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 위로 달빛이 부서지는 밤, 강줄기 따라 노인 하나 노 저어 오는 것을 보았다. 저만치 곰나루에 닻을 내리고 반짝이는 등불을 향해 걸어가는 노인의 등 뒤로 출렁이며 강물이 흐르고, 흐드러지게 휘어진 솔밭 사이로 강바람은 몰려가서 음울한 별리別離 노래를 연신 부르고 있었다. 역사의 밤을 가르며 강물이 흐르고 소중히 고동치는 심장을 향해 전설의 영웅들은 강물에 승리의 칼을 간다. 그대가 이름 모를 고지에서 밀려드는 적들에게 기관총을 난사할 때….
1. 한성 백제의 멸망
역사의 수레바퀴가 돌던 밤
장수왕은 한강을 건너
위례성을 포위했다.
30만 대군은 창을 들고 성을 공격하고
불화살은 쉴새 없이 날아들어
성안은 온통 아수라장이었다
선왕 개로왕은 왕자와 신하들을 피하게 하고
진영을 정돈하여 적을 맞아 싸우다 전사
성은 함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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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밤이 걷힐 때
가련한 백성들과 왕족들은
남으로 남으로
새 땅 새 하늘 찾아
가는 거다.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복수의 그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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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일을 걸려 산을 넘고 들을 지나
내려 온 지친 행렬들
보인다.
새 땅이, 푸른 들판이
비단으로 수놓은 강이 흐르고….
그대의 왕명은 문주文主
금강이라 하리라
강은 흐르고, 어제같이 흐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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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두 아이
청벽靑壁을 돌아 흘러내리는 물살
공산성 백사장에 머물면
꼴 베던 두 아이, 돌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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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기 끌던 웅진 터밭 흙냄새
쌍수雙樹 휘어진 가지 위
새벽안개로 흘러
천 오백 년 이어 온 백제의 향기
바스라이 낙엽에 쌓인다.
해상의 무적 동성東成함대
서해를 흉용洶湧하고
야망의 투사들
중원대륙을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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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가고 무너진 성벽 사이로
들풀 돋는 곳
행여 발에 닿는 부서진 성문 조각들
이끼 낀 왕궁터
흐르는 금강
곰나루 전설 실은 사공의 가락에
하나둘 늘어만 가는 무명 묘비
어허라. 백발아, 위용 없는 장군처럼 늘어만 가도
천년을 더불어 황혼을 낚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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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미산 지네골 돌아 흘러내리는
차가운 물살
금강 백사장에 머물면
꼴 베던 두 아이, 돌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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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동학 농민 전쟁
1894년 시월
동학군은 공주감영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외세를 몰아내고 민중을 위한
태평성대 꿈꾸어
흰 옷자락 나부끼며 뛰어오르던 수많은 농민은
우금티 고개에 쓰러지고
한양 진군의 꿈은 스러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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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하늘
용광로 불길 속으로
사방팔방에서 무수히 던져진 농민의 꽃다발은
영원의 강물 되어 피로 물들어 흐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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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白花 요란한 하늘 밭 위에
용감하게 던져진 젊음을
역사는 돌아보지 않았다.
피를 머금은 금강만이
그들의 넋을 달래가며 흐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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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역사의 그날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박제된 양심으로 살아가는 강촌에 밤이 오면 갈대만이 서로 몸 비벼대며 울어대고 풀벌레 요란히 긴 밤을 진군해 넘어오는 여명黎明의 새벽 노래를 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