지에 대해 검토하고 그 부족한 경험이 미칠 안 좋은 영향에 대해 논의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회의가 저에 대한 논의가 가장 중요한 요지이며, 그렇기에 제가 가장 많은 말을 하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해야 한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저는 저에 대한 논의에 대해 저 스스로가 입을 열어 무엇을 말한다면, 그것은 객관적일 수 없고 오히려 좋은 선택을 모색하는 데 있어서 방해될 뿐이라고 생각하여 함구를 지켜왔습니다.
하지만 이 회의는 어느순간 그 본질을 잃기 시작하여 점차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서로를 비방하는 말의 수위는 높아져만 갔으며, 급기야는 이 회의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수호자라는 직책을 비방했으며, 존경할 만한 전 수호자님에 대한 모욕이 들렸기에 저는 차마 그 함구를 끝까지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마을에 있어서 수호자는 어떤 존재입니까? 우리 마을을 대표하는 사람, 우리 마을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베풀고 동시에 받는 사람, 우리 마을 사람들이 우리 마을에서 가장 자부심을 느끼는 존재, 그것이 이 마을의 수호자입니다. 최소한 제가 생각하기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들은 그 수호자를 비방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수호자가 갖는 그 위대한 명예에 비해 실질적인 역할은 적어 유명무실하다는 생각이 들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상징과 이름이라는 것은 실질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며, 때로는 실질적인 어떤 것보다 더 중요한 어떤 것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 회의의 방향이 올바르게 가고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돕기 위해 이 발언을 통해 생길 수 있는 저에 대한 비난을 무릅쓰고라도 꼭 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제가 비록 서거하신 이전의 수호자님과 오랜 시간을 함께하지는 못했다고 하더라도 저는 그분이 존경받아 마땅한 분이며, 우리 마을을 위해 항상 힘쓰셨고 수호자라는 직책에 걸맞은 명성과 위신을 지키기 위해 항상 정직하고 고귀한 행동만을 추구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회의 속에서 몇몇 분들은 의도가 그렇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 수호자님을 모욕하는 발언을 하셨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깊은 유감을 표하며, 자신이 했던 발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시기를 바란다는 말씀을 감히 전하고 싶습니다.
저 또한 우리 마을에서 수호자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여러 차례 우리 마을에서 수호자에 대한 중요성이 논의되었고 저 또한 강조했으므로 다시 언급하지 않더라도 잘 알고 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한편으로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무리 수호자라는 존재가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그 수호자라는 존재로 인하여 우리 마을의 불화가 생기고,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기 시작한다면 차라리 없는 게 낫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마을에서 수호자로서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사랑인데, 수호자로 인하여 그 가장 반대의 것들의 싹이 발아된다면 그만큼 모순적인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몇몇 분들이 말씀해 주신 대로 저는 이때까지의 관례로 보아 수호자가 되기에는 경험이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저 스스로도 이전의 수호자님을 생각하면 자신이 초라하고 보잘 것 없어 보여 우리 마을의 수호자라는 명성을 더럽힐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저는 감히 더 이상 수호자라는 직책과 전 수호자님에 대한 모욕을 멈추기 위해서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불화와 나쁜 감정이 유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당장 이 회의를 끝내고 차라리 수호자라는 존재를 완전히 없애버리자고 제안하고 싶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꽤 긴 연설이었음에도 회의에 참가한 모든 사람은 나의 말에 경청해주었고 중간에 연설을 끊은 사람도 없었다. 또 이 연설에 대한 반응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긍정적이었다. 처음에는 모두가 얼이 나간듯 조용했지만 한 두명이 박수를 치기 시작하자 모든 사람이 박수를 쳐주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기립박수와 함께 큰 환호를 보내주었다.
그렇게 마을에 있는 모든 사람은 나를 이제부터 이 마을의 수호자로 세우는데 동의했다. 회의가 끝난 뒤에는 나에 대한 칭찬이 모든 곳에서 들려왔고 몇몇 사람들은 나에게 찾아와 존경한다는 말을 전해주기도 했다. 나는 그에 대해 그저 이전의 수호자님의 공덕이 나를 도와 모든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켰으며, 우리 마을 사람들이 우리 마을과 수호자에 대한 애정이 매우 큰데, 나는 그것을 상기시켰을 뿐이라고 겸손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정확히 듣지는 못했지만, 여러 사람이 “역시 수호자 답게 연설을 잘하는 것 같네.”, “수호자가 받는 교육에 연설도 있는가?”, “나는 이전의 수호자보다 더 좋은 연설을 했던 것 같은데?”, “그때 헤타가 수호자였다면 어땠을까?” 등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 이전의 수호자님도 연설을 한적이 있었나? 물론 수호자가 연설을 하는 것이 그렇게 특별한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마지막 ‘그때’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려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일단 마을의 큰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되어 집으로 돌아간 뒤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그렇게 수호자로서의 나의 삶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