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3

전 수호자님의 유품

by DEN

내가 이 마을의 수호자가 되고 나서 가장 첫 번째로 한 일은 서거하신 전 수호자님의 장례식이었다. 장례식이라고 해서 크게 특별한 일은 없었고 전 수호자님의 가족─사모님, 에페보스, 그리고 에피스테라는 나랑 비슷한 또래의 여자아이가 한 명 더 있었던 것 같은데 내가 마을에 돌아온 뒤로 보이지 않았다─및 전 수호자님과 가장 친했던 친구 두 분이 함께 전 수호자님의 시신을 실은 배에 타서 바다로 나가 같이 시신을 던지는 일이었다.

사실 예전에는 수호자가 죽기 전에 써놓은 유서를 차기 수호자가 마을 사람들 앞에서 봉독하는 관례가 있었지만, 전 수호자님께서 유서를 쓰지 못한 채 서거하셨기 때문에 그 행사는 진행되지 못했다. 일부 사람들은 내가 대신 연설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하기도 했는데, 나는 전 수호자님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또 전 수호자님께서 생각하시는 것과 완전히 다른 것을 말할 수도 있다며 거절했다.

장례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다. 부모님은 나를 반갑게 맞이하셨고 나 같은 아들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다고 말씀해 주셨다. 나도 운 좋게 훌륭하신 부모님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며, 포옹했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방에 들어가 교육을 마칠 때 들고 온 성경을 가지고, Q.T를 했다. 기도를 마치자, 어머니가 방에 들어오셔서 전 수호자님 댁에 가서 인사드리고 오는 것이 어떠냐고 물어보셨고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다음 날, 어머니께서 챙겨주신 음식 몇 개와 내가 다른 마을에서 가져왔었던 커피 조금을 가지고 우리 마을 가장 남쪽에 있는 전 수호자님의 댁에 갔다. 사모님께서 웃으면서 맞이해주셨다. 내가 사모님 댁으로 들어가자, 에페보스도 방에서 나왔다. 아버지를 잃은 에페보스를 보니 마음이 먹먹해졌다.

그래도 에페보스는 애써 내색은 안 하려는 것 같았다. 사모님께서는 차기 수호자가 좋은 자질을 가지고 있어 마음이 놓인다고 말씀해 주셨고, 나는 먼저 감사하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고 훌륭하신 전 수호자님께 많이 배우지 못했음이 너무 유감스럽다. 그럼에도, 전 수호자님의 업적과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사모님은 웃으며, 당연히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말씀해 주셨다.

사모님께서 차라도 내어주겠다고 말씀하셨고 나는 커피를 소개해 드렸다. 원래 이 마을은 한 종류의 차만 재배했었는데, 다른 마을로부터 몇 개의 차를 수입하여 재배하기 시작했고 재배하기에 기후가 적합하지 않은 차는 무역으로 사고 있는데, 커피는 없다. 그렇기에 나는 다른 마을에 수호자 교육을 받을 때 처음 커피를 접하게 되었다. 나에게 커피는 완전히 신세계였고 꼭 마을로 돌아오면 수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모님께 가져온 커피를 소개시켜 드리고 커피 내리는 법을 알려드렸다. 거실 탁자에 앉아 나눠 마셨는데, 사모님도 적잖이 놀라신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이것을 꼭 수입할 것이라고 하자, 좋은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다. 전 수호자님에 대해 여러 좋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 수호자님과 함께했던 추억, 전 수호자님으로부터 배웠던 것들, 여러 가지 감사한 것들 등. 사모님은 자못 차분한 얼굴로 대화를 이어가셨지만 에페보스는 가끔 울컥하는지 감정을 추스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사모님께서 에페보스에게 잠깐 들어가라고 하셨다. 에페보스는 나도 다 컸다면서 자리에 있겠다고 했지만, 사모님께서는 단호한 태도를 보이셨다. 결국, 잠깐의 실랑이 끝에 에페보스는 방에 들어갔고 사모님은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내셨다. 앞서 말했듯이 사실, 전 수호자님 가정에는 나와 비슷한 나이에─아마 동갑이었던 걸로 기억한다─여자애 한 명이 있었다. 에피스테라는 이름의. 교육을 받고 돌아오고 보니, 그 여자애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난 나의 부모님이든 친구든 다른 사람에게 물어봐야 했다. 하지만 난 전 수호자님께 여쭈어보는 것도 조금 애매할 것 같고 에페보스한테 물어볼 것도 아닌 거 같아서 사모님께 여쭈어보았다. 즉, 전 수호자님과 에페보스한테 물어보면 안 되겠다는 생각만 하고 사모님께 물어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때 사모님께서는 나한테 물어봐서 다행이라며, 언젠가 알려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때까지는 그 누구한테도 물어보지 말고, 에피스테에 대한 어떤 말도 꺼내지 말고 자연스럽게 행동해 줬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나는 무슨 말인지 알겠다고 대답드렸고 사모님은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사모님은 에페보스의 방을 한 번 보신 뒤 말씀을 이어가셨다.

“혹시, 우리 남편과 다녔던 2년 남짓 동안 우리 남편이 가끔 이상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니?”

“이상한 모습이요? 잘 모르겠습니다. 음, 그런데 사모님께서 말씀해 주시면 알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가끔 멍한 표정으로 바다나 먼 곳을 바라본다거나 땅이 꺼질 듯 한숨을 쉰다거나...”

“아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알 것 같아요. 전 그때 그저 수호자라는 직책이 가진 책임감과 압박감이 그만큼 강하구나 정도로만 생각하고 나도 마음 단단히 먹어야겠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수호자라는 직책이 가진 이름과 무게가 어마어마하긴 하지, 하지만 우리 남편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란다. 네가 교육을 받는 동안 있었던 하나의 큰 사건이 생긴 이후로 가끔 이상한 모습을 보였지.”

“그때 에피스테한테 무슨 일이 있었군요…”

사모님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러고는 잠깐만 기다리라며, 아마 내가 말해주는 것보다는 이것을 보는 게 나을 것이라는 말씀과 함께 편지 하나가 들어있는 두꺼운 노트를 하나 주셨다. 많은 시간이 지나지는 않았지만, 더 머무는 것은 실례인 것 같아 그것을 받아 집으로 돌아갔다. 두꺼운 공책에는 어떤 사건에 대한 일지가 적혀있는 것 같았는데 꽤 양이 많아서 편지를 먼저 읽어보기로 했다.


지금 네가 이 편지를 보고 있다면 아마도 나는 내 삶의 모든 운명을 끝마치고 너에게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는 상황일 것이다. 비록 이 편지가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아주 약간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전혀 가치가 없는 일은 아닐 것으로 생각하기에 이렇게 편지를 남긴다. 먼저 이 일지는 네가 수호자 교육을 받기 위해 다른 마을로 떠났을 때 우리 마을에서 있었던 일이다. 상황이 마무리된 듯했지만, 이 사건은 반드시 다시 일어날 것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이 상황에 직면하는 것보다는 조금이나마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이 상황에 직면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기에 이 일지를 써서 남겼다.

대부분의 내용은 이 일지를 통해 알 수 있을 것이기에 너무 많은 말을 쓰지는 않겠다. 다만, 꼭 절망하지 말아라 꼭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절대 절망하지 말아라, 절대 고통스러워하지 말아라, 그것은 너의 그 부정적인 감정을 먹고 더욱더 강해질 것이다. 그것은 부정적인 감정을 최고의 양분으로 하는 끔찍한 존재이다. 그것은 너를 실패하게 만들 것이고 그 실패에서부터 나오는 그 감정들을 먹고 더 성장한다. 이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언젠가 그것은 너무 강해져 잡을 수가 없고 네가 느낄 수 있는 가장 부정적인 감정을 먹고는 흡족해 하며, 다음을 기약할 것이다.

난 그것을 물리치긴 했지만, 그것이 남긴 절망과 고통을 이겨내지 못했다. 결국 그것은 다시 이 마을로 돌아올 것이다. 나의 절망과 고통을 먹고 더 커진 채로, 더 강해진 채로. 수호자로서 당연히 감정을 잘 추스르고 그 괴물이 다시 이곳에 찾아오지 못하도록 해야 했건만 난 그렇지 못했다. 이는 수호자로서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고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와중에도 내가 이 편지를 쓸 자격이 있는지 고민하게 만든다. 하지만 나의 능력으로는 그것을 잠깐 쫓아낼 수는 있었지만, 완전히 물리치지는 못했다. 그다음에 나를 대신할 너에게 희망을 걸어보려 한다. 미안하다.


그리고 이 편지 두 줄 밑에 약간의 내용이 더 있었다.


오늘 수호자 교육을 마치고 돌아온 너를 오랜만에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나의 뒤를 이을 사람인 네가 어떻게 자라고 성장해왔을지 궁금해 설레기도 했고 기대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너를 다시 만난 이후 그런 걱정은 모두 사라졌고 더 큰 기대를 하지 않은 것이 후회될 만큼 너에 대한 존경심을 느꼈다. 수호자로서 정말 좋은 자질을 가지고 있고 좋은 교육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제 이 일지가 너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아마 이 일지가 없다고 하더라도 너는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히려 이것이 너에게 방해가 되지만 않으면 좋으련만! 우리 마을 사람들을 잘 부탁한다. 가끔 사랑할 수 없을 만큼 추악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건 그 사람들이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니다. 다만 상황이 사람을 그렇게 만들 뿐이다.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지만, 그것이 오히려 너를 망칠까 두려워 짧게 마치려 한다. 이 앞에 쓰인 것을 잘 기억해 주길 바란다. 물론 그것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그것을 마주한다면, 절망하지 말아라, 고통스러워하지 말아라, 그것은 네가 그렇게 되기를 바랄 것이다.

꼭 이겨낼 것이라고 믿는, 헤타에게


이 편지를 보고 내가 없는 동안, 이 마을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계속 언급되는 “그것”의 정체가 궁금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일단락된 것 같았고 우선은 당장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을 집중하는 것이 좋아 보였다. 내 방 적당한 곳에 편지와 일지를 넣어두고는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리스트를 만들어 수첩에 적었는데 꽤 할 일이 많아 보였다. 한편으로는 막막해 보였지만 이 많은 일들과 그것을 해낼 능력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고 침대에 누웠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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