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는 우리나라의 자살률!
특히 청소년들의 안타까운 선택을 접할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청소년들의 안타까운 선택을 보면서
늘 생각한다.
청소년에게 선택지를 다양하게 제공하는 사회 분위기를 형성해야 산다고!!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학교라는 답이 없는 현실에 매몰되어 있다.
매몰된 학교는 우물이나 다름없다.
이런 현실에서 성장하는 학생들은 우물 안 개구리 신세이다.
성장은 할 수 있을 지라도 성숙은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우물 안 개구리들은 그 우물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안다.
하지만 우물 밖의 세상은 다양하다.
갑자기 우물 밖으로 내던져지더라도 개구리들은 세상의 다양성을 보지 못한다.
푸른 청소년들이 다양함에 눈을 뜨게 하려면
다양한 환경에서 자라게 해야 한다.
다양한 환경에 소속되어야 학교를 인생의 전부라고 여기는 오류에서 벗어난다.
학교를 전부라고 여기는 마음은 치명적이다.
가까운 과거에는 마을이라는 공동체가 존재했다.
이 마을 공동체는 학교를 능가하는 힘이 있었다.
이제 마을 공동체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얼마든지 가벼운 집단은 존재한다.
교회, 도서관, 동물보호단체, 학교 밖 청소년단체, 자원봉사단체, 자원봉사 협력체 ...
어느 곳이라도 가볍게 발만 담그고 살아도
학교에 인생 전부를 걸지는 않는다.
학교는 최고의 가치가 아니다.
이미 학교에는 답이 없다.
학교에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세상을 잃은 상실감에 빠지는 것은
학교에 중심을 둔 사회 구조 때문이다.
다양한 선택지가 요소요소에 가득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박완서 작가의 '옥상의 민들레꽃' 에는
죽으려던 아이가 민들레꽃 한 송이를 보며
옥상에서 내려온다.
옥상이라는 갈라진 시멘트 틈에서 꽃을 피운 민들레꽃을 보며
살아겠다는 의지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