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간의 종교가 다르면 생기는 일 5

성모요, 제발 저 좀 낫게 해 주이소 예

by 하리

절투어가 시작되게끔 남편 옆구리를 찔러가며 푸시한 것은 작전상 후퇴 같은 거였다. 남편의 뜻인 어머님의 보살 같은 마음 갖추기가 오랜 삶의 습관으로 인해 쉬 달라지지 않으니 말이다.


어머님께선 일 앞에서 성실한 만큼 집안 행사 대소사의 결정과 알 권리에도 적극적이셨다. 어쩌다 몰랐던 일이 생기면 식사가 잘 안 될만치 예민하게 반응했다.

한동안 탈이난 허리 수술로 인한 통증호소와 관심받기는 어느새 아들 딸들이 언성을 높이게 되는 단계까지 갔다.

82세까지 들판에서 일할 때는 마을 내 몇십 년 더 젊은 사람들과 견주어도 지지 않을 만 치 열심히 사셨다. 그랬건만 한평생 손에 익은 농사일을 하루아침에 놓은 뒤로는 마음의 허허로움에다 온몸의 근력마저 술술 빠지게 했다.

그런 변화에 적응하게끔 도움이 될 묘수로 시작된 가족이 함께하는 절투어가 매주 이어졌다. 그러구러 몇 달이 흘러가 해가 바뀌어도 어머님께선 막상 집을 나설 즈음이면 번번 갈듯 말 듯 애매한 상태로 못 가겠다고 하셨다

그럴라치면 남편은 더 끈기 있게 반 강제로라도 일으켜서 차에 태우곤 했다.


그때쯤이었다. 어느 날 피로해소차 목욕탕을 가는 길에 넌지시 운을 떼었다.

"어머님, 그리 절가시기 싫음 저 따라 성당을 가 보실라요? 혹시 압니까? 아픈 허리랑 다리 나을지도요."

" 그리 열심히 절에 댕기도 안 낫고 자꾸 아픈데 성당 간다고 낫겠나"

그런 대화가 오간 지 몇 번 만에 어머님께선 혹시나 하는 마음이 생긴 것인지 하루는 순순히 성당을 갔다. 성당마당을 가로질러 성모상 앞으로 가셔 선 소리 내어 읊조리는 것이었다.

마치 그 옛날 대나무 아래서 빌듯 , 절간에서 애원하듯 성모상 앞에서 손을 합장하고 허리를 굽히셨다.

"성모요? 제발 저 좀 낫게 해 주이소 예. 다 낫거들랑 성당 올 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