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기억들

4. 고욤이 내게 건넨 말

by 하리

약속시간까진 약간 여유가 있기에 마당을 나섰다.

산을 마주 보며 언덕길을 천천히 걷다 니 평소에는 있는 줄 몰랐던 고욤나무가 눈에 띄었다. '어라? 가지 끝에 고욤 있네!' 하며 가까이 갔더니 서리를 맞고도 쪼글쪼글한 체 몇 알이 매달려 있다. 반가운 마음에 하나를 따서 입에 넣다. 포도알 만한 알맹이 속에 꽉 찬 씨를 뱉어내긴 했지만 달기가 꿀맛이었다.

어릴 적 우리 집 감은 홍시가 되려면 늦가을까지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종조부님 댁에는 감나무가 여럿 있었다. 그중에 단감나무는 이른 가을부터 연신 동네 조무래기들의 손을 탔다. 런데 일반 감나무에 남겨둔 까치밥마저 없어지고 난 뒤에도 먹을 게 있었으니 바로 안채 뒤의 고욤나무였다. 열매가 작아도 단 줄은 알지만 둥치나 가지가 일반 감나무보다 약하니 올라갈 수가 없었다. 대신에 늘어진 가지 끝에 달린 것들로만 겨우 맛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리하여 김장을 포함한 겨울채비를 마친 뒤에야 서리 맞은 고욤이 어른들 손에 의해

가지채로 수확이 되었다 그 고욤을 따 모아서 작은 꽃단지에 차곡차곡 쟁여두면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저희들끼리 짝짝 엉겨 붙는다. 그냥 보면 마치 조청이나 오래 묵은 밤꿀 같다.

하지만 진짜 나 조청은 귀하게 취급되다 보니 을 기회가 별로 없었다. 대신에 린 우리들에게 달달함의 극치는 단연 겨울이면 맛볼 수 있는 고이었다. 그마저도 양이 적고 귀해서 어른들이 내어주어야만 먹을 수 있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특별한 때도 있었다. 동지나 한 해를 마무리할 때쯤 손자들이 모여 와서 인사라도 할라치면 다락에서 단지채로 나왔다. 그때는

단지가 다 빌 때까지 아무도 할머니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날만은 연날리기나 스케이트도 고욤에게 자릴 내어주고 쉬는 날이 되곤 했다.

고욤나무는 누군가 감을 먹고는 씨를 버린 게 싹이 났을 것이다.

욤나무처럼 도 어쩌다 뱉은 말과 행동 어딘가에선 싹을 틔우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 제야 마음이 바빠졌다.

몸 약한 것이나 아픈 것도 다 내 탓인데

코로나를 핑계되고 사람들과의 약속을 날릴뻔했다

고욤은 소리 없이도 내게 많은 것들을 전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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