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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훈 Feb 02. 2023

대학서열 해소에 필요한 세 가지 핵심 요소

제5장 대학서열 해소를 위한 지금까지의 논의들 -4

지금까지 그동안 논의되었던 대학서열 해소 방안들을 살펴보았다. 주로 대학 네트워크 구성을 통한 접근이었다. 물론 대학 네트워크 방식이 아닌 대학서열 해소 방안도 있겠지만, 많은 연구와 고민이 이 방향으로 이루어진 사실을 볼 때 대학 네트워크 구성 방식이 현재까지 나온 대학서열 해소 방안 중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정책 방향이라고 판단된다. 또 대학 네트워크 구성 방식 중에도 여기에 소개하지 않은 것들도 있지만, 대표적인 정책 제안으로 국립대통합네트워크, 대학공유네트워크, 대학입학보장제,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소개한 것은 이들이 대학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주된 내용 요소를 잘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국립대통합네트워크는 국공립대와 사립대를 포함하여 20~30만 명의 입학 정원을 동시에 선발하는 내용이고, 대학공유네트워크는 1단계에서 거점국립대, 2단계에서 지역국립대와 공영형 사립대, 3단계에서 독립형 사립대가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대학입학보장제는 국공립대와 사립대가 처음부터 동시에 네트워크에 참여하되 단계별로 참여대학의 수를 점차 늘려나가는 방식이며,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거점국립대들의 교육 여건을 서울대 수준으로 끌어올리면서 권역별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방식이다. 각 유형의 차이점을 정리하면 <표5-6>과 같다.     


표5-6 대학 네트워크 구성 방식 비교

         

지금까지 살펴본 여러 방안들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이제 대학서열해소를 위해 필요한 세 가지 핵심 요소를 찾고자 한다. 핵심 요소들이 정해지면 각 요소에 필요한 세부 내용과 주요 쟁점들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대학서열해소에 필요한 첫 번째 핵심 요소는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 구성’이다. 현재의 대학 서열화는 대학입학 단계의 성적 순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같은 성적 기준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대학 연합체가 필요하다. 고교평준화 사례를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 쉽다. 각 고등학교가 성적 기준으로 학생을 선발할 때는 지역마다 명문고가 있고 그 명문고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다. 하지만 고교평준화를 도입하면서 고교 정원에 따라 합격 여부를 결정한 다음 합격한 학생에 대해서는 추첨으로 배정하자 고등학교 간의 서열화는 사라졌다. 결국 대학 서열화와 입시 경쟁 문제를 깨뜨리기 위해서는 같은 성적 기준으로 공동입학과 추첨 배정을 하여 대학입학 시기의 성적 경쟁을 약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공동입학 제도를 도입하는데 우리나라는 특수한 조건이 존재한다. 바로 대학 중에서 사립대학의 비중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전체 426개의 대학 중에 86.6%인 369개가 사립대학이다(2021년 기준). 그런데 사립대학들은 법률에 의해 그 자율성을 보장받는다.   


대한민국 헌법

제31조 ④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      


사립학교법

제1조(목적) 이 법은 사립학교의 특수성에 비추어 그 자주성을 확보하고 공공성을 높임으로써 사립학교의 건전한 발달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     


우리나라 헌법은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다. 또 사립학교법은 사립학교가 자주성과 공공성을 가진 기관임을 명시하고 있다. 즉 사립학교는 공공성을 무시하는 수준으로 자율성을 가질 수는 없지만 기본적으로 자주성을 갖고 학교를 운영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를 갖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나라는 정부 주도의 대학체제 개편을 추진하기 어렵다. 사립대학은 자신의 대학에 적합한 학생을 선발하는 권리를 지키려 한다. 물론 지금도 대학별 본고사 같은 입시 제도는 국가에서 막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현재의 대입제도를 가지고서도 충분히 대학이 원하는 학생을 뽑을 수 있기 때문에 국가가 금지할 수 있는 정당성이 확보된다. 하지만 아예 성적으로 학생을 뽑지 말라고 하면 대학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이것이 ‘공동입학을 실시하는 대학 네트워크 구성’이 필요한 이유이다. 우리나라는 성적 기준을 대폭 낮춘 입시 제도를 만들더라도 모든 대학들이 거기에 참여하도록 강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대학서열을 해소할 수 있는 입시 제도에 대학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들 것이다. 대학이 학생 선발권을 포기하는 네트워크에 자발적으로 들어올 이유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전폭적 재정 지원이다. 앞서 1부에서 우리나라 대학이 재정적으로 얼마나 위기 상황인지 설명했다. 대학 입장에서 학생 선발권이 중요하긴 하지만 국가가 파격적인 재정 지원책을 제시했을 때 그것을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당장에 대다수 대학들이 몇억에서 몇십억 원 수준의 정부 재정 지원 사업에 탈락하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 그런데 학교당 수백억에서 많게는 수천억 단위의 재정 지원을 하는 정책이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이다. 충분히 대학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서열 해소에 필요한 두 번째 핵심 요소는 ‘대학 네트워크 재정의 국가 책임화’이다. 우리나라는 사립대 비중이 높아서 국가에서 재정 지원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고 각종 재정 지원 사업을 통해 우회적으로 하고 있다. 그나마 그 액수도 OECD 국가 평균의 3분의 2 수준밖에 안 된다. 앞서 첫 번째 핵심 요소에서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에 재정 지원을 매개체로 대학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이 두 가지 조건을 결합해 보면, 국가로부터 전폭적인 재정을 지원받으면서 학생 선발은 입시 경쟁을 완화하는 방향의 대학서열 해소 방안이 만들어진다. 


이때 대학에 대한 국가의 재정 지원을 늘리기 위해서는 회계 투명성을 확보한다는 조건이 하나 더 필요하다. 사립대학의 부정·비리 사례가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져 있어서 대학에 지원된 재정에 대한 회계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고는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대학 네트워크 재정의 국가 책임화는 회계 투명성과 입시 경쟁 완화를 조건으로 하여 사립대학에 재정 지원을 대폭 늘리는 준국공립화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국공립대에 준국공립화 된 사립대의 숫자가 늘어나면 이제 국가적 차원에서 대학서열을 근본적으로 완화하는 입시 제도를 시행할 수 있게 된다. 


대학서열 해소에 필요한 세 번째 핵심 요소는 ‘대학 네트워크에서 질 높은 교육 제공’이다. 대학 네트워크에 대해 재정 지원을 늘리는 것과 함께 여기서 질 높은 교육이 이루어지게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대학에 대해 재정 지원만 늘고 정착 교육 여건은 별반 차이가 없다면 국민들은 그 정책에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또 한편에선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를 도입하면서 학생들의 학력이 떨어지지 않을지 우려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므로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는 입시 경쟁은 완화되지만 대학에서의 교육의 질은 대폭 향상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될 때 우리나라 교육은 초중고 단계에서는 극심한 경쟁을 겪지 않아도 되고 대학 교육은 국가의 안정적인 지원과 관리하에 양질의 교육 여건을 제공하는 형태로 전환하게 된다.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을 바탕으로 대학서열 해소에 필요한 세 가지 핵심 요소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제 6~8장에서는 이 세 가지 핵심 요소의 구체적인 내용과 주요 쟁점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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