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허상과 불길한 예감
“네가 수호자님을 죽였다.”
“넌 나를 잡지 못할 것이다.”
“넌 수호자로서 이 마을을 지키지 못할 것이다.”
“넌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을 것이다.”
“넌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버릴 것이다.”
“결국 넌 사랑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릴 것이다.”
...
환청이 들려 눈을 떠보니, 나는 배를 타고 있었고 이 배는 거대한 폭풍우에 휘말려 흔들리고 있었다. 이상한 굉음이 들려왔다. 천둥소리인가 싶었는데 어두컴컴한 하늘 사이로 불길이 보였다. 불이 비춰주는 빛 때문에 주변이 살짝 보였다. 어떤 형체가 흐릿하게 보였다. 불길이 가까워져 오면서 그 형체도 점점 선명해졌다. 그 형체는 서서히 나에게 다가왔고 그것이 확실히 보였다. 용처럼 생긴 바다 괴물, 전 수호자님의 일지에 나왔던 그 괴물, 리바이어던이었다.
리바이어던은 불을 내뿜으면 나에게 다가왔다. 폭풍우 한가운데 있는 데다 배도 크지 않았기에 도망갈 수도 없었다. 바닷속에 빠져 죽는 게 나을까? 리바이어던에게 먹혀 죽는 게 나을까? 여기서 살 방법은 없었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다. 왜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갑자기 죽을 수밖에 없는 시련에 놓인 것이다. 그런 고민을 하던 찰나에 리바이어던의 머리가 바로 내 앞으로 다가왔다. 리바이어던은 입을 벌려 나를 삼키려 했고 죽음이 눈앞에 왔음을 느꼈다. 그렇게 잠에서 깼다.
요즘 따라 비슷한 악몽을 많이 꾸고 있다. 리바이어던을 잡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불가능하다. 하지만 전 수호자님은 해내셨다. 그리고 만약 나도 비슷한 상황에 놓인다면 해내야 한다. 리바이어던은 절망과 고통을 먹고 자라며, 전 수호자님은 리바이어던을 우리 마을에서 쫓아내는 것은 성공하셨지만 끝내 리바이어던이 남긴 절망과 고통은 쫓아내지 못했다. 결국 리바이어던은 다시 돌아올 것이다. 왠지 그럴 것만 같다. 자기 전에 자꾸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불안감이 맴돌고 이런 악몽을 꾸는 것 같다.
우리가 살면서 걱정하는 일의 대부분은 일어나지 않는다. 전 수호자님이 리바이어던을 완전히 죽인 것은 아니지만 내가 교육을 받으러 다른 마을에 갔을 때면, 벌써 몇 년 전 이야기다. 만약 돌아온다면 더 일찍 돌아왔을 것이다. 솔직히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도 믿기지는 않지만, 전 수호자님이 이런 이야기를 지어낼 이유도, 사모님이 그걸 나에게 전달해 주실 이유도 없다.
난 많이 부족함에도 수호자가 되었다. 전 수호자님처럼 괴물을 상대할 자신이 없다. 감정을 잘 제어하고 사사로운 감정이 공적인 일에 영향이 가지 않도록 할 자신도 없다. 만약 그 괴물이 온다면? 난 마을을 지키지 못할 것이고 아무 쓸모 없는 사람이 될 것이다.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 될 것이고 결국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려 수호자로서 완전히 자격을 잃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전 수호자님이 돌아가신 것이 나 때문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날 괴롭힌다.
최대한 내색은 안 하려고 하는데 불안감이 드러나는 것 같다. 요즘 따라 마을 사람들은 나를 보면, 피곤해 보인다느니,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 같다느니, 여러 가지 안 좋은 상황에 부닥친 것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신다. 가끔은 솔직하게 털어놓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이 마을의 수호자다. 당장 닥치지도 않은 위기에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은 더더욱 안 될 일이다.
최소한 우리 마을 사람들에게는 나의 고민을 털어놓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결국 내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은 내가 교육을 받았던 마을로 가는 것뿐이다. 나를 가르쳐주셨던 선생님도 같이 수업을 들었던 친구도 있겠지만 나를 기독교인의 길로 인도해 주신 신부님이 제일 적합하지 않을까? 또 선생님이나 친구는 사는 곳이 바뀔 수도 있지만 신부님은 계속 그 교회에 계실 것이다. 만약 떠났다고 해도 쉽게 수소문해서 찾을 수도 있다.
그런 생각에 이르자, 곧바로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교육을 받았던 그 마을을 잠시 다녀오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안 그래도 긴 시간을 달린 끝에 마을 사람들은 나에게 휴식을 취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여유 시간을 주신 상태다. 어차피 이 마을에서 쉬는 것보다는 다른 곳도 다녀오면서 분위기 전환도 하는 것이 좀 더 좋을 것이다. 모두 좋은 마음으로 허락해 주셨다.
교육을 해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마을이 크고 발전했다는 뜻이다. 사실 마을이라기보다는 도시, 국가라고 불러야 한다. 우리 마을은 진짜 마을이라고 불러야 할 만큼 작은 섬마을이다. 우리 주변 마을들도 대체로 그렇다. 그래서 교육을 해줄 수 있는 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여러 마을을 거쳐야 하고 이에 드는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다.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나는 마을 곳곳을 다니면서 부탁드릴 때마다 마음 한편이 너무나 불편했다. 다행히도 마을 사람들은 그 시간과 비용을 기꺼이 허락해 주었다. 나도 목표가 있는 여행인 만큼 최대한 짧은 시간에 적은 비용을 들여, 갔다 올 생각이다.
결정이 다 되자,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신부님을 뵙는 것이기에 빈손으로 가는 것이 자못 아쉬웠다. 하지만 우리 마을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그 마을에서 구할 수 있다. 애초에 마을의 규모 자체가 비교가 안 될 만큼 크다. 염치없는 생각이지만 고민이 있을 때 이 먼 길을 찾아온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엄청난 신뢰와 존경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게 생각하면 빈손으로 찾아가도 많이 서운해하지는 않으실 것이라는 생각으로 나한테 필요한 짐만 챙겼다.
하나님 아버지, 당신의 자녀가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근심하고 있습니다. 그 불안과 두려움은 실재하지 않는 허상임을 알고 있음에도 나약한 저는 그 근심을 떨쳐낼 수가 없습니다. 저는 당신을 믿으면서도 왜 불안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까? 저의 믿음이 약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자녀로서 저의 삶에 모든 부분을 당신께 맡겨야 함을 알지만, 당신도 알고 계실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저의 마을은 당신에 대한 믿음이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저 저한테만 있는 문제라면, 당신께 맡겨야겠지만 저의 마을에 대한 일은 저와 저의 마을 사람들이 해결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혹시 제 믿음이 잘 못 된 믿음입니까?
저의 마을에 수호자로서 저를 세우신 것입니까? 아니면, 그저 인간 사이에서 생긴 우연으로 저의 마을에 수호자가 된 것입니까? 수호자로서의 교육을 받으면서 당신을 알게 되고 당신을 믿게 되었으니, 당신의 큰 뜻이 있다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당신을 믿는 마을이 많음에도 우리 마을에는 당신의 뜻이 전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면 인간 사이에서 생긴 우연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저의 이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당신이 세우신 사람을 만나려 합니다. 저는 우둔하고 미천하여 당신의 뜻을 잘 모르지만, 그분은 당신이 세운 사람이시기에 당신의 뜻을 저에게 잘 들려줄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 분에게 능력을 주셔서, 제가 그분을 통해서 당신의 뜻을 들을 수 있게 하소서. 그분의 입을 통해 당신의 뜻을 듣기에 부족한 저에게도 당신의 뜻을 들을 수 있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