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주의 시에 대하여
해설
- 권태주의 시에 대하여
김종회(문학평론가, 전 경희대 교수)
1. 권태주의 시와 언어의 변증법
권태주 시인은 한국시인협회와 교원문학회 회원이며, 계간 문예지 《우리문학》의 발행인이자 우리문학회의 회장이다. 필자가 《우리문학》의 고문을 맡고 있는 연유로, 그의 활동 범주와 품성을 익히 알고 있는 편이며 늘 그 노력과 수고에 대한 존경의 념을 품고 있다. 그는 일찍이 1993년 《충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됨으로써 문인의 길로 들어섰다. 그동안 『시인과 어머니』를 비롯하여 다섯 권의 시집을 상재(上梓)했으며 허균문학상, 한반도문학상, 성호문학상 대상 등의 문학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다. 그가 운영하는 문예지와 문학 모임은 소박하고 조촐하게 출발하였으나, 사뭇 품위 있고 내연(內燃)하는 열정으로 넘치고 있다. 이 복잡다단한 시대에 맑고 밝은 문학의 샘물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그는 시집의 서두 〈시인의 말〉에서 가스통 바슐라르의 논리를 빌려 시를 하나의 건축물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를 ‘위대한 작업’이라 지칭하고 있다. 당초에 글쓰기라는 작업 자체가 언어의 건축물이라 치부해도 문제가 없을 만큼, 글쓰기와 건축은 그 재료의 구성과 궁극적 완성의 단계가 닮아있다. 권태주가 특히 바슐라르의 논리에 주목한 것은, 시가 곡진(曲盡)한 상상력의 산물이라는 대목과 관련이 있다. 그는 이 선명한 출발점에서 ‘감정의 유희(遊戲)가 아닌 인류 보편적이며 항구적인 정서를 담아내는 시’를 쓰겠다고 한다. 실제로 이 시집의 1부에서 4부까지 수록된 시들을 면밀하게 살펴보면, 이러한 명제에 잇대어져 있는 그의 시작(詩作) 방향성을 어렵지 않게 감각 할 수 있다.
2. ‘내 인생’의 여러 계절 또는 사랑
인생의 여러 국면을 계절에 비추어 논의하기로는, 수발(秀拔)한 많은 이론가의 정의와 많은 문호(文豪)의 작품이 있다. 계절의 변화와 굴절이 우리가 감당하는 인생사의 그것과 여러모로 닮은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기서 공들여 살펴보려는 권태주의 시 또한 그와 같다. 그는 1부 〈내 인생에게 묻는다〉에서 인생 계절의 구체적인 형상을 적시(摘示)하면서, 그 가운데 명멸하는 일상적인 삶과 사랑의 여러 면모를 그려낸다. 그리고 그 형상화의 모습은 진솔하고 진정성이 있다. 「판단」에서 말하는 목적대로 살아가는 삶, 「문득」에서 보여주는 눈부신 가을 아침의 마음, 「서귀포 올레길을 걸으며」의 그리운 사랑 이야기, 「가을」의 낙엽들이 전하는 슬픔과 아픔 등이 모두 그렇다.
가을이 오기 전에
풀잎들은 부지런히
광합성을 하고
속 깊은 열매를 키웁니다
나도 그러하겠습니다
내 인생의 가을이 오기 전에
부지런히 살아내며
아름다운 삶의 열매를
차곡차곡 가꾸어 가겠습니다
- 「내 인생에게 묻는다」 부분
시인이 자기 인생에게 제시하는 질문의 가장 핵심적인 요체는 과연 무엇일까. 이 시에서 시인은 이를 식물의 생장(生長)과 과실(果實)에 비추어 언술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시한은 특히 ‘가을이 오기 전에’다. 풀잎들의 광합성과 속 깊은 열매가 그 가을까지의 노력에 의한 것이라 여기는 까닭에서다. 시인은 스스로도 부지런히 살아내며 삶의 아름다운 열매를 가꾸겠다고 다짐한다. 인간의 건실한 의지에 바탕을 둔, 기껍고 흔연한 순방향의 결의다. 이처럼 건강한 삶의 인식은 그대로 독자에게 전염되는 강점이 있다.
누가 사랑의 흔적들을 남겨 놓았나
붉디붉은 꽃잎 속에 숨겨 둔 사랑
사랑 이후 아픈 기억만 남아
외롭게 흔들리는 꽃
가끔 꽃가루 찾아 날아온 꿀벌
온몸을 적시다 가고 나면
저 혼자 그리움에 가슴 타는
슬픈 사랑이여
- 「접시꽃」 전문
시인이 자신의 생애 가운데 가장 소중한 개념으로 내세운 것이 곧 ‘사랑’이 아닐까. 이 시집에 등장하는 사랑의 주변을 유추해 보면 그렇게 여겨지는 것이 별반 이상하지 않다. 시인은 인용된 시에서 누군가가 붉디붉은 접시꽃의 꽃잎 속에 사랑을 숨겨 두었다고 언표(言表)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아픈 기억으로 외롭게 흔들린다고 관찰했다. 프랑스의 시인 아르튀르 랭보가 “계절이여 마을이여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는가”라고 노래했지만, 아픈 기억이 없는 꽃이나 사랑 또한 존재하기 어렵다. 가끔 꽃가루 찾아온 꿀벌이 떠나고 나면, 더 가슴 타는 슬픈 사랑의 꽃! 시인의 인생 계절에 하나의 예표가 되는 꽃, 접시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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