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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화작가 김동석 Apr 12. 2022

마법을 부린 겨울!

달콤시리즈 172

마법을 부린 겨울!





“눈이 내리면 좋겠다!”

겨울이 오는 문턱에서 날씨라도 흐리면 사람들이 눈을 기다렸다.


"무엇 때문일까?"

우리가 보는 세상에 눈이라는 또 하나의 빛이 마법을 부리기 때문이었다.

시간과 공간이 지배하는 곳에 눈은 마음을 정화하고 엄숙하게 해주는 역할을 했다.


이처럼 자연은 경이로움 자체이다.

거리를 청소하는 사람들에게 눈은 고통과 힘겨움을 선물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선물했다.

무엇이 본질이고 무엇이 현상인지 알 수 없는 게 자연의 이치다.

눈 오는 날은 소녀는 일찍 숲으로 달려갔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에서 맞이하는 외광은 소녀의 가슴을 설레게 하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아름다운 게 또 있을까!”


나뭇가지에 걸터앉은 눈 사이로 빛이 스며들기 시작하면 고요한 숲 속에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마법을 배워야겠어.”

자연이 빚어낸 아름다움은 도자 공이 수십 년간 땀 흘려 빚은 달 항아리보다도 더 아름다웠다.

나무가 되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소녀에게 눈이 내린 숲은 소녀의 닫힌 가슴을 열게 해 줬다.


“나무를 그리길 잘했어!”


언제부터인가 소녀는 나무가 되는 것보다 나무를 그리는 게 더 재미있었다.

나무가 되고 싶었던 소녀의 꿈은 가슴속 어딘가에 꼭꼭 숨겨 놓고 있지만 나무를 그리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눈이 소복이 쌓인 나무가 예쁘다!

눈이 떨어지기 전에 그려야지.”


소녀는 무거운 눈을 지탱하고 있는 나무를 그리다 가끔 걱정을 했다.

그리는 도중에 눈이 떨어져 내릴까 봐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안 돼!”


하지만 

나뭇가지는 소녀의 말을 듣지 않고 무거운 눈을 밀쳐냈다.


찰나의 순간은 일어났다.


그리고 

그 순간은 소녀의 가슴에 남아있을 뿐이다.

소녀가 겨울을 좋아하는 이유는 눈이 내리기 때문이었다.

눈 내린 숲에 가서 숲을 그릴 수 있어 너무 행복했다.

또 봄, 여름, 가을에 보지 못한 외광을 찾을 수 있는 이유도 있었다.

비가 내리면 외광을 찾기 어렵지만 

눈이 내리는 날은 더 아름다운 외광을 찾을 수 있었다.

물론 비가 갠 뒤에 찾는 외광도 아름다운 게 많았다.


나무가 되고 싶었던 소녀는 

벌써 겨울을 담은 작품이 하나 둘 늘어갔다.


기다림은

감정의 파도를 일으켰다.

숲 속 어딘가를

아직도 걷고 있을 그분을 위한 마중일까!




그림 나오미 G 



“앙상한 가지가 맘에 들어.”


눈 내린 거리에 우뚝 선 두 그루 나무를 캔버스에 그리며

소녀는 소박한 아름다움을 보는 듯했다.

하찮게 생각할 자연 속에서 삶의 미를 보여주는 소박한 나무의 일상이 소녀의 마음을 움직였다.


“부부였을까!”

소녀는 나뭇가지 사이로 흐르는 연민의 정 같은 것이 보였다.

무질서하고 거칠어 보이는 나뭇가지가 마법을 부리기 시작했다.


“구름 꽃을 피우기 위함일까!”


산보다 더 높아야 구름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듯 

두 그루의 나무는 앞산보다도 훌쩍 키가 켰다.

두 그루의 나무는 소녀가 그릴 수 없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마치 

마법을 부리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듯 삶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다.


“좋아! 

하늘만 보이는 데로 그리면 되겠어.”


소녀는 아름답고 큰 구름을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흐느적거리고 가느다란 실 같은 구름이어도 좋았다.

자연이란 어느 형태보다 눈에 보이는 데로 음미할 필요가 있었다.


“움직임이 없는 것 같지만 잔잔함이 흐르는 것도 좋아!”


소녀가 바라본 세상은 멈춘 듯 보였다.

하지만 눈이 녹아내리고 하늘에서는 미세한 구름들이 잔잔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소녀의 섬세한 감성을 자극하기 시작한 것은 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하늘을 향한 두 그루의 나뭇가지와 잔잔하게 흐르는 구름이었다.


구름 꽃을 피우려고 비우고 또 비웠는가!

아니면

파란 하늘을 잡으려는 기지개인가!




                                     그림 나오미 G 




“구름을 

붙잡기 좋은 흐름이야!”


소녀의 손이 부지런히 움직였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구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하늘과 땅 

그리고 나무와 구름이라는 가운데서 몰입하고 또 몰입했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구름에 가린 

햇살이 조금이라도 밝아지면 미세한 구름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소녀가 

몰입하며 보는 풍경은 마법처럼 생생한 색상을 전하면서 사라졌다.

시각적 역동성이 없는 것 같았지만 

캔버스에서 느끼지 못한 미묘한 뉘앙스를 느끼게 했다.


“눈부신 색조가 없어도 좋을까!”


소녀는 고요한 캔버스 속 풍경이 조금 걱정되었다.

보이는 데로 그리고도 화려하지 않은 색조에 감성이 꿈틀거렸다.


“이대로 좋다!”


붓을 내려놓으며 나무가 되고 싶었던 소녀는 비로소 자연 앞에 겸손한 감성을 엿볼 수 있었다.


“욕심부린다고 

훌륭한 작품이 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위안을 주는 말을 하며 소녀는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깊은 향이 우러나는 홍차가 마시고 싶었다.


“눈 덮인 숲을 보며 

마시는 홍차는 맛이 더하지!”


홍차를 마시며 소녀는 나무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자연을 모방하지만 결코 부끄럽지 않은 소녀는 캔버스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 

더 기다리세요!”


오른쪽 나무가 말하는 게 들렸다.


기다림에 익숙해져야 했다.

찰나의 순간도

마법을 부리는 순간도 기다림 속에 있었다.


“오늘은 

큰 구름이 오지 않을 거야!”

하고 왼쪽 나무가 말했다.


“기다리세요!

열정이 있어야 작품도 좋아지는 것처럼 

자연이 주는 최고의 선물은 

기다릴 때 오는 걸 잊지 마세요!”


“알았어.”

나무들의 이야기 속에서 

소녀는 자신도 나무가 되었다면 이렇게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가 되었다면 

나도 이렇게 숲에서 다른 나무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을 거야!”


소녀는 나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끔 하늘을 쳐다봤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더 멋진 구름이 나뭇가지에 매달렸다.


“이처럼 

자연은 순간순간 변하는 것을!”


앞으로 나아가는 자연이 좋았다. 

나뭇가지도 하늘을 향해 오르고 구름도 앞으로 나아갔다.

이처럼 자연은 마법 같은 순간을 소녀에게 보여주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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