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5-6

일지 6

by DEN

일지는 이걸로 끝이 났다. 정리해보면, 괴물의 침입이 있었지만 쫓아냈다. 물론 많은 재물이 쓰였지만 처음 참사를 제외하면 아무도 죽지 않았으니 큰 성공이라는 생각이 든다. 분명 큰 위기였다. 하지만 이 위기의 순간에 봉착했을 때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모아 이겨냈다는 것, 우리 마을이, 우리 마을의 사람들이 얼마나 훌륭한 사람들인지, 우리 공동체가 얼마나 결속력과 공동체에 대한 사랑을 가졌는지를 알 수 있는 좋은 사건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또 이제 와서 다시 생각해 보는 거지만 교육을 받고 돌아왔을 때 우리 마을에 비축해 둔 재물이 조금 줄었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그때는 그저 흉년이 한두 번 들었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아마도 이 사건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로 큰 사건이 있었다면 내가 교육을 받고 돌아왔을 때 누군가는 나한테 말해줬어야 했다. 하지만 누구도 나한테 이 사건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다시 떠올리기 싫은 끔찍한 기억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괴물을 완전히 물리치는 데 성공했고 다시는 그 괴물이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기 때문일까?

이 기록 이후 다음 페이지에는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았다. 이걸로 끝인가? 라는 생각을 하며, 노트를 넘기는 와중에 뭔가가 더 쓰여있는 페이지가 보였다.




이제 날짜는 중요치 않다. 그 괴물은 돌아오지 않는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돌아올지도 모르겠다. 그 괴물은 쫓아냈지만, 나의 절망과 고통은 쫓아내지 못했다. 처음 괴물을 잡았을 때는 그 괴물을 잡았다는 생각에, 수호자의 임무를 다했다는 생각에 뿌듯함과 약간의 기쁨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에피스테가 없다는 것이 느껴졌다. 에피스테의 방은 이제 어떤 온기도 남아있지 않다. 이제 에피스테의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다. 꿈에서나 그 목소리를 들을 뿐이다. 이제 에피스테를 볼 수 없다. 기억에서나 그 모습을 볼 뿐이다. 마을 어디를 가도 가슴이 저리고 아려온다. 특히 괴물이 나타났던 남쪽 바다의 근처만 가도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고 싶은 생각이 나를 옥죈다.

내색은 하지 않고 있다. 요즘은 내가 수호자인 것이 한탄스럽다. 정말 힘들고 정말 아픈데도 다른 사람 앞에서는 숨겨야 한다.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아내에게는 정말 감사한다. 내 아내도 그것을 아는지, 에피스테를 그리워한다거나 그 때문에 괴로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에페보스도 너무 고맙다. 하나 남은 아들로서 의젓한 모습을 보이며, 아버지에게 정말 자랑스러운 자식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게 보인다.

이 노트에는 내 괴로운 기색을 적지 않으려고 했다. 나의 사사로운 감정을 기록하려는 목적으로 쓴 노트가 아니기에. 하지만 도저히 어딘가 풀어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 어차피 내 아내도 에페보스도 마을의 대부분 사람은 이 노트를 읽지 못할 것이다. 괴물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면 이 노트는 아무도 읽지 않을 것이다.

괴물을 물리친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모든 것이 허탈하다. 수호자로서가 아니라, 한 딸의 아버지로서. 물론 에페보스와 내 아내는 남아있지만 결국 난 내 딸을 지키지 못했다. 수호자로서 이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수호자이기 이전에 난 한 딸의 아버지다. 한 여자의 남편이며, 한 아들의 아버지다. 감정을 지닌 한 명의 평범한 사람이다. 차라리 그 괴물을 잡음과 동시에 내가 죽었다면. 아니, 그 괴물을 잡지 못하고 죽었다면 이만큼 괴롭지는 않았을 텐데...

그 괴물은 누구의 절망과 고통을 먹고 자라는 걸까? 난 지금 그 괴물을 상대할 때보다도 훨씬 더 큰 절망과 고통 속에 빠져있다. 만약 그 괴물이 나의 절망과 고통을 먹고 자란다면, 그것을 노리고 있다면, 그 괴물은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때 난 다시 희망을 품을 수 있을까? 그 괴물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그 괴물을 잡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때처럼 아무렇지 않게 그 괴물을 물리치는 데 전념할 수 있을까? 차라리 다시 그 괴물이 와주면 좋겠다. 그 괴물을 물리치는데 정신이 팔려서 잠시라도 에피스테를 잊을 수 있게.

수호자라는 직책이 내게는 너무 무겁다. 에피스테에 대한 생각을 하며, 괴로워하고 슬퍼하며,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다면. 남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소리를 지르며, 아파할 수 있다면. 나의 삶과 운명을 저주하며 신께 원망할 수 있다면. 결국, 그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죽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수호자라는 직책이 내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빨리 이 마을을 지키고 이끌어갈 다음 수호자가 나와준다면…




그리고 거의 마지막에 뭔가가 더 쓰여 있었다.




나의 뒤를 이을 수호자, 헤타가 교육을 마치고 돌아와 나와 함께 실무를 경험하고 있다. 요즘 따라 몸이 너무 좋지 않다. 환청과 환각을 가끔 경험한다. 열이 자주 나고 병에 쉽게 걸린다. 옛날에 이 애가 수호자가 되면 에피스테와 결혼시키면 참 좋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 생각을 해서 그런지 이 아이를 볼 때마다 에피스테가 떠오른다. 이 아이의 곁에 아내로서 함께 있는 에피스테, 참 잘 어울렸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나도 미안한 말이지만 이 아이와 함께하는 순간이 너무나도 힘들고 괴롭다. 이 아이도 뭔가 아는 걸까? 부모님께 무언가를 들은 걸까? 또래였던 에피스테에 대해 물어볼만도 한데 함께하는 동안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다. 눈치가 빠른 걸까? 여하튼 고맙게 생각한다.

또 한편으로도 이 아이가 정말 고맙다. 이 아이와 함께할 때마다 정말 수호자로서 적합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품, 식견, 지식, 지혜, 마음의 깊이, 행동과 말을 볼 때마다 나보다도 훨씬 더 좋은 수호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젠 수호자라는 무거운 직책으로부터 조금씩 해방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죽더라도 이 아이가 우리 마을을, 수호자의 자리를 잘 지켜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발 이 아이가 충분한 경험을 쌓을 수 있을 만큼만 살아있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어째서 난 알아차리지 못한 걸까? 한숨을 쉬는 모습도, 힘들어하는 모습도, 멍하게 다른 곳을 보는 모습도 자주 봤다. 왜 한 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못했을까? 전 수호자님은 마음의 병을 앓다가 일찍 서거하신 걸까? 그리고 절망과 고통을 먹고 자란다는 그 괴물은 우리 마을을 다시 찾아올까?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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