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포착 5

튄 조기

by 하리

초여름이면 배태 없이 사시다 느지막이 양손자로 받아들인 남편을 귀히 키웠다는 시할머니 제사가 있다. 하지만 내겐 묵묵히 해내던 일들도 건강상 위험신호가 자주 깜빡이니 힘들어갔다.


그 제사를 작년에 시할아버지와 합쳐서 지내겠다고 가족들이 결정했다. 그때 그 자리에 남편이 없었다는 이유로 올해 다시 부활하게 되었다.

대신 앞으로는 집에서의 준비가 어려우면 제수 음식을 맞출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말은 그때뿐이었다. 이미 남편은 제사장을 반 가까이 봐놓았고 어머님께선 연신 되뇌기에 하는 수없어 날을 비웠다.

'그래, 그렇게 소원이라는데,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것도 아닌데 설마 엎어지진 않겠지?'하고 수용했다.

평상시에는 자리보전하기를 즐기는 어머님이지만 제삿날만 되면 날 선 감독으로의 돌변은 이미 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음식하나가 채 끝나기도 전에 다른 주문을 하면서 종용하실 때는 가슴 밑바닥에서 욱하고 올라온다. 그런 속 좁은 마음보로 제사준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가도 다시 움직였다.

듣기가 잘 안 되는데도 훈수두기는 계속하고 싶어 하니 보청기를 착용케 한 초반엔 조용히 진행되나 싶었다. 그런데 어떻게 한 번도 곁을 떠나지 않고 식탁 자리만 옮기며 계시기에 웃으며 물었다.

"음식 하는 거 보면 재미있으세요?"

하지만 돌아온 답은 해석을 잘해야 했다.

"재미는 무슨, 할 힘은 없고 그냥 보고 있자니 애만 툭 터지누만."

어쨌거나 프라이팬 다루기의 하이라이트인 조기 구울 차례가 되었다. 그제야 어머님께서 떡 찾으러 보내야겠다며 부엌을 나가셨다.

그때였다. 갑자기 크게 들리는 까마귀들의 떼합창 소리가 신경 쓰였다.

'뭐지? 까치도 아닌 까마귀가 이리 소리치누 , 뭘 조심하라는 걸까?'

난데없는 까마귀들이 귀가 따갑도록 소릴 치고 있어 순간 안방을 살폈다. 혹시 아버님께서 출발하셨나 했는데 다행히 아직 외출 준비 중인 듯했다.

설핏 든 불안감을 가라앉히고 치직 소리 나는 조기를 뒤집은 뒤 뚜껑을 닫고 돌아서서 한 발자국쯤 뗐다.

'툭툭 , 타다닥'

한마디로 순간이었다. 가스레인지 위에 있어야 할 프라이팬은 바닥에 없어져 있고 조기는 더 멀리 튄 채 나를 멀뚱 쳐다보는 게 아닌가! 마치 일부러 패대기라도 친 듯 바닥은 온통 기름으로 난장판이 되어 있다. 게다가 식탁과 의자는 물론 건너편 벽에도 번지는 중이었다. 다시 보니 프라이팬 뚜껑마저 일그러져 있는데 그 기름이 내게로는 튀지 않았던 것이다.

프라이팬 바닥이 매끄러워서인가? 기름 온도가 오르니 저절로 미끄러진 걸까?

조기 자릴 바꾸면서 힘의 균형이 맞지 않아서였나? 여러 가지 원인이 마구마구 떠올랐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팬은 바닥에 엎어져있고 그 와중에 조기는 멀쩡했다. 만약에 그 자리에 어머님께서 계셨거나 혹은 내가 그냥 서 있었다면? 하는 생각까지 유추하니 아찔했다.

제사에 진심인 어머님께서 구이 마지막작품인 조기가 올라간 동시에 떡으로 마음을 돌려서 몸을 움직인 그 순간에 까마귀는 귀가 따갑도록 깍깍거렸다.

덕분에 급 긴장모드로 전환했다가 다시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꾸고는 기름투성이 바닥과 식탁을 닦느라 한참 실랑이했다.


대신 제사의 의미, 마음보, 미물 같은 동식물의 빠른 예감각, 등등의 몇 가지 생각을 동시에 해본 또 다른 제삿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