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사교육비, 다 같이 멈추려면 -2
2022년 7월, 한국 학계에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한국계 수학자인 허준이 교수가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은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수능 문제가 얼마나 어려운지 허교수에게도 그 난이도가 부담스럽다고 한다. 어느 인터뷰에서 허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수능 문제를 다시 푼다면) 수학 빼고는 다 자신 있어요. 수학은 훈련이 돼 있어야 하기 때문에...”(각주1)
“(한국의 수학교육에 대해 말한다면) 학생들이 소중한 학창 시절을 공부하는 게 아니라 잘 평가받기 위한 것에 치중하는 것 같아요. 이러한 현실에 주눅 들지 말고 자기 마음이 이끄는 대로 폭넓은 공부를 했으면 좋겠습니다.”(각주2)
그의 인터뷰 내용은 수능 수학의 고난도 문제가 수학적 사고보다는 고도로 훈련된 문제 풀이 기술이 필요하게 된 현실과 경쟁과 시험에 매몰되어 버린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을 잘 보여준다.
필즈상 수상자도 한국의 수능 수학 문제를 부담스러워한다니, 과연 어느 정도의 난이도길래 그러는 걸까? 통상 수능 수학의 30번 문제가 극상의 난이도 문제로 꼽힌다. 교육방송(EBS)에 따르면 2020학년도 수능 수학 나형 30번의 오답률은 98.0%였는데, 오답률이 높은 문항 1개를 맞힐 경우 원점수로는 1~3점 차이지만 표준점수로 환산했을 땐 10점 이상의 차이가 발생한다.(각주3) 즉 최상위권 학생들에게는 고난도 문제 하나가 자신이 목표하는 대학의 당락을 결정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 언론에서 수능 수학 30번 문항의 난이도를 체험해 보기 위해 수학 전공자에게 직접 풀어보게 했더니 다음과 같은 반응이 나왔다.
“문제를 보자마자 숨이 막혔다. 완전히 이해하는 데만 삼십 분 이상이 걸렸다. 실제 시험장이었다면 그해 시험은 낙방했을 것 같았다. 한 문제를 풀고 나니 60분이 지나있었다. 수리영역에 주어진 시간은 100분이다. 이미 시간의 절반가량은 써버린 셈이다.”(각주4)
도대체 왜 이렇게 어려운 문제를 출제하는 것일까? 바로 대학이 서열화되어 있고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최상위권 대학, 최상위권 학과에 들어갈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줄을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입시 경쟁이 계속 치열해지다 보니 학원 선행학습의 시기와 학습량은 점점 심화되고, 그러다 보니 초고난이도 문제를 통해 변별력을 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학서열 체제에서 시험 문제의 고난이도화는 필연적이다.
킬러 문항은 대표적으로 수학 교과에 많이 출제되지만 다른 과목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2019학년도 수능 국어 31번 문항에서 만유인력을 다룬 지문은 현직 교사들조차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이 많았고 수능 출제 기관인 평가원이 이례적으로 “난도가 지나치게 높아 유감”이라며 사과할 정도였다.(각주5) 또 2022학년도 수능에서는 생명과학II 20번 문항에 대해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 오류를 인정해 달라는 국민청원 글이 올라왔고, 미국 스탠퍼드대 조너선 프리차드 교수가 문항의 오류를 언급하며 이 문제를 푸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의견을 밝히는 해프닝까지 겪었다. 결국 법원은 정답 결정의 효력을 정지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그림1-3 2018학년도 수능 수학 나형 30번
그림 1-4 2019학년도 수능 국어 31번
2018학년도부터 절대평가로 전환된 수능 영어의 사정은 어떨까? 다른 과목에 비해 난이도의 논란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수능 영어의 수준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 유튜브 채널 ‘영국남자’에는 한국 수능 문제를 본 영국 10대들의 반응을 다룬 콘텐츠가 있다.(각주6) 영어가 모국어인 영국 학생들이 외국어로서 영어를 배우는 한국 학생들의 수능 영어 문제를 풀어본 소감은 다음과 같다.
“이거 제가 쓰는 언어 맞나요?”
”너무 길고 복잡하게 써서 글에 집중이 안 돼요. “
”이 문제가 영어로 나온다고요? “
”이게 영어 실력을 시험하는 거라는 게 신기하다.”
“소리 내서 읽고 있긴 한데 무슨 말인지는 하나도 모르겠어요.”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데도 영국 학생들은 수능 영어 지문을 이해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호소했고, 게다가 이런 문제를 1분 30초당 한 문제씩 풀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거의 까무러치는 반응을 보였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은, 한국의 시험 문제 수준이 높다는 것이 결코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누가 서열이 높은 대학에 들어갈 것인가를 가리는 변별을 위해 정상 범위를 넘어선 과도한 난이도의 시험과 경쟁을 학생들에게 부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학의 수학 전공자도 한 문제를 푸는데 30분 이상이 걸리는 수학 문제, 영어 원어민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영어 문제, 외국 유명 대학의 교수가 나서서 이 문제는 답이 없다고 선언하는 과학 문제, 국어 능력이 아닌 과학 지식을 알아야 풀 수 있는 국어 문제를 푸는 것이 도대체 교육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수능의 킬러 문항이 문제가 되자 정부에서는 2024학년도 수능 시험에서 킬러 문항을 없애겠다고 공언을 했고 실제로 없앴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여전히 고교 교육과정으로 해결할 수 없는 다수의 문제가 출제되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여기서 어떤 문제가 킬러 문항인지 아닌지를 가리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킬러 문항이든 아니면 킬러 문항보다 살짝 쉬운 고난도 문제든, 어차피 시험을 통해 학생들을 한 줄로 세우려면 난이도가 어려운 문제를 출제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핵심기 때문이다.
고난도 문제는 수능뿐 아니라 학교 내신 시험도 마찬가지다. 학교에서도 대입을 위해 9등급 상대평가(각주7)로 내신 성적을 산출해야 하기 때문에 교사들은 어려운 문제를 출제할 수밖에 없다. 1등급은 4%의 학생에게만 주어져야 하기 때문에 만약 시험 점수 100점을 받은 학생수가 4%를 초과할 경우 그 학생들은 1등급이 아닌 2등급을 부여받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가르친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는 학생이 일정 수준 이상 넘어서면 안 되는 모순적인 상황이 벌어진다. 실제로 전국 8천여 명의 학생, 학부모, 교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각주8)에서, 수학교사의 64.4%가 변별 때문에 가르친 내용보다 어려운 내용을 시험에 출제하고 있다고 응답했고, 고등학생의 76.2%가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보다 시험 문제가 과도하게 어렵다고 답했다.
그림 1-5 ‘학교 수학 시험의 난이도’에 대한 수학교사 응답 비율
그림 1-6 ‘학교 수학 시험의 난이도’에 대한 학생 응답 비율
자료: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국회의원 강득구 보도자료(2022)
국가에서 주관하는 수능 시험과 학교 시험 모두 국가교육과정의 내용과 수준을 준수해야 하고, 지나친 고난도 문제로 인해 학생들을 괴롭게 하거나 사교육으로 내모는 일이 없어져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중요한 일은 대학의 서열화를 대폭 완화해서 지금 같은 치밀한 변별력이 근본적으로 필요 없게 만드는 일이다. 예를 들면 프랑스 대입자격고사인 바칼로레아의 경우 20점 만점에 12점을 얻으면 기본적으로 어느 대학이든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한다. 20점 만점에 12점은 고교 과정을 정상적으로 이수하면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점수로 전체 응시 학생의 90% 정도가 입학 자격을 얻고 있다고 한다.
혹자는 우리나라의 입시 경쟁 상황을 모두가 일어나서 영화를 보고 있는 상황으로 비유했다. 다 같이 앉아서 보면 모두가 편안하게 영화를 볼 수 있는데, 누군가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더 잘 보겠다며 일어서는 순간 그 사람으로 인해 시야를 방해받은 그 뒷사람도 일어나고 그러다 보니 결국 모두가 일어나서 힘들게 영화를 보고 있는 상황, 그것이 한국교육의 모습인 것이다. 모두가 일어나서 보는 영화는 다리만 힘들지 내용적으로는 같은 영화이다. 입시 경쟁 역시 학생들의 배움을 깊게 하거나 꼭 필요한 학습 내용을 추가한다기보다는 이미 충분한 공부를 한 상태에서 단지 누가 더 앞서는지 변별하기 위한 무의미한 학습량 경쟁에 빠지고 말았다. 지나치게 어려운 수능과 학교 시험으로 더 이상 학생들을 괴롭히고 학교 교육을 왜곡시켜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대학서열이 해소되어 첨예한 줄 세우기 대신 본질에 충실한 교육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각주
1) ‘서울대학교’ 유튜브 채널(2022.9.19.). 아내가 본 ‘수학자 허준이’ 최초 공개! 필즈상 비결은...
2) 아주경제(2022.8.3.). 필즈상 허준이 교수가 말하는 진짜 공부.
3) 동아일보(2019.11.15.). 수능 수학 나형 30번, 수험생들 가장 괴롭혔다...오답률 98%
4) 조선일보(2017.11.23.). 어렵다는 수학 30번, 수학전공자 직접 풀어보니...“두통 호소”.
5) 중앙일보(2022.1.15.). ‘수능 킬러문항 폐지’ 이재명 공약...물수능이 수험생 구원할까.
6) ‘영국남자’ 유튜브 채널(2019.11.13.). 한국 수능을 본 영국 10대들의 반응?!?
7) 내신 9등급제에서 1등급은 상위 4%, 2등급 4~11%, 3등급 11~23%, 4등급 23~40%, 5등급 40~60%, 6등급 60~77%, 7등급 77~89%, 8등급 89~96%, 9등급 96~100%로 나눠진다.
8)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국회의원 강득구 보도자료(2022). 수학 내신 평가에 대한 학생/학부모/교사 설문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2022.6.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