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지 3
0000년 01월 15일
오늘 저녁쯤에 그 괴물이 다시 찾아왔다. 다행히 이번에 시도할 작전은 날이 어두워도 가능한 것이었기에, 계획대로 작전을 수행했다. 정확히는 수행되었다. 괴물은 우리가 며칠 전에 풀어두었던 생선 모양의 독주머니에 관심을 보였고 그 괴물은 먹기 시작했다. 우리는 효과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 괴물 같은 녀석은 독에도 내성이 있는 듯했다. 어두워서 정확히 보지는 못했지만, 괴로워하는 기색조차 없는 듯했다. 이번 시도도 실패했고 우리는 지치기 시작했다.
슬슬 저것을 잡을 수 없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은 대부분 사람이 저것을 잡기 위해 조금 더 노력해 봐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런 의지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생각과 의지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이것들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생각해내는 것이 수호자인 나의 의무일 것이다.
이번에는 저것의 큰 크기를 감안해서 투창을 사용해 보자고 건의했다. 다만 투창만 사용한다면, 조금 더 큰 화살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에 투창에 아주 무거운 돌을 매달아 보기로 했다. 그 괴물이 나타나는 곳은 절벽 아래 남쪽 바다였기 때문에 절벽 위에서 여러 사람이 그것을 들고 있다가 그 괴물이 발견되면, 떨어뜨리는 식의 작전이었다.
일단 아주 큰 투창과 그에 걸맞은 무거운 돌을 구해야 했다. 그 괴물이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우리는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우선 우리가 구할 수 있는 최고로 큰 투창과 우리가 들 수 있는 최대한의 무게 값을 구해야 했다. 아무래도 우리가 희망하는 정도의 크기가 되는 투창은 다른 마을에서 구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만드는 것으로 결정했다. 돌은 굳이 하나만 이용할 필요가 없었다. 또 굳이 돌이 아니어도 되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무게에만 집중하고 크게 필요 없는 물건들로 무게를 맞추기로 했다.
추신: 돌을 우리가 드는 것이 아니라, 절벽 아래로 밀면 더 무거운 무게를 던질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와 그렇게 하기로 했다. 투창은 원래 다른 마을의 대장장이에게 만들 수 있는 가장 큰 창끝을 부탁하고 창의 몸체는 우리 마을의 나무를 사용하고자 했으나, 위와 같은 전술 변화로 인해 몸체를 굳이 만들지 말고 그 돌에 바로 창끝을 매달기로 했다.
18일: 괴물이 나타났으나, 아직 준비되지 않아 작전을 실행하지 못했다.
22, 25일: 준비가 되었고 괴물이 나타났으나 그것이 맞을 만큼 가까이 오지 않아 작전을 실행하지 못했다.
0000년 01월 28일
오늘 이른 아침 그 괴물이 나타났다. 드디어 절벽과 가까운 곳까지 다가왔고 우리는 때에 맞춰 돌을 굴렸다. 하지만 실패했다. 이번에는 그 괴물의 강력함이 아니라, 나의 실책이었다. 그 괴물에만 너무 집중한 탓인지, 마음이 조급했던 탓인지 간과하고 있던 것이 있었다. 돌을 밀어 떨어뜨릴 때 그 돌이 완전히 곧게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떨어지는 과정에서 돌이 약간 돌아서 뾰족한 창끝을 맞추지 못했다. 대신 그 무거운 돌은 정통했는데, 별 효과는 없어 보였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에 그 괴물은 저번과 똑같은 미소를 짓고는 사라져버렸다.
0000년 01월 29일
어제 그 작전이 실패한 이후로 다들 전의를 잃은 듯했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거의 최선의 작전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무서운 적의 출현의 서막이었다. ‘단체의 붕괴’, ‘내부 분열’. ‘개인 내면의 붕괴’, ‘절망’. 모든 경우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경우 외부의 충격보다 내부의 충격이 더 무섭다. 내부 분열과 절망, 이 두 가지 내부의 적은 우리 마을은 완전히 붕괴시킬 만큼, 어쩌면 그 괴물보다 훨씬 더 강하고 파괴적인 적이었다. 우리 단체에서 점점 언성을 높이는 사람이 늘어났고 무기력한 표정으로 절망하는 사람 또한 늘어났다. 반면, 처음 저 괴물을 잡겠다는 엄청난 의지를 가지고 괴물을 물리치기 위해 노력하려는 사람은 줄어들었다.
이번에도 괴물을 잡지 못했다는 소식에 꽤 많은 사람이 모였다. 이에, 우리 마을 사람들은 우리 단체의 근거지가 아닌, 마을의 회의 장소에서 모두 모였다. 그동안은 기껏 해 봤자 우리 단체를 제외하고는 5명 남짓한 사람이 왔었고 많이 오더라도 10명 이상이 온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최소한 한 가구당 한 명씩은 왔고 가구 구성원의 대부분이 오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항상 해오던 것처럼 그 괴물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번 작전에서는 나의 실책도 있었기에 역시나 나에 대한 비판은 피할 수가 없었다.
먼저 저 괴물을 상대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의견이 갈렸고, 나를 믿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의견이 갈리면서 충돌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우리 마을의 공동체 의식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에 처음에는 나조차도 방황했던 것 같다. 그 괴물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잡을 수 있고 그것을 물리치려는 시도가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인지, 내가, 아니, 우리 마을이 그 괴물을 물리칠만한 능력이 있는지, 나는 우리마을 수호자로서의 자격이 있는지 등의 질문이 나를 잠식했다. 그렇게 한참을 절망 속에 빠져있다가 보니 내가 절망에 빠져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기로 했다.
그렇게 연설을 시작하려고 했으나, 사람들은 나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우리 마을에서 수호자로서의 위상이, 어쩌면 나의 위상이 벌써 많이 떨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우리 마을 사람들에게 서운한 감정을 느꼈다. 나름대로 열심히 저 괴물을 잡으려고 노력했고 최선을 다했는데, 한 번의 실수가 있었다고 나의 말조차 들어주지 않을 정도로 가혹한 태도로 나를 대하는 것이. 나도 저 괴물을 잡지 못해 충분히 괴로운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음이. 하지만 지금 그런 감정에 매몰될 때가 아니었다. 결국, 난 최후의 카드를 꺼냈다.
“에피스테, 여러분 혹시 에피스테를 보신 분이 있습니까?”
큰 소리로 외치자 모두 나에게 집중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네, 맞습니다. 알고 계신 분들은 다 알고 계셨을 것이고,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상황 속에 몰랐던 분들도 많으셨겠지만, 그 괴물이 처음 왔을 때 사라졌던 마을 주민 중 한 명이 저의 딸, 에피스테였습니다. 분명 여러분도 힘든 걸 알고 있습니다. 절망스러운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도 마찬가집니다.”
잠깐 정적이 흘렀다.
“잠시, 제 이야기를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먼저, 죄송합니다. 비록 이번 작전에서 돌멩이는 맞췄기에 완전한 실패를 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기대했던, 우리가 실현 가능했던 최고의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에는 저의 실책이 컸습니다. 누군가는 저에 대한 자비로운 평가를 내려주셔서 운이 안 좋았다고 말씀할 수도 있지만 지금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그런 변명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좋은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저의 잘못을 단순히 운으로 돌릴 생각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음으로, 이 마을의 수호자로서 그 괴물을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을 아직 찾지 못한 것에 대해서 사죄에 말씀을 드리는 것이 합당한 것으로 생각하며, 죄송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깊은 반성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고 여기에 계시지 않은 우리 마을의 모두가 힘을 합쳐서 저 괴물을 물리치기 위해 노력했고 저를 믿어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하루라도 빨리 저 괴물을 잡을 방법을 찾아내야 하며, 마을의 평화를 가져와야 함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마을의 수호자로서 좋은 교육을 받고 많은 사람의 사랑과 존경을 받아왔습니다. 비록 저에게 주어진 그런 혜택들 때문이 아니라, 수호자로서 이 마을을 지킬 의무가 있고 우리 마을에서 생기는 모든 문제는 제가 앞장서서, 그리고 책임감을 가지고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여러분들이 베풀어주신 여러 혜택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 또한 알고 있고 실제로 그 점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여러분이 저에게 거는 기대가 크며 실책에 따른, 그리고 아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함에 대한 실망이 큰 것이 당연하리라 생각합니다.
그 괴물은 너무나도 강력합니다. 우리 마을의 힘으로는 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고 괜히 잡으려다가 더 큰 화만 입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괴물이 아직은 남쪽 바다에서 모습을 보이지만 다른 바다에서도 모습을 보일 수가 있고 그렇게 된다면 우리 마을은 매우 심각한 식량난에 처할 것입니다. 또 뿐만 아니라, 처음 남쪽 바다에 있었던 마을 주민들을 제외하면, 즉 우리가 그 괴물의 존재를 알고 난 후 대처하고부터는 아직 그 괴물이 직접적인 피해를 준 사례는 없다고 하더라도, 저번에 불을 뿜는 모습을 봤을 때, 언제 우리 마을에 직접적인 피해를 줄지 모릅니다. 이런 점들을 모두 고려했을 때, 그 괴물이 매우 강력해서 도저히 물리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라도 저는, 그리고 우리는 시도해야 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제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를 한 번 더 믿어주십시오. 그리고 함께해주십시오. 물론 그동안의 노력이 결코 작거나 부족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상대가 너무나도 강력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희도 그전보다 훨씬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사용한 비용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 많은 분이 시간과 힘을 써주신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상대하기 위해 더 큰 비용을 쓰는 것을 허락해 주시고 더 많은 분이 더 많은 시간과 힘을 써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절대로 우리끼리 다투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적은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가장 위험한 적은 내부의 보이지 않는 깊은 곳에서 우리가 방심하기를 기다렸다가 때가 되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중 누군가가 그렇다는 것이 아닙니다. 내부의 적은 믿음이라는 면역체계가 무너진 누구나 숙주로 삼아 기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어떤 일이 있더라도 서로를 믿고 사랑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내부가 안정되어 있다면 어떤 외부의 적도 우리를 무너뜨리지는 못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절망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지금 저 괴물이 온 이후로 우리 마을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고통받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모두 노력하고 있는데 좋은 소식 하나 들리지 않으니, 당연히 답답한 마음도 들고 저 괴물을 잡을 수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희가 진정으로 실패하는 순간은 우리가 열심히 준비한 작전이 아무런 효과가 없을 때가 아닙니다. 그 괴물이 더 커져서 돌아올 때도 아닙니다. 실수로 작전을 망칠 때도 아닙니다. 절망에 빠져 더 이상 나아갈 의지를, 괴물을 잡으려는 의지를 잃을 때, 그때가 진정으로 실패하는 순간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획기적인 작전도, 작전을 수행할 더 많은 자원과 사람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저 괴물을 잡겠다는 의지, 저 괴물을 잡을 수 있다는 희망, 마을 공동체 서로 간의 믿음입니다.”
대충 이런 연설을 했던 것 같다. 나의 연설이 우리 마을 사람들을 감동시키지는 못했더라도 일종의 환기와 동기부여의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마을 사람들은 다시 나에게 집중해 주었고 우리는 다시 그 괴물을 상대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모든 작전에 실패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여러 가지 작전을 동시에 추진하기로 했다.
일단 준비가 비교적 수월한 방법 중에 우리가 사용하지 않은 어떤 방법이 있는지 확인해 봤다. 먼저 그것을 유인하여 우리 마을의 절벽과 부딪히게 만들면 어떠냐는 의견이 나왔다. 이것은 우리가 유인하는 방법을 모를뿐더러 그 괴물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너무 위험한 것 같았기에 철회되었다.
수월한 방법이라는 것에 집중하여 줄을 사용해 보기로 했다. 일단 매우 길고 굵은 줄을 만들어서 그것을 못 움직이게 하고 힘이 다 빠질 때까지 기다리는 일종의 낚시 방법을 쓰자는 것이었다. 물론 그전의 사례를 생각해 봤을 때 분명 성공할 가능성이 높지는 않아 보였다.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을 줄로 묶을 수 있냐는 것이었고 묶는다고 하더라도 언제 지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또 줄을 고정해야 하는데, 일반적인 나무 같은 것은 그 괴물의 힘으로 부서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준비하는 것이 어렵지 않고, 그것을 시행하는데 감수해야 할 위험이 크지 않기에 그것을 준비하면서 다른 방안을 생각하기로 했다. 일단 아주 두껍고 긴 밧줄을 만들기로 했고 그렇게 한다면 그것을 던지기는 어렵기에 저번처럼 절벽 아래로 굴리는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다행히 실패하더라도 많은 마을 사람이 모여서 그 줄을 다시 들어 올린다면 여러 번 시도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시도해 볼 가치는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