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5-4

일지 4

by DEN

0000년 02월 2일

밧줄을 여러 갈래로 나누어 튼튼한 바위와 나무에 걸어두었다. 그리고 그 괴물의 힘이 매우 강력할 것을 대비해 언제든지 밧줄을 자를 수 있도록 준비해 두었다. 일단 밧줄을 이용한 작전은 이 정도로 하고 다른 작전도 준비하기로 했다. 저번에 무거운 돌은 실패했었다. 그것을 조금 변형해서 생각해 보았는데, 무거운 돌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돌 자체를 뾰족하게 만든다는 생각이었다. 여기서 돌보다는 철이 훨씬 좋을 것 같아서, 일종의 아주 커다란 철퇴를 만들기로 했다.

하지만 밧줄과 다르게 이것은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작전이었다. 이때까지 우리 마을에서 그만큼의 철을 사용한 적은 없었다. 조금 과장하자면,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철의 양을 모두 합친 것과 맞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동안 철을 필요한 만큼만 잘 논의해서 사용했던 만큼 이번 작전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큰 무리가 되지는 않았다. 다만, 그만큼의 철을 일종의 큰 철퇴로 만드는 것이 힘들었다. 다른 마을에서 여러 명의 기술자를 불러와야 했고 꽤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했다. 그래도 우리는 이 모든 것을 감내하고라도 이 작전을 수행하기로 했다.



0000년 02월 4일

생각보다 사태가 심각하다. 우리는 예전에 봤던 그것의 크기를 생각하여 밧줄 작전을 준비했었는데, 이번에 그것이 더 커져서 왔다. 일단 준비는 했기 때문에 밧줄을 던져보긴 했고 몇 번의 시도 끝에 운 좋게 걸리기는 했으나 그것의 힘이 너무 커 우리 마을을 위협했기에 빠르게 밧줄을 잘라버렸다. 밧줄을 잘라내는 과정에서 수행원 중 한 명이 밧줄에 맞아 크게 다쳤다. 일단 그 수행원을 치료하는 데 집중했다.

수행원도 다쳤고 아직 대형 철퇴 작전도 준비가 되지 않았기에 우리는 그것이 물러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이 철퇴 작전까지 실패할 것을 고려하여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작전의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충각, 이 역시 예전의 수호자 교육을 받을 때 배운 적이 있다. 아마도 역사를 배울 때 배웠던 것 같다. 우리 마을처럼 여러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던 그리스라는 곳에서는 해전을 할 때 배 앞에 기다란 뿔을 달아서 배를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전술을 썼었다.

물론 이때까지 썼던 작전을 생각해 봤을 때, 이 작전 또한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때까지 썼던 작전과는 다르게 그 괴물의 약점을 노릴 수 있다. 돌을 이용한 투창은 맞출 수는 있었으나 그 괴물의 특정 부위를 공격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활 또한 위에서 아래로 쏘았기 때문에 맞출 수 있는 곳이 한정적이었다. 이 작전은 밑에서 그것을 직접 공격할 수 있기에 만약 운이 좋아 그 괴물의 약점을 알아낼 수 있다면, 비록 이 작전은 실패한다고 해도 얻는 것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전은 그런 유용성이 있는 만큼 치명적인 위험이 있다. 바로 인명피해의 위험성이 크다는 것이다. 일단 배를 그 괴물에게 적중시키려면 배를 몰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배가 그 큰 괴물과 부딪힌다면 배 안에 있는 사람이 살 확률이 거의 없다. 심지어 그 괴물이 먼저 배를 친다면 괴물을 공격하기도 전에 죽을 수도 있다. 이 작전은 최후의 방법으로 남겨두자.



0000년 02월 5일

오늘 마을 사람들을 모았다. 우선, 어제 수행원이 다친 것에 관해 이야기를 꺼냈다. 어떤 이유에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 작전을 수행했고 수행원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이 작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생겼고 수행원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이 있음에도 크게 다치게 되었는지. 지금 어떤 상태이며, 앞으로 어떤 절차를 진행할 것인지. 그리고 이 작전을 총괄하고 지도하는 지도자, 또 한 마을의 수호자로서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며, 사과의 뜻을 전한다는 내용을 전했다.

그다음에는 어제 생각했던 작전에 대해 말했다. 역시나 모두 이것은 너무나도 위험하다고 만류했다. 일단 성공 확률이 그리 높지도 않은데 목숨을 거는 것은 비효율적이며, 수호자인 내가 죽는다면 이 일을 맡을 사람이 누구이며, 또 우리 마을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인 수호자가 죽는다면 그것이 더 큰 혼란과 문제를 야기하는 것이 아니겠냐는 얘기들이 나왔다. 하지만 실제로 지금 준비 중인 철퇴를 사용한 작전이 실패한다면, 지금 상황에서 더 시도할 수 있는 것은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살짝 위험을 줄여보기로 했다. 밑으로 가서 직접 그것을 살펴보되─이것도 매우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충각으로 들이박는 것보다는 훨씬 안전했다─위험하다고 생각되면 바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물론 이것은 언제까지나 철퇴 작전이 실패했을 경우에만 그렇게 하기로 했다. 일단은 그 철퇴 작전에 모든 것을 걸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도대체 왜 그리 그 괴물을 잡으려고 하는 건지, 물고기 좀 덜 잡고 무역 좀 덜하면 어때? 자기 딸이 그 괴물 때문에 죽었다고 복수심에 눈이 멀었어.”

나는 이 순간, 이 마을의 수호자로서는 처음으로 우리 마을의 누군가가 혐오스럽게 느껴졌다. 다친 수행원의 가족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수행원의 가족? 혹은 다른 어떤 사람? 이 말이 들리자마자 나는 고개를 들고 소리가 났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분위기가 조금 어수선해졌다. 다시 고개를 돌려 내 손을 바라보니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몸에 힘이 좀 많이 들어간 것 같았다. 쥐었던 주먹을 펴고 조용히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고민이 들었다. 나는 왜 저 괴물을 잡으려고 하는 걸까? 정말 딸에 대한 복수심 때문일까? 마을 사람들을 위한 것일까? 내가 마을의 수호자가 아니었어도 저 괴물을 잡기 위해 이렇게 노력했을까? 나의 책임감과 죄책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하지만 난 저 괴물을 잡으면서 딸에 관한 생각도, 말도 안 하려고 노력했다. 이 일지조차도 최대한 객관적으로 쓰기 위해 노력했다. 작전을 구상하고 수행할 때도, 단체를 만들고 사람들을 지도할 때도 난 그러지 않았다. 일단 그런 사사로운 감정을 미뤄뒀다. 외면했다. 저 괴물을 잡은 뒤 느껴도 될 것이라고. 일단 난 수호자이며, 공적인 일을 먼저 해야 한다고.

그런데 저 사람들은 나를 몰라준다. 저번에 계속된 시도에도 괴물에게 상처 하나 주지 못했다고 나를 원망했다. 나의 노력을 모른 채 일단 포기하려 했다. 이 작전을 구상하고 실행한 것은 나지만 나도 나름대로 노력했다. 수행원이 다친 것은 사고다. 수호자로서 책임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내 잘못은 아니다. 그런데, 저런 식으로 날 모욕한다고? 내 딸의 이름을 거들먹거린다고?

나도 이젠 더 하기 싫다. 내가 이런 대접을 받으면서 저 괴물을 잡을 이유는 없다. 저 괴물을 잡을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것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 말했듯이 나는 이것을 첫 번째로는 내가 그 괴물을 물리치는 데 도움을 받기 위해 썼고 두 번째로는 만약 내가 실패하더라도 그다음에 나의 일을 맡아줄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썼다. 이 일에 전적으로 책임감을 가지고 성공해야 하는 것이 나의 의무이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제는 후자를 조금 우선에 두고 이것을 써야 할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지금까지의 노력이 비록 그렇게 많은 것을 투자한 것은 아니고 오랫동안 노력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마을은 그렇게 크지도 않고 강하지도 않다. 또 저 괴물을 잡는데, 너무 많은 힘을 쓴다면 그거대로 우리 마을에는 큰 문제가 생길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또 우리가 했던 시도들이 최선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차선은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슬슬 이제는 포기해야 할 때가 가까워진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포기하고 싶다.



0000년 02월 8일

괴물이 출현했으나, 철퇴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기에 작전은 수행하지 못했다. 철퇴 작전에는 조금 변동이 있다. 다른 마을의 기술자들이 괴물이 나타나는 이곳으로 오기를 꺼렸기에 우리는 큰 배를 이용해 철을 실어 가져간 뒤, 철퇴를 만들어 다시 가져오기로 했다. 그리고 이 괴물은 계속 성장하는 듯 보이는데, 성장세가 심상치 않다. 분명 초기에 그 괴물을 볼 때는 성장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언젠가부터 더 자라기 시작하더니 이번에는 생각보다 더 커져서 나타났다. 또 우리 마을에 들리는 주기도 점점 더 짧아지고 있다.



0000년 02월 12일

오늘도 그 괴물이 모습을 보였다. 여전히 준비되지 않아 마음을 졸였지만, 이번에는 물고기도 먹지 않고 또 잠깐만 있다가 돌아갔다.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또 그 괴물의 정체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처음에 그것을 일단 용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었는데, 내가 교육을 받았던 마을의 설화 중에서 용과 비슷한 것이 있다. 나는 앞서 용은 보통 하늘을 나는 상상의 동물이라는 점에서 고민했었다. 하지만 바다에서 사는 용이 있다. ‘이무기’, 물론 이무기는 바다에서 사는 용이라기보다는 아직 용이 되지 못한 채 바다에서 용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설화로 전해진 이야기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고증되지도 않고 지역이나 시대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여의주라는 보물을 가지고 바다에서 1,000년을 수행하면, 용이 될 수 있다고 들었다.

일단 바다에 산다는 점, 용과 닮았다는 점에서 설화에서 들은 이무기와 매우 닮아 보인다. 물론 역시 용과 같이 상상의 동물이라는 점에서 확정할 수는 없다. 그래도 가장 가깝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상상의 동물이기에 몸의 구조가 어떻고 특징이 무엇이며, 약점이나 죽이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다만 실제로 내가 봤기 때문에 그 모습만 알뿐이다. 또 그 설화에서 나오는 여의주라는 것도 마음에 걸린다. 여의주라는 것이 믿을 수 없는 마법 같은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우리 마을에 나타난 그 괴물 또한 믿을 수 없는 것은 매한가지다. 그렇다면, 여의주를 주면 떠날까? 아니면, 또 여의주를 한 개만 가져야 하는데, 2개나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용이 되지 못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럼, 그 이무기로부터 여의주 한 개를 받아야 하는 걸까?

헛된 믿음일지도 모르겠지만, 혹시 그 괴물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계속 이렇게 노력하다 보면, 그것을 물리칠 방법도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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