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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훈 Feb 09. 2023

대학 네트워크에서 원치 않는 대학에 배정된다면?

제6장 첫 번째 핵심 요소: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 구성 -3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가 대학서열 해소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학생 배정 과정이 순탄하게 진행되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이 부분이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의 성패를 좌우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같은 성적 기준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네트워크라고 해도, 현재의 서열이 높은 대학, 그리고 서울·수도권에 있는 대학이 선호될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수도권 선호 현상을 극복하는 일은 녹녹지 않은 일이다. 우선 우리나라 인구의 거의 절반이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다. 또한 한국 사회 전반의 서울 집중화 정도는 매우 심해서 서울에 사는 것 자체가 스펙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직업의 종류와 개수는 물론 그 직업을 준비하는 인프라도 서울이 압도적으로 잘 갖춰져 있다. 그러니 수도권에 거주하는 학생은 지방으로 내려가는 것을 일종의 실패로 여기고 지방의 학생들은 서울·수도권으로 진학하는 것을 성공으로 여기는 것이 현실이다.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는 물론 학생의 지망 순서를 고려하지만 일부 대학에 대한 선호가 쏠릴 경우 추첨 배정을 통해 원치 않는 대학에 배정받는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원치 않는 대학에 배정될 경우, 예를 들어 수도권 거주 학생이 지방 소재 대학에 배정됐을 경우, 또 현시점에서 대학서열이 낮은 대학에 배정되었을 경우, 학생들이 배정 결과를 받아들이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네트워크 대학에서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다. 교육 여건이 좋다고 널리 알려져 있는 포항공대는 지방에 있지만 지방대로 불리지 않는다. 또한 4곳의 과학기술원들, 즉 대전에 있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광주광역시에 있는 광주과학기술원(GIST), 대구에 있는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울산에 있는 울산과학기술원(UNIST)은 모두 지방에 있지만 최고의 교육 여건을 제공하고 있고 성적 최상위권 학생들이 지원한다. 근래에 지방대학을 무시하는 표현으로 ‘지잡대’ 등의 단어가 쓰이기도 하지만, 누구도 이 대학들을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이 대학들이 서울 주요 사립대에 비해 선호도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 이유는 이곳에 진학하면 최상의 교육을 제공받는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지방의 작은 도시에 지어진 대학이지만 전폭적인 투자로 세계적인 대학이 된 사례는 외국에도 많다. 김종영은 그의 책 ‘서울대 10개 만들기’에서 칼텍(캘리포니아 공과대학)과 스탠퍼드 대학도 시작은 보잘것없는 대학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칼텍은 패서디나라는 지방의 조그마한 도시에 세워진 스루프공대라는 무명의 대학이었지만 세계적인 인재들을 모으고 정부와 민간단체들로부터 막대한 연구비를 받아 10년이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세계적인 명문대학이 되었고, 스탠퍼드 대학교는 팔로 알토의 한 농장에 세워진 보잘것없는 학교였지만 인재 영입과 정부와 기업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25년 만에 하버드, MIT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인 대학으로 발돋움하였다”(각주1)고 설명한다. 결국 지방대 기피 현상은 교육 여건에 대한 전폭적 지원을 통해 극복이 가능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는 전폭적인 재정 지원을 전제로 하고 있으므로, 네트워크에 속해 있는 어느 대학에 가더라도 수준 높은 교육을 제공받는다는 확실한 메시지가 전달된다면 자신이 원치 않는 대학에 배정된 학생들의 불만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다음으로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는 거주지에서 먼 곳에 배정된 학생에게는 추가적인 지원을 한다. 기본적으로 네트워크 대학은 무상 등록금을 지향하므로 학생들의 재정적인 부담이 적고 거주지에서 먼 곳에 배정받은 학생 전원에게 기숙사 등 거주 시설을 무상으로 제공한다. 또한 필요하다면 독일의 바펙과 유사한 생활비 지원도 이루어진다. 독일의 바펙은 대학생에게 무이자로 생활비를 대여해 주고 대출 원금의 절반을 국가가 부담하는 대학생 생활비 지원 프로그램이다. 물론 서울·수도권의 대학에 다니는 것은 유형, 무형의 많은 혜택을 누리는 것이 사실이지만,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에서 원치 않는 대학에 배정을 받더라도 그곳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으며, 등록금과 거주비가 무상인 데다 생활비의 일부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면, 공부를 목적으로 진학을 하려는 학생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조건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대학 네트워크는 어느 캠퍼스에서나 수업을 들을 수 있고 대학 이름의 학위가 아닌 전공별 인증 학위를 받게 되므로 소속 대학의 의미가 크지 않은 구조이다. 대학 네트워크는 전공별로 마련된 인증 기준을 완수했을 때 졸업 자격이 주어지며 네트워크 내의 여러 대학에서 본인에게 필요한 과목을 선택하여 학점을 이수하면 되는 시스템인 것이다. 이러한 방식을 교과목 모듈화라고 하는데 ‘남미 지역 통상’을 전공하는 학생의 경우 <표6-6>(각주2)과 같이 두 개 이상의 대학에서 필요한 수업을 나누어 수강하게 된다.      


표6-6 교과목 모듈화의 예                    

자료: 임재홍(2020). 대학통합네트워크 입시의 의미와 방안.  

  

이와 같이 모듈화된 교과목으로 수업을 수강하기 때문에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에서는 ‘나는 어느 대학 출신이야’라고 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 대학 네트워크에서 배정받은 대학은 단지 대학 생활의 베이스캠프 정도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본인이 소속된 대학 캠퍼스가 큰 의미가 없는 사례로 미네르바 스쿨을 들 수 있다. 미네르바 스쿨은 미래 지향적인 대학의 대표적인 모델로, 세계 여러 도시를 순환하여 수업을 들으면서 하버드보다 선호되는 새로운 형태의 대학이다. 미네르바 스쿨의 주요 운영 방식은 <표6-7>(각주3)과 같다.


표6-7 미네르바 스쿨의 운영 방식

자료: Digital insight(2021.2.26.). 미네르바 스쿨, 하버드보다 들어가기 힘든 ‘가장 선택적인 학교’.


미네르바 스쿨 같은 완전히 순환 수업은 아니지만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 역시 학생들은 순환 수업을 듣게 된다. 네트워크 대학들은 서로가 가진 교육 자원들을 공유하면서 교수들이 수업을 개설할 때도 서로 중복되지 않게 다양한 주제의 수업을 개설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학생들은 학기나 학년별로 자신이 원하는 수업을 듣기 위해 서로 다른 캠퍼스를 옮겨 다닐 수 있고 이때 거주지에서 멀 경우 기숙사를 제공받는다. 대학 네트워크 학생들의 순환 수업은 자신이 듣고 싶은 수업을 듣기 위해 자발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추첨 배정에 대한 불이익을 줄이기 위해 구조적으로 1~2개 학년에서 순환 수업을 듣도록 설계할 수도 있다. 


학생들이 순환 수업을 듣게 될 경우 교수진 운영이나 수강 신청, 기숙사 등의 생활 지원 등은 별도로 설치되는 대학 네트워크 운영 기구에서 관리하게 될 것이다. 순환 수업의 구체적인 모습은 대학 네트워크의 실제적인 추진 과정에서 협의할 내용이지만 만약 처음 배정된 대학에서 2년, 그 외 대학에서 2년을 수강하게 됐을 때의 예시를 표로 나타내면 <표6-8>과 같다.                    


표6-8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 학생들의 순환 수업(예시)                                             


지금까지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의 대학 배정 이후 학생들 간에 나타날 수 있는 이익과 손해의 차이를 줄이기 위한 방법을 살펴보았다. 특별히 수도권 선호 현상이 분명한 현 상황에서 지방에 있는 대학으로 배정되었을 경우, 또 거주지에서 먼 대학에 배정되었을 경우에 대한 보완책을 중요하게 다루었다. 지방대라는 인식을 바꿀 수 있을 만큼의 좋은 교육 여건, 무상 등록금과 거주비 지원 등의 경제적 혜택, 순환 수업과 인증 학위를 통해 처음 배정받은 학교의 중요성을 줄이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 모든 보완책에도 불구하고 대학서열의 해소 과정은 일시에 일어나지 않고 일정한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을 감안해야 한다. 정부에서도 대학서열 순서로 재정 지원이 되지 않고 대학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교육 여건의 제고가 될 수 있도록 세심한 행정 집행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초기 단계의 대학 네트워크가 내실 있게 운영되는 것이 중요하다. 아마도 초기에는 대학서열의 최상층부를 차지하고 있는 대학들은 네트워크에 참여하지 않고 관망할 가능성이 높다. 초기 단계의 대학 네트워크가 입학 단계의 경쟁을 줄이고서도, 등록금 부담 없이 양질의 교육을 제공받는 학교로 인정받으며 안정적으로 정착되어 갈 때, 학생들도 의구심을 풀고 관심 갖고 지원하게 될 것이며 대학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될 것이다. 


각주

1) 김종영(2021). 서울대 10개 만들기. pp.247~251. 내용 재구성.

2) 임재홍(2020). 대학통합네트워크 입시의 의미와 방안.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대학서열해소 열린 포럼’ 자료집. p.161.

3) Digital insight(2021.2.26.). 미네르바 스쿨, 하버드보다 들어가기 힘든 ‘가장 선택적인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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