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첫 번째 핵심 요소: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 구성 -2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는 학생을 선발할 때 합격 여부를 먼저 결정한 후에 대학을 추첨으로 배정한다. 먼저 합격 여부를 결정하는 이유는 대학 배정에 성적이 판단 근거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대학을 배정하는 데 성적 기준이 여전히 작용하게 되면 대학 네트워크 안에서 다시 서열화가 발생한다. 그렇게 되면 대학 서열화를 해소하고자 했던 정책의 목표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일정한 성적 기준에 따라 합격이 결정된 학생들은 모두 같은 자격을 인정받으며 대학 배정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합격 여부를 결정하는 성적 기준은 대학 네트워크 시행 초기에는 학생들의 지원을 받은 후에 결정된다. 예를 들어 네트워크에 참여한 대학들의 전공별 총 정원과 해당 전공에 지원한 학생들의 성적을 고려하여, 연구중심대학 네트워크의 A전공의 경우 내신과 수능 4등급 이상, 교육중심대학 B전공의 경우 내신과 수능 6등급 이상의 성적이면 합격자로 결정하는 방식이다.
대학 네트워크 초기에 합격 성적 기준이 유동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직 참여대학의 수가 충분히 많지 않고 지원하는 학생들도 어느 정도 성적대의 학생이 지원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의 1단계 시작 단계에서 예상보다 많은 대학이 참여할 수도 있고 계획에 못 미치게 적은 대학만이 참여할 수도 있다. 학생의 경우도 아직 대학 네트워크의 성공에 대한 확신이 적은 상태기 때문에 1단계에서는 성적대가 낮은 학생들 위주로 지원하게 될 수도 있고, 예상외로 높은 성적대의 학생들이 지원하게 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새롭게 도입되는 전혀 새로운 대학 체제이기 때문에 초기 단계에서 어떤 모습으로 대학 네트워크가 시행될지는 미지수이다.
중요한 것은 초기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가 안정적으로 출발을 하고 내실 있는 모습으로 운영되는 것이다. 예상보다 인기가 없을 수도 있고 예상외로 인기가 높을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예상외로 높은 관심 가운데 대학 네트워크가 출범하면 좋은 일이고, 설령 초기 단계에서 큰 관심을 못 받고 대학 네트워크가 출범한다고 해도, 서열 높은 대학에 가야만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대학서열에 크게 상관없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대학, 입학할 때의 극심한 성적 경쟁은 줄이고 대학에 와서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는 대학 체제의 출현은 그 자체로 우리나라 교육의 체질을 바꾸는 중요한 전환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초기 단계의 대학 네트워크가 안정적으로 정착하면서 점차 참여대학이 늘어나게 되면, 성적 기준을 학생 모집 이전에 설정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A전공은 내신과 수능 3등급, B전공은 5등급, C전공은 7등급 등으로 사전에 성적 기준을 학생들에게 제시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학생들은 초중고 학생 생활을 할 때 입시 경쟁의 부담을 크게 낮출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전공에 대해 대학 네트워크에 입학할 수 있는 성적 기준을 미리 알고 있기 때문에, 그 기준 이상의 성적을 얻기 위한 과도한 학습 부담을 갖지 않아도 된다. 대신 학교생활에 충실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전공 분야에 대한 폭넓은 탐색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모습이야말로 초중등 교육을 정상화하고 진정으로 학생의 흥미와 진로를 존중하는 교육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대학 네트워크의 학생 선발 과정을 표로 정리하면 <표6-4>과 같다.
표6-4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의 학생 선발 과정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는 ‘원스탑 대입지원시스템(가칭)’을 구축하여 학생들의 입학 신청을 받는다. 원스탑 대입지원시스템은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의 출범과 함께 구축되어 대학 네트워크의 입시에 활용될 온라인 홈페이지이다. 공동입학 네트워크에 참여할 대학이 정해지면 해당 대학들의 전공 학과나 학부를 파악하여 대학별 입학 정원을 정하게 되고, 학생들은 원스탑 대입지원시스템에 접속하여 자신의 희망 전공이 개설된 대학 중에서 희망하는 순서로 지망대학을 선택하게 된다. 지원자가 선택할 수 있는 전공과 지망대학의 개수는 네트워크 참여대학의 수와 총 입학 정원을 고려하여 네트워크 참여대학 협의체에서 정한다. 원스탑 대입지원시스템에서 두 개의 선호 전공에 대해 각각 6개의 지망대학을 선택하는 경우를 표로 나타내면 <표6-5>와 같다.
표6-5 원스탑 대입지원시스템에서의 대학 선택(예시)
1순위 전공의 1지망부터 해당 대학의 입학 정원을 채우는 방법으로 대학 배정이 이루어지며 마지막 지망까지 배정했을 때 지원자 전원이 대학에 배정되도록 한다. 이미 전공을 선택한 지원자들은 합격 자격을 얻은 상태이기 때문에 모든 학생이 대학을 배정받게 된다. 이때 현 입시에서 수시에 합격한 학생은 정시에 지원하지 못하는 것처럼, 대학 네트워크에 지원하여 합격한 학생은 비네트워크 대학에 지원할 수 없도록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대학 네트워크에 지원했다가 원하는 대학에 배정받지 않으면 비네트워크 대학으로 빠져나가버릴 가능성이 있다. 대학 네트워크 초기에는 현재의 대학서열이 여전히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네트워크 대학 입시를 전기로, 비네트워크 대학 입시를 후기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 학생들은 대학 네트워크에 지원할지 여부를 신중하게 생각해서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가 학생을 모집할 때 전공별로 할 것인지 학부나 단과대별로 할 것인지가 한 가지 논쟁점이 될 수 있다. 네트워크 참여대학이 단과대학이나 인문, 자연 계열 등 학부나 계열별로 총인원을 배정받은 뒤 학년이 진급하면서 세부 전공을 선택하는 방식이 운영에는 편리하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학년이 진급하는 과정에서 선호 학과와 비선호 학과가 나뉘게 되고 일단 현재의 서열이 높은 대학에 입학하고 보자는 심리가 발동할 수 있다. 또 현재 학부제를 운영하고 있지 않은 대학은 신입생 선발만 학부나 계열로 하는 것이 학과 체계와 맞지 않는다.
원스탑 대입지원시스템을 활용하면 대학의 상황에 따라 학과와 학부 모집 모두 가능하다.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는 전체 지원자를 하나의 대입지원시스템으로 관리하며, 입학생을 학과 전체 정원보다 여유 있게 선발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학과 모집과 학부 모집을 동시에 적용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