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 악인, 범죄자
아이들에게 용돈을 줘야 하는데 매번 현금을 뽑기가 힘들어 체크카드를 쥐어 주었다.
사실 아이들이 돈을 쓸 일이 뭐가 있나 싶지만, 가끔 옆집 아빠를 따라 옆집 동생과 놀러 갈 때 매번 얻어먹게 하는 게 미안해서 아이의 간식과 차비는 스스로 결제하게 하려고 주게 되었다.
처음 아이의 체크카드에 만원을 담아준 날이었다. 학원강의가 있었고, 오후 4시 아이의 하원시간이 되었을 때였다. 한참 강의를 하고 있는데 알림이 왔다.
‘ㅇㅇ문고 8100원 결제됨’
웬 8100원인가 싶었는데 한참뒤 또 알람이 왔다.
‘ㅇㅇ문고 1000원 결제됨’
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받질 않았다. 다시 걸었더니 전원이 꺼졌다고 한다. 배터리가 다 되었나 보다.
학원수업을 마치고 집에 왔다. 아이도 집에 와있었다. 아이에게 대체 뭘 산거냐고 물었다. 자기의 슬러쉬 500원, 절친의 슬러쉬 500 원해서 1000원을 썼고, 영어방과 후를 같이하는 누나가 7100원짜리를 골라서 사줬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과 절친은 과자를 못 먹어서 1000원어치 더 결제했다고 한다. 왜 누나에게 7100원이라는 그 큰 금액을 사줬냐고 묻자 누나가 사달라 해서 어쩔 수 없이 사줬다고 한다. 이건 누나에게 삥을 뜯긴 거였다. 몹시 화가 났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고 아이가 실내화를 잃어버렸다해서 자초지종도 들을 겸 ㅇㅇ문고에 함께 들렀다. 실내화를 사면서 물었다.
“어제 아이가 여기서 9100원을 결제했는데 그게 맞나요?”
빌런 아줌마는 당황하며 대답했다.
“그러게 내가 누나 사줘도 되냐고 몇 번을 물었는데 아이가 사준다고 답했어요. 카드에 만원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내가 그것까지 알아요. “
빌런 아줌마는 당황했는지 묻지도 않은 말을 계속한다.
“그러게.. 걔가 이 학교에서 유명해요. 문구점 앞에 서있다가 돈이 있는 것 같은 얘들한테 다가가서 꼭 사달라고 하고는 사준다는 대답을 들으면 비싼 걸 골라요. 동네아줌마들도 걔가 문구점 앞에 있다가 사달라고 하면 잘 사주곤 해요.”
정말 어이가 없었다. 빌런아줌마는 모든 걸 알고 있으면서 결제를 안 해주는 것 대신 본인 물건을 팔생각에 결제를 해주는 것을 택했던 것이다. 그래도 차근차근 얘기했다.
빌런 아줌마에게 이젠 그 누나 꺼 사준다고 하면 결제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고 선생님께도 이 같은 사실을 전달했다.
분이 풀리지 않았지만 선생님과 빌런 아줌마에게 당부하는 것으로 이번일은 마무리했다.
그리고 한 달이 흘렀다. 아이가 일기장이 없다고 해서 일기장을 사러 같이 문구점에 들어갔다. 오백 원이라고 한다. 무슨 일기장이 오백 원이나 하나 싶지만 결제해서 보냈다. 다음날이 됐는데 하루 만에 일기장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속창이 터진다.
오늘 아침은 오전부터 강의가 있어서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데 문구점을 또 들려야 했다. 오늘은 바로 학원으로 가야 하니 차로 움직인다.
내가 내려서 같이 일기장을 사러 가면 시간이 너무 지체될 거 같아 아들에게 카드만 들려 보냈다. 잠시 후 알람이 울린다.
“1000원이 결제되었습니다”
‘애가 일기장을 두 권 산건가? ’ 의아했다.
아이가 일기장을 들고 차로 들어왔다. 아이의 손에 들린 일기장은 한 권이었다. 빌런아줌마가 일기장 한 권을 천 원을 결제한 것이었다. 당장 아이와 함께 내려서 문구점으로 갔다.
들어가자마자
“미안해요. 미안해”
“내가 잘못결제했죠?”
하면서 오백 원을 환불해 준다.
“다음부턴 조심해 주세요.”
너무 바빠서 이 말만 하고 빌런 아줌마를 째려보면서 문구점을 나왔다.
두어 달이 흘렀다.
한참 외부강의 중이었다. 강의 중 휴대폰 알람이 왔다.
“천 원이 결제되었습니다.”
아이가 또 슬러쉬 한잔을 사 먹고 친구도 사주었나 보다고만 생각하고 두 시간의 강의가 끝난 후 집에 왔다.
한참을 기다리니 학교에서 하원 한 아이가 집에 돌아왔다.
“엄마 근데 멘토스가 하나에 400원인데 내가 두 개를 샀어. 그럼 얼마지?”
“응~? 너 800원을 썼는데 지금 천 원이 결제된 거야?”
아이도 의아했던 탓에 물어본 것이다.
정말 참을 수가 없어 네이버 로드뷰를 켰다.
ㅇㅇ문구 위치를 검색해 간판을 보니 전화번호가 적혀있었다.
당장 전화를 걸었다.
“우리 아이가 멘토스 두 개를 샀는데 지금 1000원 결제하신 게 맞나요~?”
또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답한다.
“아 미안해요. 미안해. 멘토스 하나에 200원인데 두 개를 샀는데 천 원을 잘못 결제했어요.”
확실하다. 빌런이다.
이젠 정말 확실하다.
“저 내일아이랑 같이 600원 받으러 가겠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 빌런아줌마는 이렇게 코흘리개들 돈을 부당취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오늘은 수능날 아침이었다.
수능날 아침은 9시 50분까지 등교하라고 알림장이 왔었다.
하지만 나는 ㅇㅇ문구에 600원을 받으러 가야 했기 때문에 서둘러 준비하고 9시에 집을 나섰다. 문구점 앞에 도착하니 9시 15분이었다.
내 얼굴을 보자마자 사과한다. 정말 이젠 사과를 그만 듣고 싶었다. 그냥 아이들을 삥 뜯는 게 습관이었던 것이다. 다른 말을 섞지 않고 600원을 돌려받고 한참을 빌런 아줌마를 째려봐주다 나왔다.
사실 600원은 너무 적은 돈이다. 그까짓 것 그냥 버려도 되는 돈이지만, 이런 식으로 자꾸 아이들에게 부당이득을 취하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에 귀찮아도 가서 돈을 돌려받고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사과를 받았다.
아이들은 학교에 등교를 했고 나는 분이 풀리지 않았다.
ㅇㅇ문고 맞은편에 투썸으로 들어갔다. 투썸 유리문사이로 ㅇㅇ문고가 너무 선명하게 보였다. 몇몇 아이들이 문구점 안으로 들어갔고, 불량식품을 사 먹고 있었다. 아이들은 끊이지 않았다. 수업시간이 되고 아이들의 발길이 떨어질 때까지 ㅇㅇ문구점을 째려보았다. 그렇게 한 시간을 째려보고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내가 지켜본다!‘
빌런:악인, 악당, 범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