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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훈 Feb 09. 2023

중요한 건 대학입학 성적 기준을 낮추는 일

제6장 첫 번째 핵심 요소: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 구성 -1

대학서열 해소 방안을 구상할 때 첫 번째로 중요한 핵심 요소는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 구성’이다. 우리나라 대학 서열화는 대학에 입학할 때의 성적 순서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므로 대학 서열화를 깨뜨리려면 대학에 입학할 때 성적이 갖는 영향력을 최소화하면 된다. 그러기 위해 일정한 성적 기준을 넘는 학생이라면 모두 같은 자격으로 인정하는 입시를 시행할 필요가 있다. 고교평준화에서처럼 합격과 불합격을 나누는 성적 기준만 정한 다음, 합격에 해당하는 학생은 모두 같은 자격을 가졌다고 보고 학교를 추첨 배정하면 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오래전부터 대학서열 해소를 위해 필수적인 요소로 제시되어 온 것이 ‘대입 자격고사제’이다. 대학입학 성적 순서로 대학이 서열화되어 있는 것이 문제이니 수능 대신 대입 자격고사제를 실시하고 최소한의 성적 기준만 넘기면 대학입학 자격을 주자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단번에 대학 서열화를 해소할 수 있다는 제안이 대입 자격고사제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는 사립대학 비율이 높고 기존의 대학서열 체제가 너무도 공고하여 자격고사제를 단번에 도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사실 해외의 여러 나라에서 대입 자격 고사제 성격의 입시를 시행할 수 있는 것은 그 나라 대부분의 대학이 국공립이기 때문이다. 독일의 경우 95%, 이탈리아는 93%, 프랑스는 86%의 대학이 국립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각주1)


하지만 우리나라는 대학의 87%가 사립대학이기 때문에 국가가 대학 재정을 책임져 주지도 않고 그런 만큼 대학의 학생 선발권을 침해하지도 못한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대입 자격 고사제를 실시한다고 하면 사립대학들은 아마도 대학별로 별도의 시험을 치르겠다고 나설 것이고 국가도 그것을 막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쟁처럼, 대학 서열화를 해소하려면 자격고사제를 실시해야 하는데 자격고사제를 도입하지 못하니 대학 서열화를 건드리지 못하는 모순된 상황이 이어져 온 것이다.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는 이러한 꽉 막힌 상황을 타개하고자 제시된 정책이다. 이 네트워크는 대학들의 자발적 참여를 기반으로 한다. 쉽게 말해 대입 자격 고사제를 일시에 모든 대학에 시행할 수 없으니 우선 자발적으로 대입 자격 고사제에 동의하는 대학들을 묶자는 얘기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자발적으로 참여하겠느냐는 의문이 들것인데, 대학의 참여 유도는 재정 지원을 통해 해결한다. 즉 대학이 거부할 수 없는 수준의 전폭적 재정을 지원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의 재정을 어떤 방식으로 지원할 것인지는 제7장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다. 여하튼 핵심은 재정 지원을 매개로 자격 고사제 성격의 입를 선도적으로 받아들이는 대학의 연합체가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라고 할 수 있다.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는 별도의 대입 자격고사를 도입하지 않더라도 현재의 내신과 수능 점수를 활용해서 시행이 가능하다. 또한 전체 대학이 아닌 일부 대학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대입 자격을 얻는 성적 기준은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적용한다. 시행 초기에는 현재의 상대평가 체제에서 산출된 내신이나 수능 점수에서 일정 등급을 넘는 학생에 대해 모두 합격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상대평가는 결코 좋은 제도가 아니지만 상대평가를 먼저 바꾸려고 하다 보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우선은 상대평가 등급을 활용하는 것이다. 그렇긴 해도 일정 등급 이상이면 같은 성적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지금보다는 입시 경쟁이 훨씬 약한 강도를 지니게 된다. 차츰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대학이 계속 늘어나게 되면 절대평가를 도입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될 것이다. 즉, 상대평가를 단번에 폐지하여 대학 서열화를 해소하는 접근 방법이 아니라, 상대평가의 영향이 적은 입시를 치르는 대학의 수를 점점 늘려가면서 결국에는 절대평가를 도입할 수 있는 상태로 자연스럽게 전환하는 접근 방법이다. 이러한 입시의 변화를 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표6-1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 확대에 따른 입시 변화 전망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는 참여하는 대학의 성격에 따라 세 가지 유형으로 구성하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시스템을 참고할 만하다. 앞서 5장에서 소개한 바 있듯이, 캘리포니아대학체제는 10개의 연구중심대학(UC), 23개의 교육중심대학(CSU), 116개의 직업중심대학(CCC)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대학 입학 자격을 나타내는 입학자격지표에서 캘리포니아 내 고교졸업자의 상위 12.5%는 UC에, 33.3%에 들면 CSU에 입학할 자격을 얻는다. 


임재홍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포럼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체제는 신입생 입학 비율을 40%로 제한하고 적극적인 편입학 정책을 병행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대학(UC)에 편입하는 커뮤니티 칼리지(CCC) 출신이 비율은 신입생의 30%를 상회”(각주2)한다. 즉 캘리포니아 대학체제는 위계별로 3개의 대학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으며 최상위 네트워크 신입생의 상당 비율을 하위 네트워크의 편입생으로 구성함으로써 대학입학 때의 경쟁을 완화하면서도 대학입학 이후의 교육 성과를 반영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제안한 대학입학보장제에서는 “대학 네트워크를 대형 종합대학들이 연결되는 권역별 거점대학 상생 네트워크와 소형 특성화 대학들이 연결되는 강소 교육 혁신대학 상생 네트워크로 나눌 수 있다”(각주3)고 설명한다. 여기에 직업 교육 중심인 전문대학 네트워크를 추가한다면 <표6-2>와 같은 세 유형의 대학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 있다. 이때 유형과 유형 사이에 서열화가 생길 수 있지만, 같은 유형 내에서는 더 이상 치밀한 서열이 없으며 유형 간에 편입 비율 조정을 통해 서로 열려 있는 구조로 운영되므로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또한 이렇게 할 때 전문대학들도 대학 네트워크 체제에서 소외되지 않고 원하는 누구나 양질의 직업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진정한 평생교육 기관으로 발전될 것이다.

 

표6-2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의 3유형 체제(예시)                    


전폭적 재정 지원을 받는 대학 네트워크를 구성한다고 하면 자주 제기되는 우려가 있는데, 대학 네트워크에 퇴출 위기에 있는 부실 대학들만 대거 참여하게 되어 소위 문 닫아야 할 대학만 국가 예산으로 연명시키는 꼴이 되면 어떻게 하느냐는 지적이다. 그러나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는 참여할 대학을 소정의 공모 기준에 따라 선정할 것이므로 부실 대학의 집합소가 되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는다. 물론 현재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계대학이라고 하더라도 교육 혁신에 대한 분명한 의지를 지니고 있다면 공모 기준을 충족하여 좋은 대학으로 거듭날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과 의지가 없는 한계대학은 별도의 한계대학 출구 마련을 통해 정리되는 수순을 밟게 된다. 


그렇다면 대학 네트워크에 참여할 대학의 공모 기준은 어떻게 정하는 것이 좋을까? <표6-3>(각주4)은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대학입학보장제에서 제시한 대학 네트워크 공모 기준인데, 법학전문대학원의 평가인증기준을 참고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표6-3 대학네트워크 참여 대학 공모 기준(예시)          

자료: 서울특별시교육청·사교육걱정없는세상(2021). 대학서열해소 방안 마련을 위한 특별 포럼.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는 일정한 기준에 충족할 것을 약속하는 대학을 대상으로 공모를 받아 구성될 것이며, 참여대학에 대해서는 전폭적인 재정 지원을 하여 입시 경쟁 없이도 양질의 교육이 이루어지는 대학 체제를 이뤄가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가게 된다.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는 대학입학 당시의 성적에만 매몰되어 있는 현재의 모습을 벗어나, 대학 공부를 수행할 수 있는 소정의 요건을 갖춘 학생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는 새로운 대학 체제로 이행할 것이다. 


각주

1) 주간경향(2020.11.30.). 국공립대학 대폭 늘려 대학 평준화를.

2) 임재홍(2020). 대학통합네트워크 입시의 의미와 방안.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대학서열해소 열린 포럼’ 자료집. pp.151~152.

3) 사교육걱정없는세상(2017). 새 시대 모두를 위한 대입제도 ‘대학입학 보장제’. p.47.

4) 이 공모 기준은 대한변호사협회 법학전문대학원평가위원회의 홈페이지에 나온 제2주기 법학전문대학원 평가인증기준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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