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포착 2

웃픈 현실

by 하리

초진 후 십 년 만에 나타난 생뚱맞은 환자와 마주한 의사 선생님께선 적당히 친절했다. 최소한 지역병원 방문 때에 비해 훨씬 다정한 이미지인 데다 나이조차 젊어 보였다.


어쨌거나 그 분과의 만남에 대해 앞으로 요렇게 손가락으로 사유하기조차 싫어질 때가 있을지도 몰라 놓치기 전에 잡아보기로 했다.

다시 주제 따라가 보자면, 주치의가 자연스레 바뀌어버린 세월 동안 어떻게나 병원에 돈 들고 가서 벌벌 떨지 않고 혼자 낑낑 버티었다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린 것이다.

조심스레 건네온 질문이 "수술해야 하는데 하실 거지요?"였다. 그런데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고도 상담은 끝났다. 다음 해 예약날은 하필 코로나가 기승부릴 때라 저절로 미루어졌다.

그러구러 3년째 대면 진료가 있던 날의 질문은 같았다. 나 역시 들려준 답도 이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왜? 이런 지경인데도 망설이십니까?"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애원하다시피 나의 승복을 원했으나 결심이 서지 않았다. 이미 다른 조직으로 침범한 것 같다는 ct 결과 앞에서 "혹 확진 진단서는 되는지요?"란 질문만 던진 채 안된다는 말만 듣고 과감하게 상담을 마쳤다.

뭐라도 더 하면서 미루다 보면 살아질 것 같은 미련에다 막상 칼을 대고 나면 반 이상 떨어질 체력으로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남아 있었다.

그 일 년 사이에 맨발 걷기에 좀 더 집중하고 마당과 꽃밭 돌보며 모임 나들이도 거의 빠지지 않은 채 참석하며 지냈다.

어떻게나 잘 버티고 정상적인 생활을 한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여름만 해도 무난했고 초가을까지도 잘 지냈다는 안도감에서 그만 벗어나 버리고 말았다. 평상시보다 힘들고 반복적인 과한 노동은 내게 무리였던 것이다.

김장준비와 마무리가 끝나기도 전에 몸살이 나더니 그 길로 목소리가 잠기기 시작하여 겨울을 지나 봄이 되도록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정기검진 때까지는 어떻게든 지내보자는 심정이었으나 벌써 암진단 15년째 버팅은 한계에 다다랐다는 걸 받아들여야 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왔다 갔다 하는 마음 다잡는 것만도 에너지 소비가 많았던 날들이 지나갔다. 드디어 다시 마주친 검사결과 앞에서 주치의께서 담담한 목소리로 던진 말이

"이번에도 수술은 선택하지 않을 거지요?

누가 봐도 암인데 , 그래도 작년과 비슷하긴 해요."

그 말인즉, '나름 관리는 하고 계셨군요.'라는 줄임말이 있었다.

"목소리가 비정상이라 이번엔 전신 팻 한번 찍어 보고 싶어요. 경비가 좀 될 터인데 그마저 자비로 해야 하나요? "

그랬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번에야 말로 결과 앞에 조용했다.

"중증으로 등록해 줄 테니 검사하고 어떤 처치든 하는 겁니다?"

수술해서 생검 이외에는 진단처방 없다던 분께서 5년 차 되니 지치셨다보다. 나 역시도 그랬으니 말이다. 노력의 결과는 더디고 약한데 나빠지는 건 일순간이라는 걸 반복적으로 체험한 지난날 아니던가!

기적 같이 하루아침에 말짱해질만치 마음도 몸관리도 잘하지 못하는 팔푼이가 지금까지라도 버텨온 것은 순전히 실낱같은 믿음에 기대어 희망을 부여잡고 산 결과다.

어쩌나? 그냥 살아있음만도 기적인 것을, 하는 맘이 종종 들다가도 앞으로 어이 살아야 잘 살았다고 할 것인지가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고민이다.


앗싸 야호!라고 외치기도 뭣하고, 그렇다고 울며 슬퍼하는 것도 좋은 대응은 아닌 때다. 지금껏 맨땅헤딩한 나의 치병 결미가 나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걱정과 염려를 확 날릴만치 좋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