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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상오리 Nov 02. 2022

4.  태백산에 오르면 기도가 하고싶어

[8개월 태백살이]

  어릴 적부터 아빠는 나를 데리고 산에 갔다. 어린 마음에 그저 산책 중간중간 먹는 간식이 좋아 아빠를 따라다녔다. 등산로 중간중간 놓인 벤치만 보면 간식 먹고 가자고 아빠에게 들러붙었다. 그럼 아빤 가방에서 과일이나 초콜릿 같은 것을 꺼내 입에 넣어주었고, 신이 난 나는 그 힘으로 다시 산을 올랐다.


계룡산10, 김장삼, 공유마당, CC BY


  아빤 산에 가면 숨통이 트인다고 했다. 어릴 땐 그 말의 의미를 몰랐다. 인생이 써져야 아메리카노의 맛을 안다고 했던가. 끝이 보이지 않는 수렁에 빠져 있는 듯한 시간을 만나고 나서야 산이 건네는 위로를 들을 수 있었다. 계절의 변화를 고스란히 담아내는 산은 "그렇게 급하게 가지 않아도 돼. 겨울이 가면 봄이 올거야." 하고 말하는 듯했다. 제각기 이리굽고 저리굽은 나무의 곡선들을 바라보며 저마다 다른 인생의 굽이들을 생각했다. 그때부터 산은 내게 포근하고 따사로운 존재였다.




 멀리서 본 태백산은 차가웠다. 내가 알고 있던 포근하고 따사로운 산이 아니었다. 안그래도 낮은 태백의 기온은 태백산 근처로 가면 뚝 떨어졌다. 낮은 기온 탓에 태백산에는 침엽수가 많다. 굽이굽이 굽은 나무의 부드러운 곡선은 온데간데 없고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직선만이 가득했다. 냉기가 가득한 산이라 생각했다.


  가까이서 보니 이 직선의 산은 곡선의 산과는 다른 방식으로 마음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키의 5배는 될 듯한 높은 침엽수들 아래서 서늘함을 느끼며 걷다보면 절로 경건한 마음이 들었다. 왜 옛날 사람들이 산신령을 믿고 인간 외의 영적인 존재를 상상했는지 알 법하다.


태백산26, 김장삼, 공유마당, CC BY


  태백산국립공원에서 시작하는 등산로 초입에는 단군을 모시는 성전이 있다. 성전 안에는 향을 피울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종교는 없지만 태백산을 오를 때면 단군성전을 방문해 기도를 했다. 그러고 나면 기도하는 간절함과 소중함을 가슴 한 켠에 쥔 채 산을 따라 오르게 된다.


   온 몸으로 영험하고 신비한 기운을 내뿜는 듯한 태백산에서 기도까지 하고 산을 오르면 인간의 힘으로는 다 알 수 없는 더 크고 영적인 영역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나라는 존재가 하찮게 느껴지고 그 하찮음을 곱씹으며 감사하고 겸허해진다.

   



  살다보면 누군가의 위로를 받으며 따뜻하게 안겨있고 싶은 순간도 있고, 나보다 더 큰 것, 영적인 것을 올려다보며 한없이 작아져 소망을 빌고싶은 순간도 있다. 곡선의 산과 직선의 산은 늘 그 자리에서 우리를 맞이한다. 위로가 필요한 순간, 기도가 필요한 순간. 산이 거기 있다.


직접 찍음, 태백산 정상에 서있는 작은 눈사람


*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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