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모닝 똥 전쟁

by su

꽤 바쁜 아침이었다. 빠듯한 아침 시간에 첫째는 밥을 먹다 말고 똥이 마렵다며 변기 위에 앉아서는 한참을 나오지 않는다. 변비님 때문이다. 밥 한숟갈이라도 더 떠먹여서 늦지 않게 나가야 하는데 그놈의 변기가 아이를 꽉 잡고 놔주질 않는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알길 없는 은우는 거실에 울려퍼지는 헨델의 음악에 맞춰 변기 위에서 춤을 춘다. 휴. 아이를 탓할 수 있나. 변비를 탓해야지. 아니, 아이가 변비가 된 원인을 제공한 그 무엇을 탓해야하는데 그게 뭔지 특정할 수 없다. 물을 잘 안먹인 나의 탓? 배변훈련을 제대로 못한 나의 탓? 무슨 의미가 있을까. 변비약 먹고 있으니 나으면 그만이지. 별의 별 생각이 다 드는 아침.


은우가 똥과 씨름하는 사이, 둘째 녀석이 외친다. "엄마, 똥 마려워."

오늘은 똥데이. 누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하지만 이러다 늦을 수 있겠고, 머릿속이 혼란스럽고 행동이 바삐 움직이는건 출근해야하는 이 엄마 뿐이다.

최대한 침착을 유지하며 그래 똥은 눠야지_ 얼른 누렴_ 하지만 마음은 불안이 백 명이 뛰어다니고 있다. 오늘은 셔틀 놓치면 안돼. 엄마 1교시부터 수업 있단 말이야. 유하 데려다주고 가면 지각한단 말이야. 그러니 제발 셔틀이라도 타자.


변비를 해결하고 나온 은우는 갈비탕에 밥 한숟갈이라도 더 떠먹으려고 한다. 평소엔 그렇게도 안먹던 밥을 오늘따라 왜 이렇게 열과 성을 다해 먹는건지. 5분만 더 있었다면, 밥은 다 먹이고 학교 보낼 수 있을텐데, 지금 당장 그 5분이 없다. 워킹맘이 아니었더라면, 셔틀 시간이 딱 정해져있지 않았더라면 좀 더 먹이고 보낼 수 있었을까, 이 아침에 안쓰런 아이를 보며 쓸데없이 미안해지려는 찰라... 전업주부였어도, 아마 그 5분은 없었을거야 하며 마음의 위안을 삼는다. 하지만 위안 따위 하고 있으면 안된다, 뭐든 그 5분이 아쉽지 않게 미리미리 준비해야하는 것을 그러지 못하는 나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크다.


왜 매번 아침에 이렇게 바쁠까. 오늘은 아침 독서를 하다 은우가 깼고 둘이서 찰떡같이 끌어안은 채 쇼파에 누워 책을 함께 읽었다. 평온하고 자유로운 시간을 만끽하다 문득 시계를 보니 아뿔사 7시 20분. 8시에는 나가야하는데 지금 밥을 먹기 시작해야하는데 팔자 좋게 퍼질러 책이나 읽고 있었다니. 부랴부랴 갈비탕을 데우고, 방울토마토를 굽고, 아이들 물통을 챙긴다. 나의 출근 준비따위 중요하지 않다. 그냥 선크림 바르고 머리 한번 스윽 빗고 가서 감기 걸린 척, 아파서 꾸밀 힘조차 없다는 듯 연기하면 된다. 오늘은 그래야 한다. 그 와중에 유하가 깼고 내가 음식을 준비하는 사이 아이들은 책에 빠졌네? 밥 먹으러 오라해도 한 장만 더 읽고!를 외치는 아이. 서서히 지각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그런데, 겨우 밥 먹고 이제 나가면 되겠다 하는 찰라에 똥이라니! 똥은 생각지도 못했다. 공포스럽기 짝이 없는 '나가기 직전 마려운 똥'이다.


일찍 준비를 하지 못한 나의 실수와 예상치 못한 똥의 공격이 오늘 아침 전쟁터의 이유였다. 다행히 늦지는 않았고 서두른 탓에 오히려 셔틀보다 일찍 도착했지만, 조금만 늦었으면 운전하는 내내 셔틀을 놓치면 어떡하나 조바심났을 것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불안한 아침.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아침이 전쟁터 같더라도 최대한 아이들에게 티를 안내려고 노력한다. 바쁘게 허둥지둥하는 모습도 학습할거라 생각하니(안 늦게 준비하는게 베스트이겠지만, 사람인지라 그렇게 할 수 없는 날들이 있는 법, 그럴 땐 최대한 침착한 척 행동한다.) 최대한 침착하게, 상황을 유쾌하게 풀어내려고 노력한다. 차를 타러 가는 길에 재미있는 달리기 시합을 하자며 재촉하고,ㅋㅋㅋ "오늘 은우가 세수 못한 걸 친구들이 알지 못하게 하는게 미션이야"라며 뜬금없이 미션도 준다. 늦었다고 아이들 다그치고 잔소리해봤자 애들 다 보내고 출근한 후 앉은 책상에서 마음만 불편할 뿐. 워킹맘 엄마를 따라다니며 고생만 한다며 눈물 콧물 줄줄 흐르기만 더 하겠냐는 말이다. 아이들이 미적거리고 꾸물거린 것에 대한 화보다는 엄마 따라 아침 일찍 나와야 하는 현실에 대한 미안함이 더 커지는 출근 후 마법같은 시간.


상황은 바꿀 수 없다. 바꿀 수 있는건 나의 태도 뿐이라는 말이 또 다시 절실히 다가온다. 길면 10년? 아이들이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나의 손길이 차츰 필요없어질 때 쯤에는 오늘과 같은 아침 등교 전쟁이 추억이 되겠지. 아이들과 이렇게 지지고 볶을 아침 시간도 무한하지 않다고 생각하니 더 없이 소중해지면서 슬퍼지.....큭! 지나친 슬픔은 금물.

매일 아침 아이들과 건강한 얼굴로 인사하고, 끌어안아 온 우주의 사랑을 다 나눠주고, 할 수 있다며 힘을 주는 아침의 선물을 감사히 받고 아껴 아껴 쓰도록 해야겠다. 신에게 행복을 달라 했더니, 감사하는 방법을 배우라고 했네_라는 말이 있다. 아침의 행복은 아침에 감사하는 순간 저절로 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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