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전야의 고요
일단 첫 번째로 한 일은 모든 집에 한 번씩 방문하는 것이었다. 40가구쯤 되기에 빨리 끝내려고 한다면 끝낼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최소한 모든 마을 사람을 한 번씩은 정성껏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하루에 두 가구 이상은 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이 일에만 거의 두 달이 걸렸다. 그래도 모든 분이 나를 볼 때마다 즐겁게 맞이해주시고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뿌듯하고 행복했다.
그리고 방문할 때마다 약간의 커피를 가져가서 커피를 소개시켜 드렸는데, 대부분 평이 좋았다. 그렇게 우리 마을에 커피 수입을 추진하는 것을 두 번째 일로 시작했다. 무역 담당자와 얘기해 보니, 우리 마을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몇몇 다른 마을에 커피 수입이 가능한 곳을 알아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뒤에 우리는 두 개의 다른 마을에서 커피를 수입하기 시작했다. 우리 마을에서 커피를 키울 수 있는지도 확인해 봤는데, 우리 마을에서 그것을 키울 환경이 되지 않기에 수입에 의존하기로 했다. 다행히 그렇게 비싸지는 않았다.
그 외의 항상 하는 행사들─결혼식, 장례식, 축제, 여러 회의와 같은─에 수호자로서 참가했고 가끔 필요에 따라 다른 마을을 다녀오기도 했는데, 다행히도 다들 좋게 봐주셔서 우리 마을에 대한 좋은 이미지가 잘 유지되었던 것 같다. 확실히 수호자는 실질적인 어떤 역할보다는 상징의 의미가 컸기에 중대한 일을 한다거나 해야 할 어떤 큰 임무가 있지는 않았다.
사실 나는 원래도 수호자가 그런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나는 크고 중요한 어떤 일을 잘 해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작고 세심한 일들을 챙기자고 생각했었다. 크고 중요한 일들은 수호자가 아니라 다른 각 직책을 맡은 사람들이 하면 된다. 그래서 큰일은 사실 앞에서 언급한 것들 정도밖에 없었고 나는 조금이나마 이 마을에 도움이 되고자 작은 일들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나는 비단, 우리 마을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고 그러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 간의 관계이며, 그것은 만남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했다. 거창하게 말한 것 같기도 한데, 마음만 먹으면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이지만 그 마음을 먹는 것이 또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기에 일정 부분은 거창하게 언급할 만한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실천 방법은 간단했다. 그저 사람을 많이 만나면 된다. 자주 찾아뵙지는 못하더라도 연로하신 분들을 찾아가 말벗이 되어드리고, 그보다 조금 나이가 적으신 분들과는 술친구가 되어드리고, 젊은 청년들과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어린이와 청소년들과는 함께 어울려 놀았다. 이야기만 듣고 보면, 수호자는 먹고 놀기만 하는 직책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다들 즐거워해 주시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항상 뿌듯함을 느낀다.
그렇다고 해서 먹고 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나는 수호자로서 먹고 놀기만 한다는 소리를 듣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모두에게 모범을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마을에서 하는 모든 농사, 어업, 채집과 같은 생산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대로 참여하여 노동했다. 또 각 직책을 맡은 사람들을 자주 찾아뵈어 조언받기도 하고 조언을 드리기도 했다. 이러다 보니 중대한 어떤 일을 맡고 있지는 않음에도, 매우 바빴고 시간이 거의 없었다.
슬슬 마을이 안정되고 질서가 잡혀가는 것처럼 보이자, 나는 그동안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일을 시행하려고 계획했다. 바로 교육이다. 나는 내가 다른 마을에서 받은 교육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 비록 그것이 실질적인 삶의 큰 도움이 되지는 않더라도 언젠가 큰 도움을 줄 수도 있고 또 교육 자체로 그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다만, 잘못된 교육은 오히려 그 사람을 훨씬 더 사람을 나쁜 방향으로 이끌 수 있기에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기본적인 언어를 가르치고 교훈적인 동화나 우화, 소설을 읽히며, 또 너무 급진적이거나 엄격하지 않은 일종의 자유로운 철학들, 훌륭한 역사적 인물들 몇 명, 삶의 도움이 되는 과학적 지식 등을 가르치는 것으로 큰 틀을 잡았다.
언제 한 번 마을에서 회의가 열렸을 때, 이 안건을 제시했는데 나의 모습을 보니, 충분히 그것은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많은 분이 동의해 주셨지만, 실질적으로 아직은 더 안정이 필요하고 또 급하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며,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사안이기에 당장 결정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는 장기적으로 보고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쳐 결정하되,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방안으로 나아가자는 결론을 내리고 이 사안은 일단 마무리되었다. 다행히 내가 생각한 것보다 좋은 반응이었고 어차피 나 또한 급하게 이것을 시행할 생각은 없었기에 일이 매우 잘 풀렸다고 생각했다.
이런 일들을 하면서 내가 보기에 마을은 평화롭고 사랑이 넘치는 듯 보였다. 나는 이에 조금 더 이런 분위기를 이어 나가고자 여러 행사를 기획하여 실행하기도 했었다. 소소하지만 요리대회를 열어 맛있는 음식을 다 같이 나누어 먹기도 했고 매년 열리는 체육대회가 있지만, 그것을 제외하고 활동적인 젊은이들을 주축으로 한 규모가 작은 체육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대회라고 이름을 짓기는 했지만, 승부를 겨룬다는 느낌보다는 모두 모여서 함께 어떤 활동을 한다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그렇게 내가 수호자가 된 뒤로 거의 큰 사건 없이 1년이 지났다. 정신없이 많은 시간을 달려왔기에 이제는 약간 쉴 때도 되었다고 생각했을 시점에 마침 마을의 여러 사람이 이제는 여유를 가지고 개인적인 시간을 조금 가지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봐 주셨다. 중요한 일들은 거의 한 것 같고 쉰다고 하더라도 언제든지 내가 필요한 일이 생긴다면 그 일을 실행할 수도 있었기에 나는 한동안은 큰일을 하지 않고 쉬기로 했다.
그런 마음을 먹고 방에서 쉬는 동안 무엇을 할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러던 중 문득 사모님께서 주신 두꺼운 공책이 생각났다. 그 공책은 내가 사모님께 받은 날 놔둔 곳에 그대로 있었다. 딱히 제목은 없었고 첫 페이지부터 본론이 시작된 듯했다. 맨 위쪽에는 날짜가, 그 아래에는 내용은 정확히 읽지 않아 알 수 없었지만 일지 혹은 일기인 것 같았다. 아니면, 그 중간쯤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