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좋아 양보지, 당장에라도 거짓말같이 없어졌으면 싶었다. 또 '악성이 아니니 걱정 마세요.'란 말도 듣고 싶었다. 하루에도 수백 번을 목숨줄을 쥐락펴락하는 수류탄 같은 종양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절대로 쉽지 았았다. 그렇게 감정의 기복이 심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가운데에도 있는 사실은 받아들여야 했다. 기도라는 안전장치인 핀이 언제 빠질지도 모르는 불안감을 감수하면서도 나의 전부를 걸어야 했다. 마치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는 것을 시소 타듯 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그저 살아있으니 감사합니다.' 하는 마음보다 답답하고 화가 날 때가 더 많았다.
갓 중학생이 된 막내와 한 살 더 많은 아들, 그리고 입시준비에 몰두해야 할 큰딸까지 비록 말은 없어도 나만큼 마음이 흔들렸을 것이다. 그런데도 어쩌다 찔끔대며 눈물은 보일지언정 생활의 패턴을 바꾸지 않고 불안할 때마다 더 자기들 몫에 몰두하기를 선택하고 있었다. 기특하고도 고마운 일이었다.
그에 보태어 다년간 통금이든 종교활동이 풀린 것도 진단 후였다. 울다 분노하다 좌절하기를 반복하다가도 정신이 번쩍 든 것은 아이들의 태도와 신앙회복의 행위들로부터 오는 위로였다.
하루하루는 시소를 탔지만 좌초에 부딪쳐도 다시 가야 할 목표는 있었다.
'그래, 해보자. 하느님 바짓가랑이 붙잡고 매달리자. 의사와 사람들의 말은 금세 해결될 듯 하지만 무척 불안했고 성서 말씀과 내면의 목소리는 당장의 해결은 어려웠지만 저 멀리 희미한 등대 같았다.
'네 , 알겠습니다. 딱 3년만 살아 숨 쉬어도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
단 한 점의 희망이란 믿음의 끈 쪽으로 고개는 돌렸건만 내 몸통과 손발은 연신 허우적대며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