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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훈 Jan 19. 2023

상대평가의 늪에 빠진 한국교육

제3장 초중고 교육개혁이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 -3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는 엄밀히 말하면 평가의 문제이다. 시험을 잘 치는 것이 공부의 목적이 되어 버렸고, 대학 입시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한 경쟁이 학교 교육의 정상적인 운영에 지장을 주고 있다. 시험은 자신이 공부한 것을 얼마나 이해했는지 파악하고 더 발전하기 위한 수단이어야 하는데,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는 것이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 버린 상황, 즉 시험이라는 꼬리가 공부라는 몸통을 흔들고 있는 형국이다.


평가의 문제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부분 상대평가 체제에서 나오는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상대평가 체제에서는 시험 점수가 몇 점인지보다는 전체에서 몇 등인지가 중요하고 상위 일정 등수 안에 들어야 자신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그러니 과도한 학습량과 극심한 경쟁을 피할 수 없다.


교육학에서는 평가의 종류를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한다. 흔히 상대평가라 부르는 규준참조평가에서는 시험 결과의 상대적인 서열을 중요시하고, 절대평가라고 불리는 준거참조평가는 학습 내용을 일정 수준 이상 이해했는지를 강조한다. 그 외에 학생이 자신이 가진 능력에 비해 어느 만큼 능력 발휘를 했는지 평가하는 능력참조평가, 그리고 학습하기 전보다 학습한 이후 얼마나 성장이 이루어졌는지를 평가하는 성장참조평가가 있다. 네 가지 평가를 표로 정리하면 <표3-6>(각주1)과 같다.      


표3-6 네 가지 평가 유형 비교                    

자료: 성태제(2009). 교육평가의 기초. 학지사. 표 수정.     


같은 시험을 치른 전체 수험자의 점수 분포를 규준(norm)이라 하는데, 상대평가는 그 규준에 비추어 자신의 상대적 서열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보는 평가이다. 다시 말해 그 학생이 몇 점을 받았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전체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대신 절대평가는 그 학생이 공부 내용을 잘 이해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 즉 준거에 도달했는지를 평가한다. 그렇기 때문에 <표3-6>에서 보듯, 상대평가는 분류와 배치 등 행정적 기능에 유리하고 절대평가는 교수적 기능, 즉 교육적 의미가 중심이 된다.


우리나라 내신과 수능에서 사용되는 상대평가 9등급제는 규준점수 중에서 스테나인(stanine)이라 불리는 9개의 범주를 가진 표준점수를 활용한 것이다. 스테나인 점수는 자신의 상대 등급을 한 자리 숫자로 나타내 준다. 상대평가 9등급제의 비율 구분은 <표3-7>과 같다.      

표3-7 상대평가 9등급제 등급비율                    


교육적으로 보면 일정 수준의 기준에 도달했는지 확인하고 도달하지 못한 학생이 있으면 보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절대평가가 더 바람직한 평가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누가 더 공부를 잘하는지, 누가 상위권 대학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지를 가리는 데 모든 관심이 집중된다. 그래서 더 높은 상대평가 등급에 들어가기 위해 혹독한 경쟁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상대평가 체제는 기본적으로 경쟁을 부추기게 되는 점 외에도 여러 문제를 양산한다. 먼저 학교 시험에서 1등급을 만들어 내기 위해 고난도 문제를 출제하게 만든다. <표3-7>을 보면 1등급의 비율이 4%로 되어 있다. 그런데 해당 시험을 본 학생 중 만점자가 4%를 초과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 학생들은 다같이 2등급을 받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 그렇게 되면 누구도 1등급을 못 받게 되어 입시에 불리하게 되므로 일선 학교에서는 어려운 문제를 출제해서라도 4% 이내의 학생이 1등급을 받도록 조정하고 있다. 또 과목을 개설할 때도 1등급 비율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과목별 석차등급을 산출할 때 수강자수와 등급별 비율을 곱하여 반올림한 값으로 등급별 인원을 정한다. 그러므로 고교학점제 등에서 다양한 과목을 개설할 때 수강 인원이 13명을 넘지 않으면 그 과목은 1등급을 받는 학생이 없게 된다. 이는 학교 입장에서나 학생 입장에서나 소인수 과목을 기피하는 원인이 된다.


상대평가 체제는 수행평가에도 제약을 가져온다. 수행평가는 지필평가 비 위주의 획일적 수업을 다양한 학생 참여 중심 수업과 평가로 바꾸는 의미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수행평가는 교사의 정성적인 평가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입시 준비에 민감해져 있는 학생들로부터 공정하지 못하다는 이의제기를 많이 받게 된다. 그래서 고등학교 교사들의 경우 수행평가를 양적으로 측정하기 좋은 방식으로 범위를 좁혀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도 절대평가 체제라면 학생들은 자신이 기준을 충족했는지에 집중하고 다른 학생의 평가에 크게 민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결국 수행평가가 제대로 운영되는 데도 상대평가 체제가 지장을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상대평가 체제는 성취평가제의 적용도 가로막고 있다. 성취평가제는 상대평가 체제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교육부에서 2011년부터 추진한 제도로서, 학생의 성취도에 따라 6단계로 성적으로 표시하는 일종의 절대평가적 평가체제이다. 교육부는 성취도를 어떻게 정할지 예시를 제시하고(표3-8)(각주2), 생활기록부의 기록방식도 제시(그림3-3)(각주3)했다.


표3-8 성취도별 정의 및 성취율(예시)

자료: 교육부(2011). 중등학교 학사관리 선진화 방안.     


그림3-3 고등학교 성취평가제 생활기록부 기록방식    

자료: 교육부(2011). 중등학교 학사관리 선진화 방안.     


2011년에 성취평가제 추진을 발표하면서 교육부는 시범운영을 거쳐 2014년부터는 석차 등급을 삭제하고 성취도만 기록하겠다는 일정을 밝혔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계획은 실현되지 않고 있다. 내신에서 석차 등급을 없앴을 경우 입시 자료로서 내신성적이 변별력을 잃을 것에 대한 우려 때문에 계속해서 시행을 연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한국교육은 상대평가의 늪에 빠져 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상대평가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수업과 평가의 개선 방향이 다 나와 있는데도 대학 입시를 위한 변별력을 갖춰야 한다는 제약 때문에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대학서열화가 대폭 완화되어야 해결이 가능하다. 대학서열이 해소되어 입시 점수에서 치밀하게 변별을 해야 할 필요가 줄어들 때라야 절대평가를 받아들일 사회적 여건이 마련될 것이기 때문이다.


각주

1) 성태제(2009). 교육평가의 기초. 학지사. p.82.

2) 교육부(2011). 중등학교 학사관리 선진화 방안. p.6.

3) 교육부(2011). 위의 자료.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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