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지 2
0000년 0월 23일
아침에 그 괴물이 목격되었다. 나는 바로 활과 화살을 챙겨 남쪽 바다로 갔다. 그 괴물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화살을 쐈다. 덩치가 크고 거리가 멀지 않았던 만큼 맞추기는 쉬웠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말한 대로 괴물이었다. 내가 남아있는 활과 화살이라고 말했었지만 나름대로 화살촉은 매우 날카롭고 활도 성능이 좋은 활이었다. 그리고 나름 정확하게 명중했다. 하지만 그것이 전혀 소용이 없었다. 화살은 그 괴물의 피부 안으로 꽂히지 못하고 바로 튕겨 나와 버렸다. 혹시나 눈이나 입 쪽을 맞추면 치명상을 입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눈과 입 쪽으로 화살을 쏘기도 했지만, 그 괴물은 눈과 입으로 오는 화살을 피했다. 결국 화살은 좋은 수단이 아니었다.
나는 그 괴물이 사라지자마자 바로 회의를 열었다. 일단 나는 일반적인 화살을 통해서는 저것을 절대 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부정적인 측면을 말해주는 한편, 덩치가 크기에 화살을 맞추기는 매우 쉽다는 점도 덧붙였다. 이에 일반적인 화살이 아니라 화살촉에 불을 붙여 그 괴물의 몸에 불이 붙게 만든다면 잡을 수 있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마을 사람들은 나의 의견에 동의하며, 불에 붙는 화살촉을 만들기 시작했다.
0000년 0월 26일
어제 늦은 점심 그것이 목격되었다. 나는 특수하게 만든 화살촉과 활을 챙겨 남쪽 바다로 갔다. 화살촉에 불을 붙이고 그것을 향해 쐈는데, 그것이 바다 괴물이다 보니, 물을 많이 머금고 있어서 불이 잘 붙지 않았다. 또 쏘는 화살 중 반 이상은 날아가던 도중 바람에 의해 불이 꺼져버렸다.
그전과 같이 마을 사람들을 불러 회의를 열었고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기에 앞서 이번 사태가 심각하고 해결하기 쉽지 않은 문제인 만큼 다양하고 많은 시도를 해봐야 하며, 그런 시도를 하더라도 실패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그만큼 많은 회의가 필요할 것이기 지금처럼 계속 내가 임의로 회의를 여는 것이 효율적이지 않으며, 다른 마을에 있는 여러 단체나 기구들을 설명하고 이 특수한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어떤 단체를 만드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하지만 단체와 기구에 대해서 정확히 모르기 때문인지 마을 사람들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이에 단체를 설립하면 보다 더 효율적으로 의견을 결정할 수 있고 이렇게 임의로 모이는 것이 아니라 일부의 사람들이 이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계속 집중하기에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비하기도 좋다고 했다.
약간의 사람들이 나의 설명을 듣고 마음이 바뀐 듯했으니 일부 사람들이 이때까지 우리 마을의 단체가 없었고 그 단체가 생김으로 인해 모든 일을 공통으로 결정하는 우리 마을의 신조가 깨질 수도 있고 만약 이 사태가 해결될 때의 이 단체의 사람들이 자만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이에 물론 이때까지 우리 마을에서 어떤 단체나 기구가 있었던 적이 없었지만, 이번 사태가 심각한 만큼 예외를 두어 생길 수 있는 부작용들을 감수하고라도 이렇게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또 이 단체의 참가하는 사람들은 특별하게 공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마을을 위해 당연한 일을 하는 것이며, 이 단체의 사람들만 이 문제에 해결하기 위해 힘쓰는 것이 아니라, 모든 마을 사람이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힘쓸 것이고 예시를 두었던 다른 마을의 단체와는 달리 모든 마을 사람이 참가할 수 있는 열린 단체로 만들 것이라 주장했다.
이런 긴 논의 끝에 예외적으로 우리 마을에 단체를 설립하기로 했고 앞서 말했듯이 이 단체는 개방적인 단체로, 참가한다고 해서 특별한 혜택이나 보상은 없으며, 지금 직면한 이 문제가 해결되는 즉시 해체하기로 했다. 이 단체는 수호자인 내가 이끌고 내가 머무는 집을 근거지로 두었다. 내가 머무는 이 집에 원래 살던 마을 사람들은 우선 남아있는 다른 집에서 살게 했다. 단체의 구성원은 우리 마을 전체의 사람들로 하되, 의견을 종합하고 결정할 만한 지혜로운 사람을 5명 정도 뽑아 결정원으로 두고 또 필요시에 무기를 다루거나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젊고 힘 있는 사람 10명 정도를 뽑아 수행원으로 두었다.
기본적으로 이 단체는 내가 의견을 제시하면, 결정원과 그 외에 참가할 수 있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그것을 검토해 보고 결정했다. 그렇게 내린 결정을 수행원이 실행하기로 했다. 만약 더 많은 인원이 필요하다면, 참가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 작전을 진행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우선 기존의 했었던 감시는 그대로 유지하되, 결정원과 수행원은 빠지고 다른 사람으로 대체했다.
이렇게 기본적인 구조를 만들고 나서 첫 번째로 제시한 의견은 기존의 불화살이 실패한 원인이 불화살의 근본적인 문제보다 바다라는 상황적 요건 때문이며, 이 상황을 극복할 방법을 찾는다면, 불화살이라는 작전이 꽤 유용한 작전이라는 것이고 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물과 섞이지 않는 기름을 그 괴물의 몸에 묻혀 불화살을 닿게 한다면, 그 괴물을 죽일만한 좋은 작전이라는 것이었다.
이 작전 자체는 그럴싸해 보였는데, 문제는 어떻게 그 괴물의 몸에 기름을 묻게 하냐는 것이었다. 바다에 기름을 무작정 붓기에는 바다에 기름을 붓는다고 해서 그 괴물이 기름을 뒤집어쓸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에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또 한편, 직접 그 괴물에게 기름을 붓는 것은 인명피해가 생길 가능성이 높기에 최대한 자제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에 얇은 천에 기름을 싼 포대를 만들어 던지면 어떨까? 라는 의견이 나왔고 던져서 맞추기가 어렵다는 점과 그 괴물의 덩치가 크다는 점을 감안하여 얇은 천에 기름을 싸되, 발사대를 만들어 발사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먼저 얼마 정도의 기름을 쏴서 쏠 것인가를 두고 얘기를 나눴는데, 한 개의 큰 기름 포대를 만들어 던질지 여러 개의 작은 기름 포대를 만들지를 의논했다. 실패의 가능성도 있고 또 괴물의 여러 부분을 맞추어서 화살을 여러 번 쏘아본다면, 혹여나 그 괴물의 약점도 알 수 있기 때문에 작은 포대를 여러 개 만들어 여러 군데 쏘고 화살을 쏴 보기로 했다. 그렇게 발사대와 기름 포대를 만들기 시작했고 수행원을 훈련시키기 시작했다.
0000년 1월 2일
어제 늦은 오후 드디어 그 괴물이 다시 모습을 나타냈다. 미리 발사대와 기름포대를 준비해두었기에 바로 작전을 실행할 수 있었지만, 해가 지기까지 많은 시간이 남지 않았기에 신속하게 작전을 실행하기로 했다. 처음에 몇 개의 기름 포대는 적중시키지 못했지만, 점점 능숙해졌고 그 괴물의 여러 부분에 맞출 수 있었다. 후에 나는 화살촉에 불을 붙여 쏴보았다. 반쯤은 바람에 의해 꺼졌고 반쯤은 그 괴물에게 명중했다. 불도 붙었다.
하지만 그 피부는 불에 타지 않는 것 같았고 또 불이 커지자, 바닷속으로 들어가 불을 꺼버렸다. 아마도 그 괴물은 대처법을 알고 있는 듯했다. 열심히 준비하고 기대를 했던 만큼 나를 포함한 단체의 여러 사람이 실망했다. 나는 그때 분명 보았다. 그 괴물이 웃고 있는 것을, 그리고 그 괴물은 홀연히 모습을 감추었다.
우리는 다른 방안을 찾아야 했다. 불이라는 방법은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화살이라는 것이 명중하기에는 대단히 쉬워 보였다. 그래서 우리는 한 번만 더 화살을 믿어보기로 했다. 일단 이때까지 사용했던 모든 화살은 그 괴물의 가죽을 뚫지 못했다. 그렇기에 더욱더 날카롭고 단단한 화살과 성능이 좋은 활을 쓰기로 했다. 그리고 몸에 상처가 생기는 정도로는 큰 피해를 줄 수 없을 것 같았기에, 화살촉에는 아주 강력한 독을 바르기로 했다. 독과 성능 좋은 활, 더 날카롭고 단단한 화살촉은 우리 마을에서 구할 수 없었고 무역이 필요했다. 지금까지 그 괴물은 남쪽 바다로만 왔다. 또 돌아갈 때도 남쪽으로만 돌아갔다. 그 덩치를 생각하면 북쪽 해안으로 오기는 힘들어 보였으며, 아마 남쪽에서 서식하는 듯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상황을 대비해서 괴물의 움직임을 조금 더 살펴본 뒤 북쪽에 있는 마을로 무역을 갔다 오면 어떨까? 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다행히 무역 담당자는 마을에 닥친 위기 앞에서 모두를 지키기 위해 목숨쯤은 감수해야 한다며, 적극적으로 다른 마을을 갔다 오겠다는 뜻을 보였다. 난 그 의지와 책임감에 찬사를 보내며, 작전에 필요한 물건들을 다른 마을에서 구해오기로 했다. 망원경도 하나 구해오기로 했다. 앞으로 저 괴물을 물리치기 위해 무역을 떠날 일이 많을 수도 있다. 무역 담당자의 안전을 위해서는 무역을 갈 때마다 그 괴물이 근처에 있는지 파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작전 자체는 간단했고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수행원이 해야 할 일은 딱히 없었다.
제발 이번에는 성공하기를...
0000년 1월 5일
오늘 그 괴물이 나타났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 괴물은 성장을 다 마치지 않은 상태였던 것 같다. 저번에 봤을 때 보다 더 커져서 돌아왔다. 아마 다른 괴물이 아니라 처음 봤던 괴물이 계속 커지는 것 같다. 저번에 봤던 그 괴물의 덩치에 비하면, 엄청나게 많이 자란 것은 아니었지만 애초에 너무나도 큰 몸체를 가지고 있었기에 그 괴물에게는 아주 약간 자란 것이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볼 때 그 차이가 느껴지는 정도였다. 우리는 그 괴물이 어떤 갑작스러운 행동을 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것이 돌아가기를 기다렸다. 그것은 물고기를 잡아먹다가 돌아갔다.
그 괴물의 크기가 커졌다는 것이 우리 마을에게는 더 큰 위험이자, 그것을 잡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동시에 그 크기가 매우 크기에 우리 마을의 북쪽 해안, 동쪽, 서쪽의 물 깊이가 얕은 곳으로는 올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괴물이 돌아가고 나서는 무역 담당자와 조심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역 담당자도 내 생각에 동의했으며, 이 괴물이 매일 오는 것이 아니라, 불규칙적이지만 어느 정도 주기적으로 오기에 최대한 빠르게 갔다 오면 괜찮을 것 같다는 의견을 밝혔다. 나는 이에 동의하고 단체 사람들을 모아 저번에 논의했던 대로 독화살 작전을 실행하겠다고 알렸다. 무역 담당자는 다음 날, 날이 밝는 대로 바로 출발해서 갔다 오기로 했다. 나도 예의상 북쪽 해안까지 같이 가서 무역 담당자를 배웅해 주었다. 난 혹시나 하는 걱정에 신신당부에 말을 전했지만, 무역 담당자는 큰일 없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모습을 보였다.
0000년 1월 9일
무역 담당자가 물건을 가지고 돌아온 뒤, 이틀이 되는 오늘 점심과 오후 사이쯤에 그 괴물이 나타났다. 나는 바로 독화살을 쏘아 명중했다. 이번에는 비록 그 가죽을 완전히 뚫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흠집 정도는 낼 수 있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성능이 좋은 활과 조금 더 날카로운 화살을 쓴 만큼 저번보다는 효과가 있는 듯했다.
다만, 독은 효과가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독화살은 그것이 가죽을 뚫고 들어가야만 효과를 볼 수 있는 무기다. 하지만 흠집을 내는 정도에서 멈추고 그것이 그 가죽 깊이 파고들지는 못했기에 아마도 독이 몸속 깊이 스며들지는 않은 듯했다. 이 활과 화살은 우리 마을에서 구할 수 있는 거의 최고의 활과 화살이었다. 결국, 활이라는 수단은 포기해야 했다.
그렇게 활을 포기하고는 독이라는 수단은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독을 조금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방법을 찾아보았다. 가장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방법은 그 독을 직접 먹이는 것이었으나, 저번의 기름과 똑같이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 있었기에 배제했고 바닷물에 독을 푸는 방안과 독주머니를 바다에 뿌려두는 방안이었다. 역시 저번 기름을 사용할 때 논의가 나왔던 것 같이 바닷물에 무언가를 하는 것은 바다를 상하게 할 수 있을뿐더러, 그 괴물이 독이 풀어진 바닷물을 먹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생선 모양의 독주머니를 많이 만들어놓고 미리 바다에 풀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