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하지 않은 손님

by 여록

일요일이다.

이틀동안 서울을 다녀오느라 몸이 무거워졌다.

6월로 바뀐 줄도 몰랐다.

친구의 블로그 제목을 보고서야 5월이 지났다는 걸 알았다.


아침 6시에 화장실을 가기 위해 깼을 때 꾸리가 꼬리를 흔들며 나가자고 한다.

-엄마 피곤하니까 한시간만 더 자고 나올게.

라고 말하고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꾸리가 짖는 소리에 다시 잠을 깼다.

벌써 두 시간이나 지나 8시를 넘고 있었다. 꾸리에게 미안해 허둥지둥 옷을 갈아 입고 아침산책에 나섰다.


같은 마을에서 혼자 살고 계신 노모의 집까지 1.5km 정도다. 왕복 3킬로미터라서 아침과 저녁에 다녀오면 하루 목표 걸음인 만보를 거의 달성할 수 있다.


어머니는 요즘들어 바빠진 나에게 못내 서운한 모양이다. 어쩌다 하루라도 안부가 빠지면 나의 효심에 금이 간 건 아닌가 걱정을 한다.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자식들에게 얼토당토 않은 억지를 쓰는 어머니에게 화를 낼 수는 없다.

나이를 먹을수록 아이가 되어간다는 걸 나는 부모님을 통해 생생하게 경험한다. 부모님의 늙음은 내가 어떻게 나이 들어 갈 것인가에 대한 시금석이 되어 준다. 늙을수록 '나'를 더 단단히 잡아 가야 한다.


어머니는 마당 둑에 텃밭처럼 채소를 키우고 있다. 우리들의 아침식사 거리로 상추, 봄동, 치커리, 쑥갓, 딸기, 오이, 그리고 이름을 모르는 채소들도 있다.

아침 산책마다 꾸리와 빈손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는 한손에 채소를 한가득 담은 종이가방을 들고 온다.

산책은 한 시간 조금 더 걸렸다. 허리가 아프다는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우리와 함께 냇가 산책을 했다.


아침에 따 온 채소들로 언니가 브런치를 준비하는 동안 나는 정원의 풀을 뽑는다. 아침마다 잔디의 풀을 뽑으며 생각에 잠길 수 있어 좋아하는 시간이다.


오늘도 꾸리는 먹기 싫은 사료는 옆으로 뱉어내며 사료에 섞인 간식만 골라 먹는다. 꾸리의 식습관이 나날이 진화하고 있어 골머리가 아프다.


브런치를 먹고 나면 11시가 된다. 오전 시간의 루틴이다.


오늘은 하자보수를 해야하는 본 집의 짐빼기를 마무리 해야만 한다.

빨래를 돌려 놓고 짐을 날랐다.


금방 배가 고파진다.

언니와 바닷가로 가서 물회를 먹었다.

회가 얼마나 많이 들어 있는지 먹어도 먹어도 젓가락 낚싯대에 생선의 살덩이가 계속 올라 온다.

반쯤 먹으니 팔뚝에 소름이 올라 왔다. 물회의 차가움이 온몸을 얼게 만들고 있었다.

비싼 것만 빼고 완전 만족스럽게 먹은 점심이었다.

디저트는 언니가 좋아하는 맛의 커피를 먹을 수 있는 카페를 갔다.

사실은 이 카페를 가고 싶어서 물회를 먹으러 온 거다.

카페에서의 사치도 끝내고 콜드플레이의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며 기분 좋게 운전을 한 귀가길.

시골의 모든 풍경이 아름다웠다.


집에 돌아오니 4시 쯤이었다.

뜨거운 오후라서 그늘 아래 의자에 누워 책을 읽었다. 언니는 잔디를 깎는다. 차안을 좋아하는 꾸리는 외출에서 돌아와도 내릴 줄을 모른다.


흐뭇한 마음으로 책을 겨우 50페이지나 읽었을까.

하얀 차가 한 대 골목으로 들어서고 꾸리가 사정없이 짖는다.

누가 길을 잘못 들어섰나,,,

언니와 내가 동시에 내다 보았다.

그때 울리는 전화벨.

-여록, 어디예요? 지금 집에 있어요?

-네, 집이에요. 설마 지금 저 하얀 차가??

-네, 맞아요. 우리가 갑자기 왔어. 연락도 없이 와서 미안해요.

사모님의 앳된 목소리였다.


맙소사!! 호주에서 2주간 방문을 하신 은사님 부부가 아닌가.

너무나도 뜻밖이라 허둥지둥.

두 시간 기차를 타고 와서 렌트카로 우리집을 방문하신 거다.

한 시간도 안되는 짧은 만남을 위하여 한국에서의 귀한 5시간 이상을 쓰시다니..

정신없이 커피를 내리고 횡설수설 수다를 떨고, 손님들이 가시고 난 다음에야 소중한 인연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은사님과 22년 동안의 이야기는 언젠가 글로 쓰게 되겠지.

오늘은 너무나도 감사한,

그렇게 방문을 해 줌으로써 나를 얼마나 귀히 대해 주시는가에 대한 감사의 마음만 남기기로 하자.


손님들이 가시고 난 후 꾸리와 저녁산책을 했다. 어머니는 저녁상을 차렸다며 밥을 먹고 가라고 한다. 농사를 돕는 막내동생이 먼저 밥을 먹고 제 집으로 간다. 오늘따라 꾸리에게 친절한 동생이다.


어머니의 밥상은 우리 입맛에 맞지는 않지만 함께 드시기를 원하기에 가끔 어머니와 식사를 한다. 어제 서울에서 내려올 때 백화점에 들러 어머니의 여름옷을 한 벌 사다 드렸다. 그 때문인지 어머니는 오늘 유독 기분이 좋아 보인다. 자식에게 대우 받고 있다는 마음이 드나 보다.

한 달 넘게 전하 한 통 없는 맏며느리 얘길 꺼내서 우리에게 타박을 들으면서도 어머니는 삐지지 않았다.


6월의 첫날은 더 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꽉 찬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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