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남쪽의 개마고원은 수십억 년 된 땅덩이다. 그 위의 일부 지역은 수백 만 년 전 현무암이 나와 퍼진 용암 대지다. 인도의 데칸 고원도 수십억 년 된 땅덩이 위에 수천 만 년 전 현무암 용암이 분출하여 넓은 대지(臺地)를 만들었다, 이 점에서는 두 지형이 비슷하다. 그러나 데칸 고원의 현무암 대지는 그 면적과 두께가 개마고원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대규모다.
지금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인도, 남극대륙이 떨어져 있지만 3억 년 전 고생대에 남반구에서 이들은 서로 붙어 있었다. 그 증거의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고 추론되는 지점들을 보면 화석들의 종류가 서로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유럽 학자가 인도의 곤드와나라는 지명을 빌어 와서 이 거대한 대륙에 곤드와나 랜드라고 이름을 붙였다. 곤드와나는 힌디어, 곧 인도말로 ‘곤드족이 사는 나라’라는 뜻이다. 이 대륙에 버금가는 인도반도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평탄한 상태에서 지구를 헤엄쳐 다녔다.
인도 반도는 섬 형태로 계속해서 테티스 해를 뚫고 유라시아대륙과 충돌하게 되었다. 5천 만 년 전의 사건이다. 크게 보면 남쪽에서 북쪽 방향으로 이동하였지만 살짝 동쪽으로 치우쳐 달렸다. 이동 속도는 머리카락 자라는 속도와 비슷하여 1년에 14센티미터 안팎으로 헤엄쳤다. 지금 뉴델리에서 마다가스카르까지 6,200킬로미터 정도 된다. 휘어서 이동했기 때문에 실제로 두 지점 사이 이동 거리가 7,000킬로미터 정도고, 5,000만 년 동안 이동하였다고 가정하면 연 평균속도가 14센티미터로 나온다. 물론 유라시아판과 충돌하면서는 이동 속도가 느려졌다.
이동하던 중 백악기에 해당하는 6,600만 년 전 인도판 아래에서 현무암이 분출했다. 이 현무암은 데칸고원의 넓은 부분을 차지하였으며, 현재 그 면적은 한반도의 2.5배, 남한의 5배 정도가 된다. 현무암 풍화토는 면화 재배에 유리하다. 이 면화를 바탕으로 인도는 일찍이 면직 공업이 발달했다. 그리고 영국은 이 면화를 수탈하여 산업 혁명을 발달시켜 나갔다. 마하트마 간디는 영국에 저항하기 위해 가내 수공업 방식으로 면직 공업을 이어가고자 했다.
인도 반도 서부에는 수천 미터에서 수십 미터의 두께인 현무암 용암 대지 위에 인도의 여러 주가 분포하고 있다. 이 현무암 바위 속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아잔타 석굴, 엘로라 석굴이 자리 잡고 있다. 역시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우리나라 불국사 석굴암이 화강암 속에 만들어진 것과 비교가 된다. 인도의 석굴들은 불국사 석굴암보다 훨씬 규모가 훨씬 크다. 그러나 그리스의 영향을 받아 불상들이 간다라 양식으로 만들어져 있다는 공통점은 있다.
(위 사진 : 7천만년 전 용암(현무암)이 완만하게 왼쪽(북쪽)에서 오른쪽(남쪽)으로 흘렀던 것처럼 보인다. 겨울이 건계인 사바나 경관을 보여준다.
아래 사진 : 지리샘들이 학교에서 수업했던 데칸 고원의 현무암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