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을 돌아보다

by 여록

2024년의 마지막 날 언니와 "올해처럼 힘든 한 해는 다시는 없겠지."라는 대화를 나눴었다. 2023년에 이어 2024년에 생각지도 못했던 혹독한 일들이 많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5년을 살아보니 2024년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침식사를 하며 언니와 작년과 같은 대화를 나누며 공감을 했다.

"2025년처럼 끔찍한 해는 더 이상 없을 거야. 그래도 사람은 차암 대단하다. 그걸 다 살아내네."


2025년 1월

작년에 이어 강아지가 2주마다 아프다. 병원에서도 뾰족한 수가 없다하니 먹는 걸 조절하고 산책길에서 유박이나 농약을 못 핥도록 조심시야 한다.

민박을 오픈하기로 했기에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다.

그동안 맡았던 보직으로부터 해방되어 날아갈 것 같다.


2025년 2월

여전히 강아지는 아프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아픈 강아지를 안고 함께 울어주는 일이다.

발리로 여행을 다녀온 것이 한 달의 기쁨이자, 한 해의 즐거움이었다.

작년에 신청한 평가 활동이 본격화되어 한 달에 2번 정도 다른 지역으로 출장을 다녀오게 되었다.

부산, 속초, 제천.... 전국권으로 다닌다.


2025년 3월

대학교 시절의 절친이었던 친구의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친구와 그의 가족들은 싱가폴에서 급히 귀국했다. 나이를 먹고 보니 '바른생활'이어서 답답했던 친구가 얼마나 멋있는 사람인가를 알게 된다.

결혼 후 미국에서 살고 있는 친구가 한 달의 휴가를 받아 왔다. 마흔살에 운명을 달리한 친구를 보낸 후 유일한 죽마고우다. 친구들와의 시간이 휴식같다.

위태로운 직장생활이다. 자괴감만 든다.


2025년 4월

민박 개업이 쉽지 않다. 생각지도 않았던 수리비용도 많이 들어간다.

와중에도 공연을 비롯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마음이 자꾸만 초조해진다. 몇 년 전부터 공황증상이 나타났는데 점점 심해지고 있다.

1년 전에 지은 집에 물이 터졌다.


2025년 5월

끔찍한 달이다. 집은 새로 지어야 하는 사태까지 왔다.

누구의 설득도 와 닿지가 않았다. 무조건 새로 지어야만 한다!

공황증은 우울증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신경쇠약에 걸려가고 있는 듯도 하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듯 해야 하는 것 또한 힘들었다.


2025년 6월

강아지는 더 자주 아프다. 내가 아프면 강아지가 아프고 강아지가 아프면 나도 아파지는 건가.

직장의 일이 하기 싫어서 양심에 거리껴도 건성으로 할 수 밖에 없다. 제발 올해가 빨리 지나가기를..

민박 오픈하기를 잘했다. 덕분에 집수리를 하는 동안 편하게 머물 곳이 있으니 말이다.

마을활동을 하기 위해 이런 저런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퇴직 후를 준비해야 한다.

언니, 조카와 일본여행을 다녀왔다. 조카가 결혼하기 전에 함께 보내는 마지막 시간이다. 재미도 있었고 의미도 있었다.


2025년 7월

사랑하는 친구의 아버님이 갑자기 돌아가셨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 젊은 친구는 이 고난을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친구를 믿어본다.

집의 하자보수가 끝이나 새로 입주를 했다. 2년 동아 이사를 몇 번 다녔는가. 에너지는 한정적인데 늙어가는 몸이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반복된다.

결국 우울감과 분노가 참을 수 없는 지경까지 왔다. 병원에 갔다. MRI를 찍은 결과 신체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으니 정신과로 가라고 한다. 정신과에서는 '중증우울'이라는 진단을 내린다. 우울증 약을 먹기 시작했다.


2025년 8월

오직 시간이 빨리 가기만을 바란다. 그래서 바쁜 스케줄 속에 나를 밀어 넣는다.

근무시간 외에 진행되는 문화 및 교육프로그램을 5개나 신청했다. 그냥 정신없이 살고 싶다. 바빠야 시간이 빨리 지나가리라.


2025년 9월

직장에는 더이상 미련이 없다. 그럼에도 일거리가 주어지면 '예스'가 먼저 튀어 나온다. 일을 받고 나서야 후회를 한다. 왜 거절하지 못하고 하기 싫은 일을 잡고 짜증만 내고 있나. 그런 자신을 또 한심하게 생각하니 악순환이 계속된다. 약의 부작용인지 다리나 팔에 이상한 감각이 생기고 몽유병처럼 밤에 집안을 서성거린다. 약은 약대로 문제가 있어 괴롭다.


2025년 10월

삶의 방향을 틀어보고자 시작하겠다고 장담했던 일의 진행이 우울증과 겹쳐 처참한 결과를 낳았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추석연휴 기간 내내 나 자신을 완전히 리셋하는 시간을 가졌다.

"대충 살아서는 안된다."

사는 날까지는 작은 일에도 진정성있게 다가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덕분에 처참했던 일을 만회시킬 수 있었다. 전화위복의 기회는 새로운 삶의 의지를 주었다.

우울증 약의 부작용을 견딜 수 없어 당분간 약을 끊어보기로 했다. 의사는 "반드시 6개월 이내에 재발 할 것이고 그때는 더 심각해진다."고 말했지만 정신력으로 정신병을 이겨보기로 했다.

가족들의 지지가 필요했다.


2025년 11월

몸을 바쁘게 돌리기 위해 펼쳐 놓았던 일들이 하나씩 끝이 나고 있었다. 직장의 행정업무가 너무나도 미숙하고 착오가 많아서 내 일이 아닌 부분에서도 내가 고통받아야 했다. 진절머리나는 직장이다. 그저 빨리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든다.

우울증 약 복용을 중단하고 제법 잘 지내고 있다.

퇴직 후를 위한 마음가짐을 단단히 다진다.


2025년 12월

드디어 2025년이 끝난다.

강아지는 성장하면서 병이 자연치유 되고 있는지 지난 달부터 증상이 확연히 줄었다. 대견한 녀석.

직장에 얽힌 일들 때문에 괴로운 경우가 몇 번 있었지만 어제인 12월 30일이 되어서야 다~~아 끝이 났다. 너무나도 홀가분하다.

직장의 상황이 당장 내가 퇴직을 하는 게 예의가 아님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젊은 친구들이 나에게 현 직장에서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며 함께 추진해보자고 한다.

시간이 약인가. 언제라도 쓸 수 있는 사직원을 받아 놓고 보니 오히려 아무때나 그만 들 수 있다는 전제가 마음을 가볍게 한다.

가슴에 사직서를 품고 다니는 사람들이 오히려 직장의 만족도가 높다는 이야기를 얼마 전에 들었는데 그 속에 나도 포함이 되는 걸 경험한다.


12월 31일.

2025년은 끝이 났다.

지긋지긋한 괴로움에서도 벗어났다.

2026년에 더 큰 고통이 올지라도 2025년이 끝났다는 사실이 현재로서는 가장 중요하다.

기쁜 마음으로 내일을 맞이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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