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포착 3

시래기 대란

by 하리

"막둥아, 뭐 준비해 갈까?

부활절을 하루 앞두고 단체톡에 올린 문자다. 검진차 상경할 거라고 버스 예약을 보름 전에 해 둔터였다.

단톡에다 짧게 올린 뒤에 돌아온 답은 이랬다.

"글쎄, 지난번 반찬도 남아 있어서,

오래 두고 먹을 게 있으면 좋고 ,,,"

어정쩡한 답에 매달릴 겨를이 별로 없었다. 부활 전야 미사에 가야 했고 낮에는 해설사 근무가 있었다. 출근을 하고 보니 해설 활동장소에서 행사준비가 한창이었다. 시간은 다가오는데 채 정리가 안되어 있어 거들다 보니 엉덩이 붙일 겨를이 없었다.

간신히 무얼 할 건지 메뉴만 정한 채 늦은 밤에 플래시를 켜가며 찾아서 불려놓은 것이 시래기였다.

이윽고 부활절 미사와 식사를 마치고 부엌으로 다시 입성한 때는 서울행 버스 출발 세 시간쯤 남긴 때였다.

뒷밭둑에서 자란 머위 한 줌과 명태포 무침을 했다. 그사이 삶아 놓은 시래기에다 된장과 들깻가루등을 버무려서 간을 맞춘 뒤에 소분했다. 그것은 냄비에다 물을 넣고 끓이면 국이고 볶으면 반찬이 될 것이었다. 생각보다 시래기 양이 많아서 어머님댁에 드릴 것은 따로 포장을 하곤 남편에게 부탁까지 했다.

차에서 내려 가방을 멘 순간 좀 무겁게 느껴졌다.

3시간 걸려서 도착한 서울정류장에서 지하철을 타러 갈 때도 그랬다. 하지만 좀 피곤해서 그런가 싶었다. 막내를 만나자마자 가방을 건네주면서 좀 무겁다는 말을 던졌다.

밤 10시경 목적지인 막내집에 도착해 짐을 푸는데, 아뿔싸!

그제야 알게 된 것이 어머님께 드리겠다고 따로 둔 시래기뭉치가 같이 들어 있는 게 아닌가!

제대로 짜지 않은 채 물기가 남았으니 무거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문제는 넘치게 들고 온 시래기를 어떻게 할 거냐는 것이었다. 냉장고에 넣긴 했는데 냉동실은 자리가 없어 난감했다.

어떻게 나눔 하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다가 일단 반찬을 만들어서 직장에 들고 가게 하는 게 최선일 것 같았다.

다음날 5시경 아침을 먹었다. 오후에 있을 검사 전 6시간 금식하는 규정대로 잘 되는 듯했다. 하지만 넘치는 시래기를 요리하다가 그만 간을 봐버렸다. 시간을 보니 9시가 넘어 있었다.

다시 들고 내려가라는 딸의 말은 무시한 채 병원으로 향했다. 그사이 단톡은 불이 연신 켜졌다.

막내가 '시래기 지옥'이라고 표현한 것이 속상해서 당장 고치라고 올렸다.

그 사이 큰딸이 '그러면 시래기 천국은 어떠누?' 하면서 일하는 도중에 답을 보냈다. 그렇게 해서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키고 병원에 도착했다. 조금 먹었으니 괜찮겠거니 하고 담당 간호사에게 나지막하게 운을 뗐다. 그런데 돌아온 답은 검사를 못한다는 것이었다.

어쩌나? 전날에 올라와 밥까지 새벽에 먹어서 벌써 배가 고파오기 시작하는데 말이다.

"시골에서 왔어요. 아주 조금 간 본 건데요." 거의 사정조로 말하니까 조금 기다려보라고 하더니 배가 고프긴 하겠지만 3시간을 더 기다려서 마지막에 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는 것이었다.

그 시간은 택시를 바로 타고 날라도 아슬한 시각이었다. 난감해하는 내 모습을 본 예쁜 간호사 선생님은 잠시 기다려보라고 했다.

잠시 뒤에 다시 불러서 귓속말로 전하기를 방송 않고 찾을 테니 15분 전에 와서 기다리라고 했다.

시래기만 아니었음 벌써 검진을 마치고 밥 먹을 시간에 연거푸 맹물만 마시고 있다가 3시경 준비해서 마치고 나니 4시 20분쯤 되었다. 허겁지겁 미리 사 둔 빵을 한입 먹으니 온통 짠맛뿐이었다.

다행스럽게 택시를 타긴 했는데 가다 보니 차는 밀리고 데모하는 사람들 소리가 들리니까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그만 버스 정류장에서 사려고 한 김밥조차 손에 쥐지 못한 채 버스에 올랐다.


그저 무사히 차에 탄 것만도 감사하단 생각도 잠시 배에선 연신 꼬르륵 소리가 났다.

어쩌랴! 짜거나 말거나 빵을 또 한입 베어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