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살 둘째와 맹렬히 신경전을 하는 나날들이다. 축구 보강을 보내려는 자와 가지 않으려는 자. 화요일 갑작스런 장염 이벤트로 축구수업을 가지 못했다. 오늘 보강 수업을 하려고 학원까지 들어갔는데 끝까지 풋살장으로 안들어간다고 한다. 이유는 친구들이 없기 때문에. 화요일 수업에는 유하를 포함한 다섯 명의 꽃잎반 친구들이 함께 수업을 듣는다. 그런데, 보강은 낯설 형들과 함께니 수업이 하기 싫은거다.(아빠가 데려간 지난 보강 때도 기어이 안들어가겠다고 해서 은우가 대신 들어가 수업을 한 적이 있다. 이번에도 은우가 자기가 들어가면 안되냐고 했지만, 매번 그럴 수 없어 안된다고 하고는 유하를 계속 설득했다.) 억지로 밀어넣을 수도 없고, 살살 구슬려서 넣을 재간도 없고, 절대 절대 안들어간다는 아이를 밀어넣을 수 없으니 그냥 데리고 나왔다. 그리고는, 나도 포기하지 않았다. 차를 타고 가는 내내 협박과 회유로 아이를 다시 축구장 안으로 넣으려고 했던 나의 작전은 엉엉 울면서 안가겠다고 하는 아이 앞에서 대실패로 끝났다.
나도 화가 났다.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고서는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없어." 하며 내일 동영상과 과 포켓몬 카드 개봉 금지! 라는 꽤나 유하에겐 청천벽력같은 소리이자 엄마의 똥권위를 악용한 제멋대로의 통보를 하며.
그 사이 축구 보강 시간은 반이 훌쩍 지났고, 선생님께는 오늘 수업을 못하겠다고 연락드렸다. 그리고 도서관에 앉아 각자의 시간을 가졌다. 은우는 이 소용돌이 쯤엔 관심 없다는 듯 좋아하는 삼국지 책을 읽고, 유하도 나의 눈치를 살피긴 하지만 보강을 안가 내심 다행인 듯한 표정으로 그림책을 보고, 나도 조용히 내 마음을 되돌아보았다.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이성을 찾으니 이 상황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간단했다. 가기 싫어하면 안보내면 되는걸.
축구 수업 한번 결석하더라도 우리는 우리만의 남은 하루를 기분 좋게 보내면 충분한걸 왜 그렇게 아이에게 안해도 될 말을 해가며 보내는데 집착했을까. (수업료가 아까운건 아니었다. 하기 싫은 일도 해야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고, 그렇게 해야 아이가 나중에 맞이하게 될 낯선 상황에서 좀 더 도전적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걱정도 팔자다.)
유하는 내가 항상 그랬듯, "축구 안가는거랑 포켓몬 카드 뜯는거랑은 아무 상관이 없는데 왜 그걸 못하게 해?" 말을 되풀이하며 울분을 토해냈지만, 나는 이미 감정적이었다. 속으로는 이게 아닌데_ 지금이라도 포기할까 했지만 한 고집하는 나도 그게 잘 안되었다.
'보강 그까짓게 뭐라고 하루 빠지면 되는걸 가기 싫다는 아이를 기어이 보내려고 이렇게 애를 쓰고 있는지... 지금이라도 쿨하게 가지마_하고 다시 생글생글하기엔 보내려고 애썼던 나의 수고가 아깝고, 사실 화도 좀 난다. 직접 픽업해서 축구교실까지 모셔다줬으면 좀 들어가는게 그렇게 힘이 드나. 엄청 예민하고 포시랍네 증말!!'
내 마음 속에선 보강 그냥 안가면 되지 vs 뭐 어렵다고 그걸 못가, 그냥 가면 되지 두 마음이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안갈거니? 그래, 가지마_ 하고 넘겼다면 기분이 이렇게 상하지는 않았을텐데, 어떻게든 들여보내겠다는 나의 욕심이, 쉽게 포기하지 못한 마음이 시간이 지날수록 집착으로 변해갔다. 그러더니 이제는 가지마_ 다음에 가자 생글생글 이 스탠스가 안되는거다. 처음부터 보내지 말고, 아이랑 실랑이도 하지 않고, 내 기분도 상하지 않고, 아이 기분도 상하지 않게 할걸. 치사하게 내일 게임이나 못한다고 내뱉어버리고 진짜 부끄럽다 부끄러워.
나는 나의 욕심과 내 식대로 하겠다는 고집을 버리지 못해 아이에게 내가 원하는 것을 강요했고, "해야 하는 일을 안하면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없어, 즉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권리도 없어"라는 그럴 듯한 말로 포장하며 아이의 일주일 중 가장 기다리는 즐거움을 뺏으려 했다. 차분히 앉아 돌이켜보니 그랬던거다. 그제서야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는 단지,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에 낯선 수업이 싫어서 '친구들이 없는 수업은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고, 그걸 표현했는데도, 내가 그걸 원하지 않아서 아이의 마음을 거부했다. 딱딱하고 엄격한 사감처럼, 그래도 해야 해_ 하며 하기 싫은 것을 하는 것도 연습이고 도전이라며 밀어부쳤다. 아이의 먼 미래에 도움이 된다는 혼자만의 착각으로.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할 이유가 있을까. 아이가 하기 싫은 것을 평생 회피하고 안할거라는 걱정과 싫은 것도 해봐야 낯선 것에도 적응하지 않을까 하는 미래의 기대 때문에 눈 앞에 있는 오늘 하루를 망쳐가고 있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건, 너무나도 화창한 금요일 오후의 함께 하는 시간인데 말이다. 쓸데없는 걱정으로 지금 당장 눈앞의 소중함을 못보고 있었다. 더 이상 망칠 수 없다. 다시 되돌려야 한다.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이에게 나의 모자랐던 행동을 진심을 다해 사과하고, 서로의 마음에 귀 기울여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 쯤은 말이다.
도서관을 나와 숲놀이터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 유하에게 나의 모자란 마음을 고백했다.
"유하야, 많이 속상했지. 엄마가 보강을 억지로 들여보내려고 한 것 미안해. 유하가 친구들 없이 수업 듣는게 싫다고 말했는데도 엄마가 강요했어. 그리고 엄마의 뜻대로 하지 않는다고 일주일동안 기다린 너의 즐거움도 뺏으려고 했어. 엄마가 미안해, 사과할게."
마음이 후련했다. 지금이라도 아이에게 나의 잘못을 사과할 수 있음이, 괜한 자존심과 고집으로 남은 하루를 망치지 않을 수 있음이 다행스러웠다. 유하도 나의 마음을 알아주었다. 그리고 우리의 보강은 친구들 중 한명이라도 보강을 하는 친구가 있다면 그 날 같이 수업하기로 했다. 시간이 맞지 않으면? 수업하지 않기로 했다. 유하도 흔쾌히 오케이했다. 누군가는 나의 이 행동이 엄마가 단호하게 대차게 더 밀어붙이지 못한다 생각할 수 있다. 나도 그런 엄마가 될까봐 아이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었으니까. 그런데 육아에 답이란 없다. 아이가 버거워하면 하지마_ 라며 마음을 편하게 해줄 수 있는 것도 부모의 역할일 것이다. 나는 오늘 그 역할을 더 많이 할 것이다. 낯선 형들과 축구 보강 수업을 하기 싫어하는 유하의 마음을 알아주고 보강을 안하기로.(그 과정에서 한바탕 전쟁은 있었지만, 아_ 처음부터 이렇게 할걸, 처음부터 너그러운 엄마 코스프레 좀 할걸, 지지고 볶고 싸운 후에 두 손 다 든 엄마다.)
오늘의 이벤트로 또 하나 느낀 점은 몸이 많이 힘들고 체력이 바닥났다 느낄 때는 중요하든 사소하든 우리의 기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선택'은 되도록 하지 않아야겠다는 것이다. (=화날 땐 결정하지 않기)오늘은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몸의 에너지 고갈은 뇌의 에너지 고갈로 이어진다. 몸이 힘드니 평소처럼 여유가 없고 부쩍 예민해져서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일도 뒷꽁무니 잡고 안놔준다. 오늘이 그랬다. 보강을 보내야지_ 이것에 꽂혀서 나도 힘들고 아이도 힘든 순간이 있었다. 이렇게 다짐하며 나의 체력을 좋은 컨디션으로 유지하도록 노력하겠지만, 살다보면 체력이 풀충전된 완벽한 날들만 있지는 않을거다. 내 몸이 힘들어 제대로된 결정이나 선택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 때에는 되도록 오케이_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좋은게 좋은거야, 더 깊게 들어가서 나의 에너지를 갉아먹지 말고 괜히 실랑이하지 말고 한번쯤은 그냥 물 흐르듯 넘기는 오케이를 외쳐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