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간의 종교가 다르면 생기는 일 6

절반의 성공

by 하리

순간 포착 같은 어머님 종교관의 반전 기회는 다급한 그 순간뿐이었다. 언제 성당마당을 가로질러가서 '성모요.'

하고 부른 기억조차 이내 지우셨다.


그런데도 언제부턴가 분명 변화가 있고 달라지고 있었다. 점점 하소연 같은 불편하다는 말씀이 줄어들어갔다.

그렇게 된 이유를 몇 가지로 유추할 수 있다.

첫째, 몸의 통증이나 답답함이 어머님 나름의 노력으로 좋아졌다거나

둘째, 효심 지극한 아들과 함께하는 가족들의 지원 덕분으로 심리적 안정과 꾸준한 절 나들이로 인한 운동효과이거나

셋째, 어쩌면 정말 그날 성모님 앞에서의 기도가 진심이어서 이루어졌다거나,

중에 하나이거나 복합영향이지 않을까 싶다.

코로나 시대를 지나오면서 너나없는 강제 외출금지로 절 투어도 눈치껏 행동해야 했다. 어떻게든 기어이 집을 나서고 봐야 한다고 우기는 남편의 뜻을 꺽지 못해 간 절의 대부분은 사람을 꺼렸다. 심지어 어떤 절은 아예 입구가 막혀 있거나 열려 있어도 대웅전이 닫혀있거나 쫓아내듯 밀려서 나온 곳도 많았다.

그런 중에서도 비록 마스크를 낀 채이긴 해도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거나 차까지 내어주는 곳도 있었다.

때로는 탑돌이나 먼발치의 사찰구경도 나름 의미가 있어 주말 나들이로는 산중의 절 찾아가기 만한 것이 없었다.

나 역시 닫혀버린 성당 대신 거의 매주 절 투어에 따라나설 수밖에 없던 코로나 시대가 슬그머니 빠져나가고 있었다.


'아프다. 힘없다. 못 걷겠다. 죽는 게 낫겠다. 가기 싫다. 먹기 싫다'등등의 어머님의 바뀌던 레퍼토리도 점점 힘을 잃어 갔다.

횟수가 거듭 될수록 쏠쏠한 재미가 늘어갔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큰 아들네 손주들이 오고 어떤 날은 작은 아들네 손녀가 오더니 사위 네가 합류해 차도 늘고 사람도 많아지니 밥을 먹는 횟수와 메뉴도 바뀌고 있었다.

어느 때부턴가 어머님께서도 제사보다 젯밥인 점심밥에 더 열심이다 싶자 남편이 소리쳤다.

"앞으로 점심은 집에 와서 먹을 거다. 절 가자면 빼더니 가서는 절은 대충 하고 뭐 묵노? 하고 먹는데만 신경 써는 거요?"

매주 절투어 5년여 만의 결미는 애초 남편이 의도한 보살 같은 마음 같기도 아니고 며느리 따라갈 거다? 란 엄청난 반전은 아니지만 그래도 성공은 성공이다.

걷지 못하겠다며 마당을 나서기도 싫어하던 어머님께서 구순을 보름 남짓 남겨둔 지금, 이전보다 많이 건강해지신 듯 때마다 반찬 가짓수를 세고 절에선 공손히 절을 하신다.

어쩌면 부처님 은공이요, 성모님 은총일 수도 있겠지만 인간적으로 이즈음에

한번 마음먹으면 목숨을 걸고 실행하는

울 남편에게 글로 먼저 한마디 남기고 싶다.

"효심과 끈기 멋집니다. 이다음에 그 에너지 몇 퍼센트는 아내인 내게도 활용하실 거지요?"


몇 년째 생신 잔치도 절 가까이 식당으로 정해 온 가족이 움직였는데

2025년 첫 주 어머님 생신날은 어느 절이 있는 어떤 맛집일지 스무 명 넘은 온 가족은 벌써부터 내심 기대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