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두 번째 핵심 요소: 대학 네트워크 재정의 국가 책임화 -1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전폭적인 재정 지원으로 교육의 질을 확실하게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대학 네트워크 구성이라는 아이디어의 핵심이 입학 성적에 목매지 않아도 대학에 가서 충분히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즉, 대학 교육의 패러다임이 성적 우수 학생을 뽑는 데서 좋은 대학 교육을 제공하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대학 네트워크의 교육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해서는 참여대학의 재정을 국가가 책임질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대학 네트워크 정책이 시행될 때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은 과연 이 네트워크 대학이 얼마나 좋은 대학이 될 수 있을까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동입시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대학은 국가가 책임지고 좋은 대학으로 양성할 것이라는 확고한 메시지를 국민에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 잠시 몇 년 하고 말 정책이 아니라 우리나라 대학의 체제를 완전히 새롭게 바꾸어 나갈 것이라고 하는 분명한 방향 제시가 있어야 하는 데 그러려면 대학 네트워크 재정을 국가가 책임지는 것에 대해 법적인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학 네트워크 재정의 국가 책임화는 사립대 비율이 87%나 되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국가 주도의 교육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결국 전체 대학의 8~9할을 차지하는 사립대학을 준국공립화하는 수밖에 없다.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는 회계 투명성 확보와 입시 경쟁 해소라는 공공성을 전제로 하여 국가가 대학의 재정을 책임지는 사실상의 사립대 준국공립화 방안의 성격을 갖는다.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는 참여하는 사립대학들에 대해 과도한 경영 구조 변화를 요구하지 않고 회계 투명성과 입시 경쟁 완화라는 필수적인 공공성을 요구한다. 사학 법인의 학교 운영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은 법정 다툼만 키울 뿐 생산적으로 진전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대학 네트워크 재정의 국가 책임화를 통해 교육의 공공성과 대학의 재정 위기 극복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제2장에서 살펴보았듯 한국은 대학 재정에 OECD 국가 평균의 3분의 2 수준밖에 투자하지 않고 있다. 대학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고등교육 재정 확대가 절실히 필요하다. 그런데 사립대학의 비율이 높고 때마다 터지는 사학비리 뉴스로 인해 사립대학에 국가 재정을 투입하는 것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가 낮은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대학은 입학생의 성적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고 대학서열화의 틀에 갇힌 우리나라의 대학은 발전의 동기를 찾기 어려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는 사립대학에 대한 재정 지원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국가의 재정 지원을 받는 사립대학은 학생 선발에 관한 권한을 상당 부분 국가에 위임하며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에 참여한다. 그리고 국가의 재정 지원을 받는 사립대학에 대해서는 회계 투명성을 높여 국민의 신뢰성을 확보하자는 것, 이것이 대학 네트워크 재정의 국가 책임화의 주요 내용이다.
그림7-1 ‘대학 네트워크 재정의 국가 책임화’의 주요 내용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 외에도 그동안 사립대학을 준국공립화하는 방안으로 공영형 사립대 정책과 정부 책임형 사립대학 정책 등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책들과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 방안은 어떤 유사점과 차이점이 있을까?
공영형 사립대학은 “정부의 안정적인 재정지원 속에서 사립대학의 공공성, 투명성, 경쟁력을 제고하는 방안”(각주1)으로 설명된다. 다수의 사립대학이 생존을 걱정할 정도로 재정 상태가 안 좋은데도 각종 비리 사례로 인해 국민적 신뢰가 낮아서 국가 재정 지원이 어려우니, 사학 법인의 혁신을 이룬 다음 안정적으로 국가의 재정 지원을 받도록 하자는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대학의 회계 투명성을 높이는 일, 그리고 공익이사의 비율을 높여서 사학 법인의 경영구조를 변화시키는 일 등이 있다.
공영형 사립대 정책은 거점 국립대 집중 육성과 함께 문재인 정부가 2017년에 발표한 주요 국정과제이기도 했다. 국정과제에도 포함되었으니 공영형 사립대 정책은 적극 추진될 것으로 기대되었고 시범적으로 5개 대학에서 시행하기 위해 2018년에 811억 원의 예산 요구안이 제출되었다. 그러나 예산 책정 과정에서 기획재정부가 난색을 표하며 공영형 사립대 사업예산은 0원이 되었고, 나중에 실증연구비로 겨우 10억 원이 확보되는 데 그쳤다. 이후 2020년에 상지대, 조선대, 평택대에서 공영형 사립대학 도입을 위한 실증연구가 진행되었고, 2021년에는 ‘사학 혁신 선도대학 사업’으로 명칭이 바뀌어 53억 원의 예산을 배정받는데 그쳤다.
앞서 제5장 <그림5-2>에서 보듯 공영형 사립대는 대학공유네트워크 방안을 위해서도 필요한 과정이다. 국공립대 먼저 대학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한편 공영형 사립대를 늘려가면서 나중에 공영형 사립대가 대학 네트워크로 들어오도록 하는 것이 대학공유네트워크 방안의 내용이었다. 그러나 공영형 사립대 정책이 벽에 부딪히고 말았으니 대학공유네트워크 방안에도 차질이 생기게 된 상황이다.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와 공영형 사립대 방안은 사립대학의 공공성을 높이는 것을 전제로 국가의 재정 지원을 대폭 높이고자 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공영형 사립대는 먼저 사립대학을 공영형 사립대로 전환한 후 이 대학들이 국공립대 중심의 대학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는 입시 경쟁 완화와 회계 투명성 확보에 동의하는 사립대학에 대해 네트워크에 참여할 기회를 주고 국가의 재정 지원을 대폭 높인다. 그러므로 대학 네트워크 참여대학은 공영형 사립대처럼 먼저 지정되어 있지 않아도 공동입학 네트워크에 참여할 준비만 되어 있으면 지원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이는 대학 네트워크에 사립대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할 수 있는 장점이다.
또한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는 회계 투명성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검증하되 사학 법인의 경영구조에 대해서는 과도한 조건을 제시하지 않는다. 이는 경영구조의 변화에 대해 지나치게 높은 조건을 제시할 경우 사립대학이 대학 네트워크 참여를 기피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즉, 대학 네트워크는 회계 투명성 확보와 공동입학 실시라는 필수 조건만 충족하면 사립대의 참여 가능성을 높여서 대학서열 해소라는 목표에 더욱 집중하고자 하는 정책이다.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가 추진된다고 해도 공영형 사립대 정책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학 법인의 공공성을 높이는 모델을 만들어내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며, 사학의 경영구조를 부패가 발붙이기 어려운 형태로 개선하는 일은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와 별도로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할 일이다.
사립대학의 준국공립화 정책으로는 대학교육연구소가 제안한 ‘정부 책임형 대학’도 있다. 정부 책임형 대학은 “OECD가 규정하는 ‘정부 의존형 사립학교’를 차용하되 정부의 책임을 높인다는 의미에서 변용한 것”(각주2)이다. 즉, “정부 기관이 학교 재정의 50% 이상을 지원하거나 학교에 속한 교수 급여를 지원하는 사립학교가 정부 의존형 사립학교”(각주3)인데, 우리나라 정부가 대학 교육에 너무 재정 지원을 안 하고 있으니 정부의 책임을 강조하여 정부 의존형 사립대학이 아닌 정부 책임형 사립대학이라고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정부 책임형 사립학교 역시 대학에 대학 국가의 재정 지원을 늘리면서 동시에 대학의 공공성을 높여야 한다고 제안한다.
정부책임형 사립대학 방안의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첫째 전체 사립대학 예산 규모의 절반을 부담하는 정부책임형 사립대학을 속히 시행할 것, 둘째 정부의 대학재정지원 방식을 대학별 차등 지원이 아닌 학생 수 등에 따라 균등 지원할 것, 셋째 사립학교법을 개정하여 법인 이사회의 공공성을 강화할 것, 넷째 정보공개 확대로 대학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할 것을 제안(각주4)했다. 정부책임형 사립대학 방안에서는 고등교육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강조한 점에서 의미가 있고 이 점에서 대학 네트워크 재정의 국가 책임화와 뜻이 통한다.
그런데 정부책임형 대학 방안에서는 대학 서열화 해소에 대한 언급은 없다.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는 대학 재정에 대한 국가 책임성을 높이면서 그때 대학에 요구할 공공성의 요건 중 공동입학 네트워크 참여로 인한 입시 경쟁 해소를 중요한 항목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정부책임형 사립대학 방안과 차이가 있다.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 정책은 대학에 대한 국가의 전폭적 재정 지원을 요구하되 국민적 동의를 얻기 위한 회계 투명성 확보를 강조하고 있다는 면에서 다른 사립대 준공립화 방안인 공영형 사립대안이나 정부 책임형 사립대학안과 유사성이 있다. 하지만 대학 네트워크는 대학서열 해소를 통해 우리나라 초중등 교육의 정상화와 대학 교육의 발전을 이루는 데에 그 지향점을 보다 분명히 한다. 그래서 회계 투명성 확보와 공동입학 네트워크 참여라는 두 요소로 요구 조건을 한정하여 대학들의 참여 가능성을 높이고자 한다.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를 통해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안정적인 재정 기반 위에서 대학 교육의 새로운 중흥기를 맞게 될 것이고, 대학서열의 완화로 초중등 교육의 정상화도 이루게 될 것이다.
각주
1) 한국사학진흥재단(2020). 공영형 사립대학 운영모델·가이드라인 연구. p.1.
2) 대학교육연구소(2019). 정부책임형 사립대학 도입 방안(요약). p.4.
3) 대학교육연구소(2019). 위의 자료 p.4.
4) 대학교육연구소(2019). 위의 자료 pp.8~15. 내용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