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8

신부님, 그리고 리바이어던

by DEN

배를 타고 여러 마을을 거친 후에 드디어 내가 교육을 받았었던 마을로 도착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가 어렴풋이 떠오른다. 아는 사람을 모두 떠나, 나 홀로 닥쳐올 상황을 이겨내야 한다는 부담감과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기대가 공존했었던 것 같다. 낯선 곳이기는 했지만, 친절한 사람들이 많았고 나처럼 작은 마을에서 교육받으러 오는 학생들이 꽤 많았던 터라, 나와 비슷한 처지인 친구들을 빨리 사귈 수 있었다.

군사와 관련된 일들, 역사와 철학, 문학, 정치, 간단한 의술과 건축, 자연에 관한 것들을 배우면서 정말 많은 것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마을이 큰 만큼 우리 마을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많은 일이 일어났고, 엄청난 수준의 학문이 발달해 있었다. 물론, 모든 마을이 그런 것은 아니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이렇게 발전된 큰 마을이 있다는 것이 오히려 특수한 경우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교육을 받을 때 학문의 발달, 마을의 크기, 여러 가지 기술의 발전만이 그 마을의 우월성을 증명해 주는 것은 아니다. 각자 마을의 규모, 상황, 사정에 맞게 마을을 운영하고 이끄는 것이 진짜 중요한 일이며, 그런 역할을 잘 수행해 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좋은 리더이며, 좋은 마을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교육을 한참 받고 적응도 어느 정도 다 되었을 시점의 일이다. 우연히 길가에 있는 한 거지를 보게 되었다. 거지는 한참 동안을 굶은 듯 초췌해 보였고 아주 더러웠다. 거지를 보며 가던 길을 걸어갔었는데, 갑자기 검고 긴 옷을 입은 한 사람이 그 거지를 어딘가로 데려갔다. 나는 거지가 납치당하는 줄 알고 거지와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을 따라갔다. 따라가면서, 도대체 어디로 데려가는 거지?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무리가 있으면 어떡하지? 같은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거지와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은 한 건물에 도착했다. 그 건물은 얼핏 보면 감옥 같기도 하고 얼핏 보면 학교 같기도 했는데 한 부분이 높게 솟아있고 그 꼭대기에는 가로와 세로 막대기가 교차되어 있는 게 특징이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것이지만 그곳은 교회였고 그 꼭대기에 있는 것은 십자가였다. 그때부터는 건물 안으로 직접 들어가야 하기에 많이 고민했다. 얼마나 많은 무리가 숨어있는지도 모르고 무엇을 하는 곳인지도 모른다. 혼자 들어가기에는 너무나 위험했다.

주변을 살피면서 눈치만 보고 있었는데,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거지는 건물 밖에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변에 나를 보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서, 거지와 검은 옷을 입은 사람한테 보이지 않을만한 곳에 숨어 그들을 지켜봤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은 먹을거리를 들고 와 거지에게 주었고 거지는 무릎을 꿇고 빌었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은 뭐라고 말하면서 거지를 안아주었다. 거지는 먹을 것을 들고 떠났고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은 다시 건물로 들어가는 듯했다.

여기가 어떤 곳인지도 몰랐고 굉장히 위험할 수도 있었음에도 나는 호기심을 느끼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었다. 그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은 볼 수 없었고 하얀색으로 된 무언가가 장식된 검은 색 옷을 입고 있는 여자가 와서 어떤 일로 왔냐고 물었다. 나는 겁도 없이 이곳이 뭐 하는 곳인지 물었다. 그 여자는 굉장히 당황하더니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이냐고 물었다. 난 다른 마을에서 교육받으러 온 사람인데, 거지와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을 보고 따라오게 되었는데, 거지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모습을 보고 이곳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와보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 여자는 이곳이 교회라고 말했으며, 거지에게 음식을 나눠준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을 불러주었다. 그렇게 나는 신부님을 만나게 되었다.

이 마을에서 신부라는 사람은 일반적인 한 사람이 아니다. 대단히 많은 것을 알고 있고 좋은 성품을 가진, 훌륭한 인재다. 그렇기에 신부님은 다른 마을에서 교육받으러 오는 학생이 많으며, 교회를 잘 모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처음 나하고 대화하실 때 신앙적인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나는 우리 마을에 대한 말씀을 드리면서 나를 소개했고 이곳에 오게 된 자초지종을 설명해 드렸다. 신부님은 우리 마을에 대한 칭찬으로 입을 여신 뒤에 교회가 어떤 곳인지 설명해 주셨다. 그러면서 이 종교는 사랑이 중요한 종교이고 계급과 소속, 출신을 모두 초월하여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우리 마을에는 종교라는 것이 딱히 없고 사랑을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우리 마을과 닮은 점이 있는 것 같아 이 종교가 마음에 끌렸다. 그때부터 교육받고 남는 시간에 틈틈이 신부님을 만나면서, 기독교에 대한 신앙을 배워가기 시작했고 기독교인이 되었다.

사람의 기억 능력에는 한계가 있지만 보통 처음과 마지막은 다른 것보다 기억에 많이 남는다. 이게 나와 신부님의 처음 기억이다. 신부님과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누면서는 개인적으로 매우 큰 고민이 있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 마을에도 이 종교를 전해야할까? 라는 고민이었다. 종교라는 것은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그 마을이 어떤 종교를 믿느냐는 그 마을의 전부는 아닐지라도 매우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된다. 우리 마을은 종교라는 것이 없다. 내가 이 종교를 전하게 된다면, 우리 마을의 특징을 나의 마음대로 바꾸는 것이 된다. 거기다가 나는 마을의 수호자로서 교육받으러 왔다. 우리 마을에서 정말 소수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다. 이 교육의 의미는 좋은 능력을 길러서 우리 마을을 잘 이끌라는 것이다.

물론 이 종교를 전한다고 해서 내가 이 마을의 수호자 역할을 이행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마을을 잘 이끄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또 이 종교가 전해지면서 조금 더 좋은 마을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생각이고 이 종교를 믿는 사람의 생각이다. 항상 호의와 도움은 상대의 입장에서 해주어야 진정한 의미가 있다. 나는 이 문제를 신부님께 솔직히 털어놓았었다.

신부님은 쉽게 입을 열지 않으셨다. 오랜 생각을 한 뒤에 신중한 조언으로 부담감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이어 만약 너의 마을에 하나님이 뜻이 있으시다면 네가 조바심을 두고 노력하지 않아도 언젠가 좋은 기회를 주실 것이고 좋은 사람을 보내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너의 마을에서 공동체적인 종교활동은 못 하겠지만 너 스스로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할 수 있다. 자신의 신앙을 지켜가는 데 집중하라는 말로 모든 조언을 마치셨다.

신부님께서는 나를 매우 아껴주신 것 같다. 마을의 규모가 큰 만큼 인쇄술도 발달했고 다른 마을처럼, 혹은 옛날처럼 종이나 책이 도저히 구할 수 없을 만큼 귀한 것까지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종이와 책은 정말 비싸고 귀한 물건이었다. 신부님께서는 어렵사리, 내가 좋아하는『욥기』와 신부님께서 나에게 주고 싶어 하셨던『시편』 일부를 구해서 주셨다. 나는 어떻게 감사를 표현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고 있었는데 신부님께서는 네가 신앙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간다면 그것이 나의 호의에 대한 보답일 것이라며, 나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셨다. 그 후 이곳에서의 마지막 예배를 드리고 만년필과 공책 몇 개를 사고 나의 마을로 돌아갔었다.


말을 타고 그렇게 옛 생각을 하는 동안 신부님이 계시는 교회에 도착했다. 교회로 들어가자 처음 보는 수녀가 무슨 일로 왔냐고 물었다. 이어 나는 신부님께 내 이름을 대고 찾아왔다고 하면 아실 것이라고 전해주자, 수녀는 잠깐만 기다리고 하고 자리를 떠났다. 잠시 기다리자, 그 수녀가 돌아와서 신부님이 계시는 곳으로 나를 데려갔다. 역시 늘 계시던 곳에 계셨다. 수녀는 안내가 끝나자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

"오랜만 뵙습니다. 신부님,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잘 지냈지, 너야말로 이곳에는 어떤 일이냐.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게냐?"

"사실 큰일 없어도 자주 찾아봬야 할 텐데 우리 마을에서 여기까지 오는 것도 쉽지 않고 또 우리 마을에서 꽤 바빠서 그러지는 못하네요. 다행히 마을이 안정된 상태에 있고 마을 사람들도 조금 쉴 때가 된 것 같다고 휴식 시간을 주셨는데 마침 요즘 고민거리도 있어서 신부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래, 고민거리가 있다고 이 먼 곳까지 찾아와주니 내가 고맙구나."

"빈손으로 온 것이 죄송할 따름입니다."

"옛 스승을 잊지 않고 여기까지 찾아온 것만 해도 이미 고맙다. Q.T와 기도는 잘하고 있느냐?"

"여기서 했던 것보다야 훨씬 못하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 예수님께서 많은 액수를 헌금한 부자보다 두 렙돈의 동전을 넣은 가난한 과부를 더 크게 여기심을 기억하고 있느냐. 네가 충분히 신앙생활을 할 여건이 될 상황에서 했던 만큼 네 마을에서 신앙생활을 할 수는 없을 게다. 하나님께서도 그것을 아시고 너의 노력을 크게 여기실 게다. 그래서 고민거리가 무엇이냐?"

"감사합니다. 혹시 신부님께서는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적은 어떤 일에 대해 불안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요즘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어떤 일을 고민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걱정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 나도 그런 경험이 많다. 정말 어리석고 쓸데없는 걱정도 많이 하지. 나는 그것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의 일이란 알 수 없는 것이고 언제 어떤 위기가 올지 모르니, 그에 대해 준비를 해두는 것은 항상 좋은 자세다. 하지만 그 걱정 때문에 현재의 일에 지장이 생기고 너의 삶에 그림자가 드리운다면 그것은 좋지 않은 것이 되겠지?"

"제가 제 마을을 떠나 이곳에 있었을 때 우리 마을에 큰 위기가 있었습니다. 전 수호자님께서는 그것을 뛰어난 능력으로 이겨냈습니다. 그 위기를 극복하는 일은 도무지 인간이 해낼 수 없는 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전 수호자님과 저의 마을 사람들은 힘을 합쳐서 그 일을 해냈습니다. 저는 그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미 위기를 극복한 전례도 있고 학문과 기술의 발전 또한 많이 이루어져 저는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얻을 수 있었습니다. 마을의 상황도 그때보다 좋다면 좋지 절대 나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똑같은 위기가 닥쳤을 때 당연히 그 위기를 극복해 내야 한다는, 제 마을의 수호자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극복해 내야 한다는 생각이 저를 괴롭힙니다."

"너의 마을에서 어떤 위기가 있었고 어떻게 극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너의 마을 사람들은 대단한 사람들인가 보구나. 네가 그렇게 부담감을 느끼고 괴로워하는 것을 보니. 무언가를 안다는 것, 지식은 고통을 가져온다. 너도 너의 마을에서 생겼던 위기를 알게 되고 그것이 다시 닥칠 수도 있다는 것,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큰 위기가 너와 너의 마을에 다가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너는 지금 그것을 알고 고통스러움을 느끼는구나. 하지만 지혜로운 자는 그 고통을 조절할 수 있다. 내가 알고 믿는 너는 그럴만한 지혜를 충분히 가졌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마음을 가득 채우지 말고 너에게 그런 위기가 닥치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잘 고민해 보고, 위기 속에서 초조한 마음을 다스리는 법도 스스로 익혀보거라. 네가 지금 겪는 고통을 지혜롭게 잘 쓴다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위기가 찾아오더라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신부님의 조언을 가슴에 새기는 동안 잠시 침묵의 시간이 이어진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혹시 몇 가지를 더 여쭈어봐도 될까요?"

"얼마든지, 네가 원하는 만큼 물어보거라."

"신부님께서는 인간에게 주어지는 모든 위기, 시련으로 생각되는 모든 어려움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지. 그분의 뜻은 그 분만이 아시니, 그저 우리는 믿을 뿐이지 않겠느냐?"

"저의 마을에 위기가 찾아오면, 저는 하나님께 답을 구해야 할까요? 아니면 저의 마을 사람들과 힘을 합쳐 이겨내야 할까요?"

"왜 그리 극단적으로 양극화하는 것이냐. 너의 마을 사람들과 힘을 합쳐 노력하면서 하나님께도 답을 구하면 되지 않느냐."

"저의 마을 사람들은 앞서 마을 사람들의 힘만으로 위기가 극복했습니다. 그렇기에 비슷한 상황에 부닥쳐지면 저 또한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면서도, 기독교인으로서 어떤 힘든 일이 있을 때, 인간의 힘으로 도무지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일이 있을 때,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탁해야 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너는 너에게 오는 모든 시련과 위기가 하나님의 뜻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것이 어디서 왔든지 간에 하나님께서는 너를 도와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지 않느냐?"

"네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안감을 떨쳐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 너의 마을에 위기가 생기면 당연히 너와 너의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 해결해야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너는 불안감과 초조함을 느낄 수도 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곤경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마음처럼 되지 않아서 답답할 수도 있고, 너무나 큰 위기 앞에 놓여 두려움에 휩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너의 마을의 수호자인 네가, 위기의 순간에서 가장 정확한 판단과 확신으로 싸워나가야 하는 네가, 마을 사람 모두가 흔들리더라도 가장 굳건하게 서서 사람들을 이끌어가야 하는 네가, 그런 감정 속에 빠져있으면 이겨낼 수 있는 위기도 이겨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위기 속에서 어떤 대책을 세우고 어떤 방식으로 극복해 나갈지는 너와 너의 마을 사람들이 결정해야겠지만 그 위기 속에서 네가 흔들리고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인다면, 너의 그 마음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그 모든 부분을 맡겨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 만약 네가 하나님께 너의 개인적인 불안들을 맡겨서 그것이 해결된다면, 너는 조금 더 이성적인 상태에서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고 그 이후부터는 너와 너의 마을 사람들의 역할이 아니겠느냐?"

모든 조언을 들은 뒤 잠시 깊은 생각에 빠졌다.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되자, 빨리 마을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유로운 상황 속에 있는 것도 아니고 또 확실한 목표를 두고 나온 것인 만큼 그 목표가 이루어졌다면 망설여서는 안 된다.

"네 신부님 어느 정도 잘 정리된 것 같습니다. 언제나 큰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찾아오거라. 오랜만에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항상 도움받기만 하고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어서 죄송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 큰 사랑을 베푸실 때 무언가를 바라고 해주시지 않으셨다. 하물며, 나는 작은 사랑을 베푸는데 무엇을 바라겠느냐. 도움이 될 수 있어서 기쁘다."

"언젠가 꼭 신부님께, 아니 모든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돌아오겠습니다."

"그래, 언제까지나 기다리고 있으마."

그렇게 모든 대화가 끝나고 바로 나의 마을로 돌아가는 길을 떠나려 했지만 더 이상 오늘 출발하는 배가 없었다. 적당한 하숙집을 찾아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배가 떠날 수 있는 항구 근처에 하숙집을 잡았는데 해가 질 때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남은 것 같아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특히 시장에 오랜 시간 있었다. 우리 마을은 무역할 때는 화폐를 쓰지만 마을 내에서는 화폐를 쓰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는 물건의 교환도 딱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저 자급자족하면서 먹고 살기에 자신의 재산이라는 개념도 없고 부족한 것이 있다면 서로 채워준다. 그럼에도 크게 갈등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보면, 교육을 받을 적에 들었던 것처럼 마을의 규모나 발달 수준이 그 마을의 우월함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시장을 둘러보고 있자니, 내가 우리 마을에서 교육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안건을 제시했던 것이 생각났다. 슬슬 마을도 안정화된 것 같고 여유도 있는 것 같아서 일을 추진하기에 나쁘지 않은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표를 확실하게 두고 온 터라 큰 비용을 가져오지는 못했기에 역사책 한 권과 문학책 한 권을 샀다. 가져가 시범적으로 가르쳐보고 반응이 괜찮다 싶으면 더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사서 가르쳐야겠다. 적당히 둘러보다 그림자가 점점 길어지고 있는 것을 보고는 하숙집으로 돌아갔다.

아침에 일어나 제공되는 밥을 간단하게 먹고 배에 올랐다. 여러 마을을 거쳐 이제 바로 우리 마을로 갈 수 있는 한 마을에 도착했다. 이 마을에서 우리 마을로 가는 뱃길을 담당하는 항해사를 찾아가 우리 마을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나를 나의 마을로 데려가 주시오."

"그럴 수 없습니다."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이 마을과 우리 마을은 서로 필요할 때마다 자유롭게 오가는 사이로 비용이 들지 않는다. 나는 항해사가 비용을 원한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왜 이러는 것이오? 원래 이 마을과 우리 마을 사이에는 비용이 필요 없지 않소? 만약 필요하다면, 지불하리다."

"비용의 문제가 아닙니다. 당신을 당신의 마을로 데려갈 수 없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왜 우리 마을로 가는 것이 위험한 것이오?"

"몇 년 전 당신의 마을에 찾아온 바다 괴물이 지금 당신의 마을 근처에 있습니다."

나의 걱정이 현실이 되었다. 리바이어던, 그 괴물이 찾아온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더더욱 가야 하오. 당신은 위험하니, 내가 직접 배를 몰고 가겠소. 뱃값은 지불할 테니 배를 하나 빌려주시오."

"만에 하나 그 괴물은 만나게 된다면 당신을 도망칠 방도도 없이 죽게 될 것입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죽더라도 가야 하오."

"비용은 딱히 필요 없습니다. 이 배를 타고 가시지요. 어차피 이 배는 당신의 마을로만 떠나는 배이니, 문제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당신의 마을에서 배 하나를 주겠지요. 죄송하지만 저는 따라갈 수 없습니다. 행운을 빌겠습니다."

리바이어던만큼 큰 괴물이라면 얕은 바다로는 갈 수 없을 것이다. 또 전 수호자님의 일지에도 얕은 북쪽 바다에서 그것이 보였다는 기록은 없으니 북쪽 바다로 최대한 둘러 가면 어떻게든 갈 수 있을 것이다. 배를 받아 몰면서 우리 마을로 가까워짐에 따라 나의 공포도 커져 왔다.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허상이라고 생각했던 불안이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에 온지라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탄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1)




욥은 자신이 시련받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을까? 욥은 계속 자신의 시련에 대해 생각하고 논쟁했다. 끝내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욥은 하나님께서 사탄이 자신을 시험하도록 허락하셨다는 걸 알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누군가는 하나님이 미워질 것이라고 대답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욥이었다면 오히려 감사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만큼 믿는다는 거니까. 하나님께서 생각하시기에 그 어떤 시련 앞에서도 신앙과 순종을 잃지 않을 것이며, 무너지지 않을 사람이라는 거니까. 즉, 하나님께서 나를 그만큼 신뢰한다는 뜻이니까.

나의 시련은 어찌 보면 예견되었는지도 모른다. 성경에서 리바이어던이 가장 많이, 자세하게 언급되는『욥기』에 끌렸는지. 왜 그 수많은 시간이 있음에도 내가 마을에 없는 5년이라는 짧은 시간 사이에 우리 마을을 찾아왔었는지. 왜 리바이어던이 나오는 꿈을 자꾸 꾸고 불안과 고통이 날 괴롭혔는지. 왜 나는 리바이어던이 우리 마을에 찾아왔을 때 가장 큰 책임감을 가지고 리바이어던을 물리쳐야 할 의무가 있는 수호자인지.

솔직하게 말하면 이때까지 알고 있음에도 애써 외면했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이라며, 불안해해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를 세뇌했다. 하지만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태도를 가지든 간에 예정된 시련은 찾아온다. 모든 생물이 대홍수에 휩쓸렸던 것처럼.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것처럼. 애굽 땅에 10가지 재앙이 찾아온 것처럼. 물론, 이 시련들은 모두 인간이 잘못하여 내려진 심판은 하지만. 욥의 이야기가 보여주는 것처럼 꼭 시련이 심판에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난 이 시련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하나님께서 나한테 원하시는 게 뭘까? 아니면, 사탄이 날 시험하려는 걸까? 난 리바이어던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나의 힘으로? 우리 마을 사람들의 힘으로? 하나님의 힘으로? 이 시련 뒤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더 큰 축복? 곱절의 행복? 아님, 파멸?


1) 욥 1:6~12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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