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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ia Oct 24. 2021

코로나 시대의 런던 3.

ep 3. 1차 락다운 해제와 컴백

    락다운의 생소함과 두려움 속에서 도망치듯 한국으로 돌아왔다가 락다운이 해제되자마자 런던행 비행기에 올랐다. 런던은 나에게 생활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여행지이기도 하다. 모든 것은 익숙하면서도 새롭고, 일상이자 일상이 아니며, 완벽하게 통하지 않은 언어를 어떻게든 구사해보려고 하면서, 이방인이면서 이방인이 아닌 척 하면서 살게 된다. 그곳은 자유의 공간이다. 한국에서는 남들이 보기에 괜찮은 학교와 직장, 도덕성과 사회성이 있는 소위 '숙녀'의 인생을 살았지만, 그것은 나의 족쇄이기도 했다. 사람들의 역할기대에 어긋나서는 안된다고 무의식적으로 스스로를 옭아매며, 자아가 튀어나가지 않게 내 속에 억눌러왔던 것을 런던으로 떠나기 전에는 잘 몰랐다. 의외로 나는 수용적이고 잘 다듬어진 사람이 아니라 공격적이고 거친 사람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국보다도 훨씬 심각한 확진률 속에서 어쩌면 코로나에 걸릴 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코로나 이전처럼 낮이야 밤이야 밖에서 신나게 놀 수는 없는 노릇이고, 본국으로 돌아가버린 친구들을 소환할 수도 없었다. 결국 혼자놀기에 스스로를 최적화시켜야 했는데, 그 때 세운 목표가 세계 고전소설 100권읽기와 코로나 시대의 런던을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도록 기록해놓자는 것이었다. 

    마침 지금은 독일 작가 에리히 레마르크(Erich Remarque)의 ‘사랑할 때와 죽을 때’를 읽고 있다. 이 책에서 주인공 그래버는 휴가를 나온 나치 치하의 최전방 군인이다. 그에게 나치수용소에서 도망나온 유대인 요제프는 이런 말을 한다. 

“과거를 회상하는 것도 아직 일러, 현실이 너무 엄중하거든. 지금은 자기 자신을 위험으로부터 어떻게 지킬 것인가 생각해야 돼.” 

    코로나는 전쟁과도 같다. 보이지 않는 적의 기습공격으로부터 우리 생명을 스스로 지키면서 막막한 앞을 뚫고 나가야한다. 가족과 친구는 멀어져 있다. 지금은 과거를 곱씹을 때가 아니다. 과거에 천착해 있을 때도 아니다. 현실을 바라보아야 한다. 물론 언제나 그렇다.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건 언제 어디서든 마찬가지겠지만 지금같이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시기에는 더욱 그러하다. 락다운으로 우리는 혼자 지내는 법을 더 깊게 터득하게 되었다. 혼자 밥을 먹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여길 줄 알게 되었고, 혼자 티비를 보는 것, 영화를 보는 것, 술을 마시는 것도 모두 다.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쓰다보니 대화도 줄어들었다. 답답할 때도 많지만 가끔은 말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 편할 때가 있지 않은가. 예컨대 내가 제피를 좋아했던 것은 그는 나에게 언어를 잊게 했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언어를 전공하였지만 갈수록 언어의 마술에 회의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는데, 그 이유는 언어를 잘 구사할수록 나는 더욱 교묘해지고, 더욱 간사해지고, 사람을 더 잘 속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좀 더 솔직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언어를 모르면 모를수록 좋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끔은 친구들이나 애인과 영어 등 다른 언어로 대화하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것은 솔직하고 싶을 때다.

    히드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향했던 곳은 마크앤스펜서(Marks&Spencer)라는 복합몰이었다. 일단 간단하게 먹을 저녁거리를 사고 도착 기념으로 내가 좋아하는 세미 스위트 Vouvray 품종의 화이트와인도 사고, 런던에 다녀간 친구들이 그렇게 추천하던 납작복숭아도 이제 나오는 계절이 되었구나. 갑자기 이 사소한 것들로 인해 나의 런던생활이 다시금 활기를 띄는 것 같았다.

    스튜디오(침실 하나, 키친, 화장실로 구성된 작은 방)의 문을 약 3개월만에 다시 열었다. 방안은 먼지로 자욱할 줄 알았는데, 인간이 없는 이 공간에 먼지도 별로 없더라. 먼지 유발자가 나였음을, 창문을 열었을 때 들어오는 매연 때문이었음을 다시금 상기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물을 틀지 않아서인지 낡은 수도꼭지는 요란한 소리를 냈다. 짐을 정리하고 나니 피곤이 조금씩 밀려왔다. 그리고 마치 셋트처럼 두려움이 함께 엄습했다. 너무나 많은 자유가 주어졌을 때의 막막함이었다. 여기서 9월까지 무엇을 하며 보내야 좋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영국 밖으로 여행을 갈 처지도 아니고, 여행이 아니더라도 밖에 뽈뽈거리며 돌아다닐 처지도 아니고. 코로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아주 줄여주었다. 선택지가 얼마 없게 되었다. 

    결국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쇼핑뿐이었다. 즉, 없는 돈이라도 쓰는 것이 가장 쉽게 시간때우는 방법이었다. 주말에는 셀프리지 백화점(Selfridges)와 아울렛 비스터빌리지(Bicester Village)를 다녀왔다. 셀프리지는 조금 덜하지만 비스터빌리지는 야외라는 요소 때문인지는 몰라도 사람이 락다운 이전보다도, 중국인 관광객들이 단체로 몰려들던 3월 이전보다도 훨씬 많았다. 어딜가나 사람에 치이고, 마스크는 나몰라라 하며 다니는 사람들 때문에 갈수록 불안했다. 재밌는 것이 마스크 착용을 중시하는 우리나라에 비해서 이 영국이라는 오만한 나라는 마스크는 안써도 되지만(그리고 점원들 조차도 30%밖에 쓰지 않는 것 같았고 손님들은 거의 쓰는 사람이 없었다) 신발을 신어볼 때 덧신은 꼭 신어야 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시스템을 정부 방침이라며 고수하고 있었다. 기차 역시 운행 전에 테이블이며 손잡이이며 사람들의 손이 닫는 곳은 운행 전에 승무원이 들어와서 소독하고 다니는 데, 피팅 한 번 했다고 옷을 소독하는 아울렛 직원들도 있는데, 정작 마스크는 쓰지 않고 않아도 되는 이 앞 뒤 바뀐 귀여운 나라 같으니라고.

셀프리지 백화점 에스컬레이터에 표시된 노란 점. 우리나라보다도 거리두기는 철저하게 사람들이 지키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인도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 1-2미터의 거리두기가 어려운 경우 도로 일부까지 사용하여 걸어다닐 수 있도록 해놓았다. 교통 체증은 둘째치고 거리두기를 무지하게 중시하는 이 곳. 

    재택근무가 늘어나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교통체증은 줄어들지 않는다. 차량 통행이 늘어났기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이렇게 인도 옆 도로를 조금 내어 도보공간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2m 내외의 거리두기를 위해서다. 이렇게 거리두기라든지 손소독은 철저히 하면서도 역시 마스크는 잘 안쓰는 희안한 나라.

이토록 썰렁한 채링크로스 역(Charing Cross)이라니. 어떤 지하철역은 통제되어 열차는 2정거장 당 하나에만 정차하기도 한다. 그래도 사람이 없다. 

    

    런던의 대중교통은 점차 빠르게 코로나 시대에 부응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한국보다도 더 철저하게 거리두기를 권장하고 손 위생을 챙기는 모습이다. 지하철이든 상점이든 들어가는 입구에는 항상 손소독제가 비치되어 있고 나가는 곳, 들어가는 곳을 따로 두어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서로 거리를 둘 수 있도록 구조를 변경했다. 작은 상점의 경우 한 명(한 팀)의 손님만 들어오고 다음 사람들은 밖에 줄을 서도록 하는 시스템을 도입한 곳도 많다. 상점의 계산대(cashier)에는 언제나 투명 칸막이가 설치되어 서로 접촉하지 않도록 하는 곳도 많고, 네일숍은 손을 관리할 때 아예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손만 그 사이에 넣게 한다. 코로나 초반에도 그렇지만 "손을 잘 씻으세요(Wash your hands!)”가 가장 중요시되고 있다. 거리의 사람들 절반은 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 나라 사람들 생각보다 반항적이지 않고 순응적이다. Camden Market이나 펑키한 락앤롤, 다양한 예술적 문신들을 보면 반항적 기질과 문화가 있지 않나 싶다가도 이럴 때 보면 정말 순종적이다. 재밌는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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