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는 카스트제도 있어서 신분 차별이 확실했던 나라이다.
신분제도에도 속하지 못했던 불가촉천민이 존재했지만
그들은 결코 노여움을 겉으로 표출하지 않았다.
류시화 작가의 작품에는 인도의 천한 신분의 사람들로부터 얻은 감동이 주를 이룬다.
인력거꾼이 '노프라브럼'을 외치며 즐겁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인도에서 그가 만난 인력거꾼은
높은 신분의 사람에게 뺨을 맞아도 '노프라브럼'
인력거 삯을 적게 받아도 '노프라브럼'을 한번 외치면 그만이다.
인력거꾼이 하루는 늦게 도착했다.
작가가 화를 내며 삯을 반만 주겠다고 말했다.
그래도 그는 '노프라브럼'이라고 응답했다. 그 후에 한 마디 더 보탰다.
작가는 순간 삯을 반만 내면 당장 마음이 편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후회하게 될거라는 생각이 스쳤다.
지금 당장 형편이 어려워서 누군가에게 비용을 적게 들일 때가 있다.
특히 결혼식, 장례식의 부조를 하고나서 평생 후회가 될 때가 있다.
'좀 더 보태줄걸.'
자주보는 지인의 길흉사에 참석을 하지 않거나 부조를 하지 않았을 때
영원한 짐으로 남기도 한다.
영원히 마음이 편할 지출,
영원히 마음이 편할 베품.
금전적인 사정과 마음의 형편이 일치하지는 않을 때가 많다.
지나간 오래된 과거에 현금서비스를 받아서 누군가의 병원을 찾은 적이 있다.
그의 어린 자식이 심장수술을 하였다.
심장수술이라는 병명을 듣기만 해도 마음이 아팠다.
백병원의 중환자실에 있다는 말만 들어도 마음이 아파서 견딜 수 없었다.
내 마음이 편하려고 현금서비스를 받아서 건넸다.
아직도 그 금액에 준하는 감사의 인사를 듣지도 못했고
인연도 멀어졌다.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서운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 지출은 영원히 기분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이 지출은 생각만 해도 나의 심장이 안정적으로 팔딱거리는 에너지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