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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ia Oct 21. 2021

코로나 시대의 런던 2.

ep 2. 코로나가 터진 직후~락다운, 딱 한 달

    코로나가 처음 시작된 시기는 사람마다 다르게 판단하지만, 적어도 런던에서 살면서 그 영향을 체감한 것은 2020년 2월 중순부터였을 것이다. 12월에는 학기가 끝나자마자 모로코에 여행을 가서 지냈고,1월에는 런던에 놀러 오신 어머니와 포르투갈 남부 여행도 했다. 그 때까지는, 뉴스 자체를 잘 보지도 않거니와, 여느 때처럼 유행중인 독감이 있는 줄 알았다. 당시에 정기적으로 데이트를 즐기던 미국인 남자가 있었다. 그는 Y대와 H대를 졸업한 이른바 수재 오브 수재였는데, 원래 직업은 변호사였으며, 공부를 좋아해서 내가 있는 대학에 공부를 하러 일을 쉬고 학생 신분으로 돌아간 사람이었다. 

    그는 와인을 좋아했다. 나도 와인을 좋아했다. 그는 미식을 즐겼다. 나도 그랬다. 그는 심리소설을 좋아했고, 학교의 강의에 회의적이었다. 나도 그랬다. 그는 여자를 믿지 못했다. 나도 사람을 쉽게 믿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는 나에게 다양한 와인을 맛보게 해주었고, 다양한 음식과 디저트를 함께 즐기고 이야기하고 감정을 공유했다. 지구 반대편에 나랑 다른 인종의 다른 모국어를 사용하고 다른 배경의 사람인데도 또 다른 나를 보는 느낌이 드는 사람이었다. 영어가 완전하게 입에 붙지 않은 나에게 그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의사소통이 완벽하지 않아도 그 사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 영어로 표현할 때, 내 감정에 더 솔직해질 수 있을까?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의 사고 회로는 한국어로 돌아간다. 우리는 누구나 그 언어를 고도로 사용할수록 각종 필터(filters)를 가지고 있다. 해야할 말, 하지 말아야 할 말, 조금 더 우아한 말, 저속한 말, 너무 공격적일까 싶어서 조금 우회적으로 표현할 말, 헷갈리게 말하고 싶은 경우. 나에게 존재하는 수많은 한국어필터는 가끔씩 같은 모국어 남자들을 만날 때 걸림돌이 되고는 했다. 조금 더 위선적인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고나 할까. 나는, 우리들은 한국어의 전문가들이니까. 영어는 다르다. 나는 그 뉘앙스의 미묘한 차이라든지 더 상황적합한 단어라든지 하는 것들을 모른다. 내가 외운 단어들 중에서 생각나는 것들을 무작정 말할 뿐이다. 그래서 영어로 말할 때 더 직설적이게 된다. 더 솔직하게 된다. 아직 내 머릿속에는 어떤 말을 할까 선택할 수 있는 필터가 없다. 이런 퓨어한 뇌가 가끔 마음에 든다. 

    발렌타인 데이까지 딱 일주일 전이었다. 나는 그 미국인 메이트를 만났다(이하 그를 ‘제피’라고 하겠다. 물론 이름은 가명이다). 몇 일 전, 제피가 파스타 먹자고 해서 핫하다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예약을 해서 점심에 간단히 만났다. 제피를 다시 만난 것은 여행 후 거의 한달만이었다. 학교 내에서 처음 만나고, 점심을 같이 먹고, 저녁을 같이 먹고, 와인바에서 흥미로운 와인을 같이 마시고, 점심에 간간히 그를 만났다. 저녁에 몇 번 만났고 그와 어쩌다가 잤고 한 두번 싸우기도 하고. 그는 미국에 자주 왔다갔다 했는데, 여자친구나 와이프가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물론 그는 사업차, 그리고 가족과 친구가 보고싶어서라고 했지만). 그가 미국에 2주 이상 떠나있기 전날은 찐한 ‘잠시이별’을 했다. 제피는 외적으로 뛰어난 사람도 아니었지만, 나는 그와 이야기하는 것이 재미있었고 지루할 틈이 없었고 점점 ‘그’가 아닌 ‘그와 함께 있는 시간’에 빠지게 되었다. 

    제피는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나에게 발렌타인 바로 전주의 금요일에 저녁을 함께 먹자고 했다. 그래서 평이 좋은 스페인 레스토랑에서 그를 보았다. 항상 먹는 데 후한 그의 성격답게 먹고싶다는 거 다 주문하고, 와인도 시키고 우리는 그동안 밀렸던 이야기도 하며 갑자기 돈독해졌다. 그는 발렌타인 데이에 날 초대했다. 그리고 락다운 전, 가장 기억에 남는 디너를 선물해주었다. 

꽃 선물은 정말 오랜만이었고,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좋아한다고 무심결에 말했던 꽃집 제인 패커(Jane Packer)를 기억해 준 제피에게 솔직히 감동했다.

    우리가 발렌타인데이를 보낸 것은 ‘the green house’라는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이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발렌타인데이는 런던의 레스토랑에게도 대목이라, 미슐랭이든 아니든 모든 레스토랑은 너도나도 발렌타인 특별 메뉴를 선보인다. 가격도 더블이다. 그래서 나도 오랜만에 좋은 드레스로 갈아입었고, 그것이 한국에서는 하기 힘든 경험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영국이나 미국이나 발렌타인 데이는 정말 특급으로 중요한 날임을 다시 실감한다. 제피는 기분이 좋았는지 스페셜 코스를 주문한 것은 물론이고 와인도 페어링하고 내가 먹어보고 싶다고 하는 와인을 추가로 주문해 주었다. 그는 자기가 최근에 읽었던 심리소설에 대해 이야기해주었고 나는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우리는 정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제한된 시간이 다 되었다길래 울며 겨자먹기로(?) 레스토랑을 나서서는 코노 호텔(connaught hotel)에 있는 바에 가서 한 잔 더 했다. 

    그는 끼가 다분한 남자였다. 미국인 특유의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행동 태도도 한 몫을 했겠지만 그는 나와 있는 도중에도 옆 테이블에 말을 걸고 농담을 하는 것이 몸에 배인 듯한 사람이었다. 그는 진부한 표현과 독창적 표현을 뒤섞어서 여자가 듣기 좋은 말을 잘 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당시 레스토랑 홀에 있던 모든 여자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다고 칭찬해준 그를 기억한다. 그 드레스 핏을 살리기 위해 우리 동네 수선사를 지지고 볶았던 나를 기억한다. 심지어 그 날을 위해 드레스를 세 개나 준비했었다. 또 한번은 나를 좋아하는 이유는 내 '캐릭터' 때문이라고 말한 적도 있는데, 자세한 설명을 곁들이지는 않았다. 어찌되었든 나와 그의 인연은 오래 가지 못했다. 

    발렌타인데이 다음 주부터 코로나-19의 상황은 악화되었다. 대구 집단감염이 터진 한국에 비해 아직 영국은 괜찮은 편이었지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확진자 때문에 한국도 뉴스에 오르내렸고, 동양인에 대한 악감정은 단순한 반감을 넘어 눈에서는 살기마저 느껴지는 때였다. 급기야 3월 초, EU 국가들이 락다운(lockdown)을 먼저 시작했고, 미국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국경봉쇄 발언이 나왔다. 미국인 제피는, 미국에 모든 연고와 재산이 있는 제피는, 무슨 돌발상황이 더 발생하기 전에 미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했다. 트럼프는 자국민까지 막아버릴 수 있는 예측불가 인물이라서 자기는 내일 당장이라도 미국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그가 떠나기 바로 당일 오후, 우리 학교 메인 빌딩이었다. 우리는 작별 키스를 했고 그는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했고 나는 기다리겠다고 했다. 그 때는 별 생각이 없었다. 그 락다운이라는 것이 그렇게 오래 갈 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날, 런던스럽게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Connaught hotel 앞. 지금 생각하면 불안한 분위기였다. 어찌될지 모르는 앞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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