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은 특이한 외도였다

우리나라는 주말부부를

전생에 나라를 구한 업적이 있는 부부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한다.

나도 상당히 공감했었다.

20년 이상을 함께 살아온 배우자가 가끔 집에 들어오지 않을 때

묘한 자유와 재미가 있었다.

"아싸 아빠 없다"라고 톡을 하면 딸들이 자동으로

치킨, 와플, 커피, 맥주 등을 배달시켜주었다.

나홀로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뒹굴명 책을 읽었다. 뒹굴뒹굴...

나홀로 축제를 즐겼다.

뿐만 아니라 1년은 힘든 일이 생겨 밤잠을 설치며 혼자 해결하려고 발버둥치며 시간도 있었다.

그 시간에도 남편은 밭에서 동네 축제를 즐겼다.

남편은 혼자서의 농막 생활이 즐거웠는지

대화가 꼬이고 뭔가 이상할 일들이 생겼다.

그것마저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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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의 나홀로 축제에 서막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나는 나홀로 축제였고

남편은 밭에서 온동네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나는 '일과 나홀로 축제'로 은둔자가 되어갔고

남편은 온동네 축제로 무한 개방자가 되어갔다.

내향성이 강한 나,

외향성이 강한 남자가 만나서 서로를 보완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3년의 주말부부 (5일 부부)로 살며

대화가 따로따로 겉돌기 시작했다.

원래 크게 바라는 것도 없었지만 그 작은 바람도

남편은 온동네 축제를 우선시 하게 되었다.

나는 은둔형이 두드러져서

일에 더 집중하게 되었고, 이유없는 만남과 모임은 더 멀어졌다.

반대로 남편은 이유없는 만남과 모임이 확장되었다.

나는 이유없는 만남과 모임을 의미없다고 여기는 성향이어서

이에 맞추어 살아오던 남편이었다.

20년동안 자제했던 남편의 둑은 3년만에 무너져있었다.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우연히 본 밭에서의 남편은

마치 처음 본 사람처럼 낯설었다.

그후 밭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남편만의 세계가 생긴 것은 분명히 느껴졌다.


밭에 컨테이너 농막을 설치하며

도시의 복잡한 일상을 잠시라도 덜어내는 공간으로 삼고자 했던 의미는 퇴색되고 변질되었다.

남편은 아예 이 의미를 잊었다.

담이 없고 초인종도 없는 밭은 아무나 드나들어 도시보다 난잡해졌다.

밭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은밀한 목적이 있었고, 남편은 이 목적을 눈치 채지 못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이끌렸던 이 '다름'은 설레임이었다.

하지만 부부로 살다가 다시 보게 된 이 '다름'은 '이질감' 그 자체였다.

탈선한 낡은 기차처럼 너절했다.

남편의 세상인 밭에 드나드는

이장, 부녀회장, 보험아줌마, 골통품 아줌마 등의 시골 사람들은

이미 시골스러움이 없었다. 시골 사람도 도시 사람도 아닌 제3세계의 사람들이었다.

이익에 눈이 멀었고, 뻔뻔스러웠고 물란했다.

가끔 밭에 갔을 때, 저녁 나절에 어떤 할매도 아니고 아줌마도 아닌 여자가

3번이나 나와 마주쳤다.

3번째로 마주치자 "무슨 볼 일로 오셨냐?"고 인사했다.

그 다음 날 남편에게 그 할매아줌마의 연락처를 물어서 정중하게 내뜻을 전했다.

"저녁에 남자만 혼자있는 산골 농막 방문을 자제하시길 바랍니다.

동네 사람들의 이목도 있고

세상은 흉흉합니다.

내 남편도 믿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 문자를 받은 할매아줌마는 기분나쁘다고 나에게 쌍욕을 퍼붓고,

기분 나쁘게 자기를 의심했다고 경찰을 운운하며 반말과 쌍욕을 거하게 퍼부었다.

이것이 제3세계 주민의 태도였다. 상대할 가치도 없었다.


이런 생활을 즐기는 남편이 더이상 배우자로 보이지 않았다.

혼란을 겪으며 저번 주에 방영된 '동치미'의 '국제부부' 편을 시청했다.

한 국제부부가 미국에는 주말부부라는 말이 없다고 한다.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부부가 다른 생활을 즐기며 결핍을 느끼지 못하거나

다른 곳에서 결핍을 채우는 것은 부부 생활을 지속하기 어려운 사유가 된다는

의미고 느껴졌다.

민법에서 말하는 외도가 아니더라도 외도다.

이미 젊은 몸이 없는 중년 부부의 '다름'은 설렘이 아니라 '다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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