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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화작가 김동석 May 12. 2024

성스러운 숲!

상상에 빠진 동화 0487

성스러운 숲!





영광 송이도!

저녁때부터 천둥번개가 치고 비바람이 몰아쳤다.

송이도에 머무는 동안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창문을 통해 몽돌 해변의 동태를 살폈다.

비바람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해안가를 밀치고 들어온 파도는  

몽돌과 부딪치며 새로운 소리를 연출했다.


‘솨! 솨! 솨아!’

창문 틈 사이로 들어온 바람소리는 심장을 파고들었다.


“육지로 나갈 수 있을까!

오늘은 꼭 나가야 고속버스를 탈 수 있는데.”

며칠 째  

송이도에 갇힌 신세가 된 명수는 걱정이 앞섰다.


"항구에 나가보자!"

명수는 옷을 두껍게 입은 위에 우비를 입었다.

답답한 방을 나가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항구를 본다는 것보다  

사실은 섬을 지키는 숲 속의 왕소사나무가 궁금했다.


“왕소사나무를 봐야겠어!”

항구를 살핀 명수는 비를 맞으며 왕소사나무 숲을 향했다.

빗방울이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어두워지기 전에 갔다 와야지!”

비바람을 맞으며 서있을 왕소사나무들이 궁금했다.


‘솨아아! 솨아아! 쏴아아 아!’

숲길을 걷는데 나무들과 들풀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멀리  

해안가에 바닷물이 들어오는 게 보였다.


"무섭군!"

비 오는 날 혼자 숲으로 들어가는 자신이 무서웠다.

검은 먹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었다.

비바람이 몰아치며  

숲을 휘졌고 지나갈 때마다 숲은 작은 울림으로 답했다.


“설마!

무슨 일이 있겠어.”

하지만 명수는 등골이 오싹했다.


“혹시!

멧돼지라도 나오면 어떡하지?”

명수는 온갖 생각을 하며 왕소사나무 숲으로 향했다.

가끔  

길이 미끄러워 넘어질 뻔했다.


"다 왔다!

저기 팔각정이 있다."

왕소사나무 숲 근처 팔각정이 보였다.

소사나무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도 부딪치며 소리 내는 것도 선명하게 들렸다.


"고요한 숲이 이상해!

꼭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소리가 달라!

다다닥! 다다닥! 다다닥!

소나무나 참나무가 부딪치는 소리 하고 달라."

왕소사나무 숲에 도착한 명수는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멋지다!

비 오는 날 팔각정에 오르는 것도 나쁘지 않군!"

파도가 밀려와 몽돌에 부딪치는 소리가 숲까지 들렸다.

그 소리는 왕소사나무에게 세상의 이야기를 전하는 듯했다.

소곤! 소곤소곤! 파도소리는 분명 왕소사나무에게 소곤거리고 있었다.

팔각정에서 내려다보는 송이도 바다가 더 아름다웠다.

명수는 두려움도 잊고 눈에 보이는 것들을 가슴에 담았다.


어쩌면

송이도에 머물러야 할 것들이 명수 가슴에 담아주는 듯했다.


‘우두둑! 두둑! 우두두두!’

왕소사나무 가지와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요란했다.

거센 바람은  

나무를 뿌리 채 뽑아버릴 기색이었다.

몇 백 년 동안 비바람을 버틴 왕소사나무였다.

하지만  

휘청거리는 것을 보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왕소사나무는 쓰러지지 않았다.

어린 소사나무도 묵묵히 바람을 맞이하고 비를 맞았다.

명수도  

거센 바람에 휘청거렸다.


“으스스한데!”

명수는 왕소사나무 군락지를 향해 올라갈수록 두려웠다.


"고요한 숲!

성스러운 숲!

신들의 정원!

보름달이 뜨면 도깨비들이 도깨비방망이를 만드는 곳!"

왕소사나무는 천둥번개가 치면 천상과 지상의 연결고리를 하고 있는 듯했다.


“가지들이 뻗으며 천상의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것 같다!”

명수는  

가만히 서서 숲 속 이야기를 들었다.

한 그루  

어린 소사나무가 되어 있었다.



바람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빗방울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바람이 잦아들었다!

비도 멈추겠지."

송이도에 몰아치던 비바람이 멈춘 것 같았다.

명수는 바람도 잠잠해지고 비도 멈춘 왕소사나무 숲에서 숲 속 이야기를 들었다.


'뚝! 뚝!'

나뭇가지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강한 비바람에 버티지 못하고 왕소사나무 한 그루가 넘어졌다.


"나무가 울다니!"

명수는 왕소사나무 숲에서 나무가 우는 소리를 들었다.


"그렇지!

나무도 생명을 가졌으니 아프면 울겠지."

명수는 사람만 눈물 흘리는 줄 알았다.

하지만  

왕소사나무 숲에 올라 나무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아무도 듣지 못한  

나무의 울음소리에 명수는 홀린 기분이었다.


“누가 심었을까!”

왕소사나무 숲에서 명수는 전설을 찾고 있었다.


“이곳만!

왕소사나무가 많은 이유가 있을 거야.”

명수는 나무에서 떨어지는 눈물을 손으로 받으며 조용히 숲 속을 지켜봤다.

왕소사나무들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바람이 부는 반대 방향으로 가지를 뻗어 봐!”

왕소사나무가 주변에 있는 어린 소사나무에게 말했다.


"알았어요!

어린 소사나무들은 바람이 부는 반대 방향으로 가지를 길게 뻗었다.


"몇 백 년을 버티려면 자연의 힘을 거스르면 안 돼!"
대왕 소사나무는 오래 사는 법을 알았다.


"네!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온몸을 기울일게요."

어린 소사나무들은 바람의 힘을 거스르지 않았다.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몸을 비틀어 가며 바람과 함께 춤을 췄다.


"그렇지!

아주 잘하고 있다."

왕소사나무는 어린 소사나무들이 바람과 함께 춤추는 게 맘에 들었다.


"히히히!

그래도 소용없어.

우린 바람에 날아가지도 않으니까."

넝쿨식물은 소사나무를 죽이기 위해 나무를 휘감고 올라갔다.


숲 속  

나무와 넝쿨식물은 서로 숲을 차지하려고 치열한 싸움을 했다.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싸움이었다.


“히히히!

이 숲을 차지하고 말 거야!

수백 년을 살아도 소용없어.

너희들은  

곧 죽은 목숨이나 다를 바 없다니까.”

넝쿨식물은 무럭무럭 자라는 소사나무가 싫었다.

수백 년을 살아가는 왕소사나무는 더욱 싫었다.


"들었지!

넝쿨식물을 조심해.

비바람보다 더 무서운 놈들이야."

왕소사나무는 어린 소사나무들이 살아남기를 바랐다.


"알겠어요!"

어린 소사나무들도 넝쿨식물이 몸을 휘감지 못하게 노력했다.


"히히히!

그래도 소용없다니까.

벌써!

저기 아래 숲에 사는 소사나무들은 모두 죽었어."

넝쿨식물은 숲을 조금씩 차지하며 왕소사나무 숲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웃기지 마!

너희들은 절대로 우리를 죽이지 못해.”

소사나무들은 넝쿨식물이 목을 조여 올수록 더 힘을 냈다.


“땅에 의지하고 살지 욕심을 부리다니!

너희들은 곧 사람들이 가져온 칼날에 목숨을 잃을 거야.”

왕소사나무는 넝쿨식물이 맘에 들지 않았다.

나무를 죽이는 재미에 살아가는 넝쿨식물을 가만두도 싶지 않았다.


"잘 들어!

우리는 사람들이 숲에 들어와 소사나무를 톱으로 잘라갔다.

그 소사나무는 땔감이나 집을 짓는 데 사용했다.

하지만   

우리는 수백 년을 살아남은 소사나무야.

살겠다는 강한 의지만 있으면 절대로 죽지 않아.

그러니까!

넝쿨식물을 두려워하지 마."

왕소사나무는 어린 소사나무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네!

넝쿨식물이 내 몸을 감도록 허락하지 않을 거예요."

어린 소사나무가 대답했다.


"히히히!

웃기는 소리.

숲 속을 보라고!

이제 몇 그루 남지 않았다는 걸 알아야지."

넝쿨식물도 포기하지 않았다.

왕소사나무 숲만 점령하면 송이도 숲은 넝쿨식물의 천국이 되는 셈이다.


“아파도 껍질을 도려낼 수 있어야 해!

넝쿨식물이 달라붙은 껍질을 도려 내야 한다.”

소사나무들은 넝쿨식물의 공격을 막기 위해 스스로 껍질을 벗겼다.

죽을 만큼 아프지만 꾹 참았다.


“춥고 힘들어!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

대왕 소사나무는 어린 소사나무들이 죽어가는 것을 막고 싶었다.


"히히히!

어린것이 죽는 걸 봤지.

우린!

이렇게 무서운 존재란 말이야."

넝쿨식물은 더 넓은 땅을 차지하려고 했다.


어린 나무들을  

죽이고 숲 속을 다 차지하는 듯했다.


"어림없지!"

소사나무들은 넝쿨식물에게 호락호락 숲을 허락하지 않았다.

특히

왕소사나무 숲에서는 더 넓은 땅과 햇살을 차지할 수 없었다.


“누가 이기나 보자!”

넝쿨식물은 더 많은 씨앗을 땅에 뿌렸다.

왕소사나무 숲을 차지하겠다는 넝쿨식물의 집요함은 계속되었다.

소사나무들도  

살아남기 위해 이리저리 몸을 비틀고 껍질을 벗겨냈다.


“가지를 길게 수평으로 뻗어야 해!”

소사나무들은 햇살에 넝쿨식물이 말라죽기를 바랐다.


“가지를 비틀어!  

하늘을 향해 머리를 쭉 내밀고 살아남아야 해.”

왕소사나무는 어린 소사나무에게 크게 외쳤다.






영광송이도/왕소사나무숲




새벽부터

바닷물이 빠지자 송이도 갯벌이 드러났다.


'통! 통! 통! 통!'

경운기 소리가 해안가에 요란했다.

마을 이장을 비롯해 마을 사람들이 조개를 잡으러 갯벌로 나갔다.


“오늘 저녁에는 백합구이를 먹어야지!”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갯벌에서 마을 사람들은 백합과 맛조개, 그리고 동죽을 잡았다.


맛조개와 동죽을 삶아 새콤하게 양념을 만들어 무쳐먹으면 정말 맛있었다.

또 갯벌에서 잡은 백합을 일에 싸 구워 먹으면 달콤한 향기가 가득했다.


“물이 들어온다!

이제 나갑시다.”

마을 이장은 갯벌에 들어오는 물을 바라보며 말했다.

물은 빠르게 갯벌을 지워갔다.

넓은 갯벌을 순식간에 먹어치우는 괴물 같았다.


“빨리! 빨리! 나와요.”

마을 사람들은 욕심내지 않았다.

오늘 못 잡으면 내일 또 잡으러 오면 되었다.

마을 사람들을 태운 경운기가 달리기 시작했다.


‘통통통통! 통통통통!’

고양이 샘은 해안가에서 마을 사람들을 지켜봤다.


“나도 먹고 싶어요!”

샘은 어부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하나씩 주는 조개를 까먹었다.


“병어와 조기를 잡으면 좋겠다!”

샘은 바다에서 잡은 병어와 조기를 좋아했다.

만선을 한 배가 들어올 때는 어부들도 고양이들에게 고기를 푸짐하게 던져주었다.


“샘!

오늘은 백합은 없다.”

마을 이장이 샘에게 동죽과 맛조개를 던져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샘은 마을 사람들에게 인사했다.

백합을 잡지 못해 샘도 먹을 수 없었다.


“맛있겠다!”

샘은 동죽과 맛조개를 들고 팽나무 위로 올라갔다.

긴 발톱과 송곳니를 이용해 단단한 조개를 깼다.


“역시  

조개는 맛있다니까!”

샘은 맛조개와 동죽을 까서 먹으면서 몽돌 해변을 봤다.


“저 녀석들은 이 맛을 모를 거야.”

몽돌해변을 걷고 있는 고양이들을 보며 샘이 말했다.

배가 부른 샘은 해안가 팽나무에서 내려와 왕소사나무 숲으로 달렸다.


“오늘은

왕소사나무에 올라가서 놀아 볼까!”

길게 늘어진 왕소사나무를 오르기 시작했다.

소사나무 위에 올라가 내려다보는 바다 풍경이 아름다웠다.




그림 나오미 G/영광송이도(왕소사나무숲)





고양이 한 마리가 왕소사나무 위에 있었다.

이곳을 지키는 유령 같았다.


“안녕!

이름이 뭐니?”

왕소사나무 숲 이야기를 듣고 있던 명수가 인사하며 물었다.


"샘!

장화를 훔친 고양이 샘!

동화책 주인공 샘입니다."

하고 말한 샘은 깜짝 놀랐다.

왕소사나무에 올라간 걸 들킨 기분이었다.


“나무에는 왜 올라간 거야?”

명수는 도망도 안 가고 나무 위에서 주렁주렁 매달린 샘이 걱정되었다.


“여기서!

바다를 내려다보면 너무 멋져요.”

샘이 말하자


“그렇구나!

나도 올라가 볼까?”

하고 명수가 묻자


“안 돼요!”

샘이 소리쳤다.


“왜?”


“무거운 사람이 올라오면 나무가 부러질 수 있어요!”

샘은 나무를 걱정했다.


“알았다!”

샘의 말을 들은 명수는 왕소사나무에 오르는 걸 포기했다.


“녀석!

나무를 지키려고 하다니.”

명수는 샘이 나무를 걱정하는 게 신기했다.


“샘!

과자 먹을래?”

명수는 주머니에 넣어 둔 과자가 손에 잡히자 샘에게 물었다.


“아니요!”

샘은 과자 먹는 것보다 나무 위에서 바다를 구경하는 게 더 즐거웠다.

샘은 항구에 들어오는 어선을 보고 나무에서 내려왔다.


“고기잡이배가 들어와서 항구에 가야 해요!”

샘은 명수에게 인사를 하고 항구를 향해 달렸다.

지금 가지 않으면 내일 아침까지 굶어야 한다.


“아저씨! 아저씨!

고기 많이 잡았어요?”

샘은 배에서 내리는 어부에게 물었다.


“농어랑 꽃게를 많이 잡았다.”

어부는 조금 기다리라는 신호를 주고 마을 사람들에게 갔다.


“세상에!

그 맛있는 농어를 잡다니.

농어!

먹고 싶다.”

샘은 어부의 집에서 말린 농어를 훔쳐 먹은 적 있었다.

그 뒤로 농어를 먹어본 지가 오래되었다.


“꽃게도 좋아!

그런데 살아있으면 안 되는데.”

샘은 꽃게 집게에 물린 적이 있었다.

수염이 모두 꽃게 집게에 싹둑 잘라 나갔었다.


숲에서 내려온 명수는  

주민의 안내로 고개 너머 ‘맛등’으로 갯벌 체험에 나섰다.

맛이 좋고 큰 맛조개가 많이 나와 지명이 ‘맛등’이 된 모래 갯벌이었다.

바닷물이 빠지면  

사(4) 킬로미터 떨어진 대각이도까지 모래밭이 펼쳐 쳐 장관을 이루는 갯벌이었다.

명수는 조개 잡는 것보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 갯벌을 걷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갯벌은 보물이야!”

명수는 모래 갯벌을 걸으며 혼자 중얼거렸다.


“백합조개와 맛조개가 나온다니 얼마나 소중한 곳인가!

또 그 맛있는 낙지가 나오는 갯벌이 아닌가.”

송이도에 오는 이유는 몽돌해변과 왕소사나무를 보는 것보다  

모래 갯벌에서 잡은 백합조개와 맛조개를 먹을 수 있다는 것도 큰 이유 중 하나였다.


“걸을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야!

특히 사람이 많지 않은 섬에서 혼자 걷는 여유를 즐길 수 있어 너무 좋아!”

갯벌에서 나온 명수는 해안가에 앉아 배낭에 빵과 물을 꺼냈다.


멀리

낚시하는 사람이 보였다.


"혼자 낚시를 할까?"

해안가 끝자락에서 낚시하는 여인이었다.


"그렇지!

혼자는 아니겠지."

바위 너머로 낚싯대 하나가 보였다.


“세월을 낚는 건가!”

명수는 한 참 낚시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리고

송이도 전망대를 향해 다시 숲길을 걸었다.


"신령스러운 곳!

앞으로도 수백 년을 더 살았으면 좋겠다."

숲으로 접어들며 명수는 왕소사나무 숲을 생각했다.


"겨울에 와야지!

눈 내린 풍경을 보고 싶어.

하얀 눈과 수백 년 된 왕소사나무의 멋진 풍경!

생각만 해도 좋아."

명수는 다시 올 것을 기대하며 송이도 전망대를 향해 걸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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