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지 5
0000년 02월 13일
어제 그 괴물의 정체를 고민하다가 잠들었는데 꿈에 죽은 내 딸이 나왔다. 딸은 그 괴물과 관련된 여러 가지 내용을 말해주었다. 그 괴물의 이름을 뭐라고 하더라?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내가 교육을 받을 때 그 괴물과 비슷한 상상 속 괴물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 듯하다. 그 기억만 어렴풋이 남아있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저 괴물을 나의, 우리 마을의, 또 다른 마을 누군가의 절망을 먹고 자란다. 고통 속에서 괴로워할 때, 저 괴물을 보고 절망을 느낄 때 저 괴물은 더욱 커지고 더욱 강해진다. 저 괴물이 자꾸 커지는 것은 나의 절망과 고통이 그만큼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저 괴물을 충분히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절망과 고통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절대 저 괴물을 잡아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말이 현실보다도 생생하게 기억에 새겨져 있다.
“난 아빠를 믿어, 비록 난 저 괴물의 희생양이 되었지만, 우리 마을의 다른 사람은 저 괴물의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할 수 있을 거라고. 저 괴물을 꼭 잡아줘.”
이 생생한 기억의 문장을 듣고는 잠에서 깼다. 분명 꿈이었는데 꿈 같지 않았다. 현실보다도 더 현실 같았다. 그리고 이상하게 마음 깊은 곳에서 희망이 싹트는 것을 느꼈다.
0000년 02월 17일
오늘 그 괴물이 나타났다. 이번 작전은 많은 것을 쏟아부은 만큼 오래 걸렸고 역시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그것이 그리 중요하지는 않다. 엄청 놀라운 일이 나타났다. 분명, 그것이 커지면 더 커졌지 작아진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봤을 때는 분명 그 모습이 작아져 있었다. 물론 아주 미미한 정도였지만 작아져 있었다. 처음에는 내 눈을 의심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모두 다 저번보다 더 작아진 것 같다고 대답했다. 내 꿈에서 딸이 해준 얘기가 맞는 걸까? 나의 희망이 저 괴물을 더 작게, 더 약하게 만든 걸까?
뭔가 저 괴물을 잡을 방법이 보이는 것 같다.
0000년 02월 18일
이때까지 그 괴물을 발견한 이래로 가장 짧은 주기를 거쳐 돌아왔다. 어제 그 괴물이 왔었는데 오늘도 그것이 발견되었다. 놀랍게도 어제보다 더 작아져 있었다. 물론 계속 말하지만, 그 크기를 감안한다면 그 괴물에게는 이 정도 차이라면, 그렇게까지 큰 변화는 아니겠지만 우리에게는 그 작은 변화도 체감이 된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준비도 덜 되었고 그 괴물도 물고기를 먹다가 돌아가 버렸다.
돌아와서 내가 이때까지 썼던 일지를 다시 돌려보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러고 보니 확실히 나의 마음가짐이 그것의 크기와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내가 그 괴물을 잡기 위해 노력하다가 지치기 시작하고 점점 더 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 괴물은 점점 더 커졌다. 즉, 나의 절망이 그 괴물을 키운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내가 다시 힘을 얻고 그것을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 괴물은 점점 더 작아졌다. 즉, 나의 희망이 그 괴물을 위축시킨 것이다.
나는 며칠 전에 그것을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보았고 이 일지를 다음의 이 일을 맡아줄 사람을 위해 쓰는데 더 큰 목적을 두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시 마음가짐을 바꾸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이 일지가 지금 나에게 희망을 주었고 실제로 그 괴물을 상대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도 내가 절망에 빠져 힘을 잃는다면, 나는 수호자로서의 자격이 없다. 자, 해보자!
0000년 02월 21일
나는 그 괴물을 본 이래 저번의 그 괴물을 발견한 후 가장 큰 희망을 품게 되었고 오늘 그 괴물은 우리가 처음 봤을 때보다도 작아져 있었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철퇴 작전이 너무 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확실히 하는 것이 좋으니 지금 작전을 계획대로 진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나의 믿음에 대한 확신이 생겼으니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할 것이다. 어떻게 알리고 어떤 말을 할지 고민해 보자.
“오늘은 여러분께 매우 중요한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우리는 저 괴물의 크기가 자꾸 바뀌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처음에는 계속 그 크기를 유지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점점 커지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작아지기 시작해 지금은 처음에 발견했을 때보다 작아지기에 이르렀습니다.
약 열흘 전, 괴물의 정체를 고민하다가 잠들었던 저는 꿈속에서 제 딸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 딸은 그 괴물은 우리의 마음에 따라 크기가 달라지며, 우리의 절망과 고통이 커질수록 그 괴물은 더 커지고 강해질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저는 그날 이후 제 마음가짐과 그 괴물의 크기를 비교하여 연구해 보았습니다.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제가 지금까지 비교해 본 결과, 과연, 그 괴물은 우리의 감정에 따라 바뀐다는 것이 사실로 보였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그 괴물은 저희가 처음, 절망에 빠졌을 때, 즉 기름을 동반한 불화살 작전에 실패했을 때 크기가 커졌습니다. 그리고 더 지치고 더 큰 절망에 빠질 때마다 그것의 크기는 커졌습니다.
하지만 꿈속에서 딸을 보고 그 괴물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 이후 그 괴물의 크기는 작아졌습니다. 그리고 그 괴물의 크기가 작아진 것을 확인하고 그 괴물을 잡을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기 시작했을 때 그 괴물의 크기는 더 작아졌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졌을 때 저는 제 생각을 한번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제, 그 괴물의 크기가 더 작아진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그 괴물의 크기가 저의 감정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 마을의 전체 사람들의 감정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둘 중 어떤 경우라고 하더라도 우리 모두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 그래오셨던 것처럼 저를 믿어주시고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저를 도와주신 덕분에 저는 절망에 빠지지 않고 그 괴물을 상대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저는 아직 그 괴물에게 작은 상처도 남기지 못했지만, 여러분들이 함께해주신 덕분에 저는 그 괴물을 상대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그 괴물을 물리칠 수 있다는 희망이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는 가운데, 그 희망을 놓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괴물을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0000년 2월 26일
드디어 준비가 끝났다. 그 괴물을 상대하기 시작한 이래로 준비하는 데 가장 오래 걸렸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던 것 같다. 그 괴물은 더 작아져서 왔다. 물론, 그렇게 작아졌다고 해도 그 괴물은 여전히 엄청나게 컸다. 하지만 그 괴물은 이때까지 본 모습 중에 가장 작은 모습을 하고 있고 우리는 이때까지 했던 준비 중에 가장 오래, 많은 힘을 들여서 준비했다. 즉, 적은 가장 약한 상태이고 우리는 가장 강한 상태인 것이다.
저번에 투창 작전을 시행했던 대로 우리는 철퇴를 절벽 위에서 굴릴 준비를 했다. 그리고 그 괴물이 절벽 아래로 온 순간 우리는 철퇴를 굴렸다. 철퇴는 빠른 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정확히 그 괴물에 명중했고 그 괴물은 고통스러워하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는 항상 돌아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도망쳤다는 표현이 맞을 만큼 빠르게 우리의 남쪽 바다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을 모두 기뻐했다. 드디어 그 괴물을 물리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괴물이 죽은 것은 아니다. 그래도 이 정도의 타격을 입힌 것은 처음이었고 아마도 고통스러워하며 돌아간 것을 보니, 웬만하면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했다. 한편, 그 괴물이 다시 올 수도 있다는 불안감도 공존했다. 그렇기에 일단 절벽 아래 바다에 있는 철퇴를 다시 가져오고 남쪽 바다에서의 어업과 무역은 한 달 정도 기다려보고 그 괴물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다시 하도록 했다.
0000년 3월 15일
그 괴물을 큰 충격을 받은 것 같다.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그 괴물이 돌아오지 않으면 좋겠고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이겨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만약 새로운 상황이 생긴다면 다시 새로운 페이지를 쓰게 될 것이다. 이것이 마지막 페이지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