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선옥!
우물에서 빨래하는 선옥을 보고 선심이 뛰어왔어요.
선심은 선옥언니에게 다가가 옆에 앉았어요.
"왜!
뭐 하러 왔어?"
하고 선옥이 묻자
"언니!
복심언니가 할머니에게 고자질하고 있어요."
하고 선심이 말하자
"걱정 마!
할머니 무섭지 않아."
하고 선옥이 말하며 빨래를 계속했어요.
선심은 곁에서 가만히 앉아 있었어요.
빨래를 다한 선옥은 선심이 손을 잡고 집으로 향했어요.
선옥은 밭으로 향했어요.
엄마 하는 일을 도와주러 갔어요.
"엄마!
서당에 가서 글 배우고 싶어요."
하고 선옥이 말하자
"서당!
글을 배운다고."
하고 엄마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했어요.
"네!
학교에 가지 않아도 글 배울 수 있다고 했어요."
선옥은 서당에 대해 들은 이야기를 자세히 해줬어요.
엄마는 선옥을 학교에 보낼 수 없어 가슴이 아팠어요.
그런데
선옥은 호적이 말소된 사실도 모르고 있었어요.
"내일 같이 가보자!"
엄마도 선옥이 서당이라도 다녔으면 했어요.
그날 밤!
선옥은 잠을 설쳤어요.
학교에 가지 못한 이유가 생각났어요.
선옥이 태어난 뒤!
한 달 만에 아빠가 돌아가셨어요.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선옥이 태어나서 아빠가 저주받아 돌아가셨다고 했어요.
저주받은 아빠!
태어나고도 축하받지 못한 딸!
갓 태어난 아이가 무슨 죄가 있었을까.
아빠가 돌아가신 뒤!
한 달 만에 선옥은 엄마와 함께 친정으로 쫓겨났어요.
언니 은옥은 할머니가 키운다며 엄마와 떨어뜨려 놨어요.
친정집에 온 엄마는 매일 울며 시간을 보냈어요.
사랑한 남편도 잃고 시댁에서 쫓겨난 신세를 한탄하기도 했어요.
큰 딸 은옥도 보지 못하고 갓난아이 선옥만 바라보며 살았어요.
그 뒤!
아무것도 모르는 선옥은 엄마를 따라 재혼한 새아빠집에서 살았어요.
새아빠집에서도 엄마가 데려온 아이라고 할머니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살았어요.
엄마도 새아빠집에 살며 시댁식구들 눈치만 보며 데려온 선옥을 챙기지 못했어요.
"호적!
어른들은 그것이 중요할까.
언니는 학교에 다니겠지."
선옥은 백수할머니와 함께 사는 은옥 언니가 생각났어요.
"보고 싶다!
언니도 나 보고 싶겠지.
그런데
한 번도 안 찾아오다니.
은옥언니 나빠!"
선옥은 울었어요.
옆에서 자는 복심이 들을까 봐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어요.
동생들은 다 학교에 다니는 데 자신만 학교에 다니지 못한 것이 속상하고 슬펐어요.
"아빠!
아빠가 죽지만 않았어도 학교에 갔을 텐데.
아빠! 언니!
보고 싶어요."
선옥은 밤새 친아빠와 은옥언니를 생각했어요.
기억나지 않은 친아빠가 보고 싶었어요.
집에 우물이 생긴 뒤!
선옥은 샘터에 물 길러 다니지 않았어요.
복심이 마시는 물은 샘터에서 떠와야 한다고 할머니와 엄마에게 말했어요.
하지만 선옥은 샘터에 가지 않았어요.
복심은 선옥이 말을 듣지 않자 동생들만 때렸어요.
밥을 먹지 않을 때도 있고 짜증을 낼 때도 있었어요.
엄마는 떡을 만들어 줄 때도 복심에게 제일 먼저 주었어요.
또 다른 자녀들보다 제일 크게 잘라 주었어요.
선옥은 엄마랑 밭에 가 일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복심에게 잔소리 듣는 게 더 힘들었어요.
선옥은 밭에서 일할 때 엄마의 사랑을 느꼈어요.
엄마는 선옥이 새아빠집에서 힘든 생활을 하지만 마음속으로 가장 의지하고 사랑하는 딸이었어요.
"선옥아!
학교에 가지 못하니까 속상하지."
밭일을 멈춘 엄마가 바닥에 앉고 선옥을 보고 말했어요.
"엄마는 말이야!
널 잘 키우고 싶어.
학교는 가지 않아도 잘 키우고 싶어.
아빠가 죽고 할머니집에서 쫓겨났을 때는 죽고 싶었어.
그런데
너를 두고 엄마는 죽을 수 없었어.
백수할머니가 저주받은 딸이 태어나 자기 아들이 죽었다고 했을 때 너랑 같이 죽고 싶었어.
그런데
그 집에서 쫓겨난 뒤 너를 포기할 수 없었다.
엄마는 널 사랑해!
엄마가 힘이 없어 학교에도 보낼 수 없지만 말이야.
엄마는 너를 사랑해.
알았지!"
하고 말한 엄마가 서럽게 울었어요.
선옥이도 울었어요.
엄마의 사랑이 뭔지 알았어요.
말하지 않아서 엄마가 자신을 미워하는 줄 알았어요.
엄마가 새아빠와 낳은 자식만 좋아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엄마는 선옥일 제일 사랑한다는 말을 했어요.
선옥인 기분이 좋았어요.
엄마의 사랑을 알게 된 선옥은 달려가 꼭 안겨 한 참 울었어요.
마을마다 학교에 가지 않은 친구들이 많았어요.
선옥처럼 호적이 없어 학교에 못 가는 친구는 없었어요.
집안일을 돕는 친구들도 있었고 여자는 살림만 잘하면 된다는 부모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한 친구도 있었어요.
선옥은 아랫마을에 사는 옥자랑 점자와 가장 친하게 지냈어요.
가끔
윗마을에 사는 또래 남자친구들을 만날 때도 있었어요.
만식과 금수도 학교에 다니지 않았어요.
만식은 부모가 아파서 학교에 가지 않고 농사일을 했어요.
금수는 부모님이 안 계시고 할머니와 함께 사는 아이 었어요.
학교에 다니지 않는 친구들은 서로 위로하고 의지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었어요.
선옥도 만식과 금수를 만나면 기분이 좋았어요.
모두 집안일이나 농사일이 바빠서 자주 만날 수는 없었어요.
마을 결혼식이나 명절 같은 날 보는 게 전부였어요.
선옥은 엄마와 함께 이웃마을 서당에 갔어요.
서당에는 한문을 배우러 오는 아이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낮에는 아이들이 별로 없었어요.
훈장님!
글자를 몰라도 다닐 수 있죠?"
하고 엄마가 물었어요.
훈장님은 한 참 생각했어요.
"글자를 모른다고!
학교는 안 다닌 거요."
하고 훈장님이 말하자
엄마는 선옥이 학교에 가지 못한 사정을 말해주었어요.
"일단!
내일부터 보내시오."
하고 훈장님의 대답을 듣고 엄마와 선옥은 집으로 향했어요.
선옥은 신났어요.
옥자와 점자에게 서당에 다닌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집에 우물이 생기자
선옥은 샘터에 물 길러 가는 것보다 밭일하러 가는 날이 많았어요.
학교에서 돌아오는 동생들 밥 챙겨주는 일도 선옥이 몫이었어요.
끼니마다 아픈 새아빠 밥도 준비했어요.
선옥은 서당에 갔지만 슬펐어요.
한글도 읽을 줄 모르는 선옥에게 서당에서 배우는 한자는 더 어려웠어요.
"큰일이다!
한글을 읽을 줄 알아야 한자를 배우지.
한글도 읽지 못하는 데 무슨 한자를 배우겠어."
서당 훈장님은 선옥을 보고 신세타령하듯 말했어요.
선옥은 서당에 가야 하는데 집안 일과 밭일이 많았어요.
서당에 가는 것보다 일하는 게 우선이었어요.
글자를 읽지 못하니까 답답하고 속상했지만 엄마 일을 도와주는 게 더 중요했어요.
낮에 일만 한 선옥은 서당에 와서 깜빡깜빡 졸았어요.
훈장님이 말하는 말도 들리지 않고 글도 읽을 수 없어서 머리가 아팠어요.
"어디 갔다 와!
빨래는 안 하고 뭘 한 거야."
할머니가 방에서 나오며 선옥을 보고 말했어요.
"서당에 갔다 왔어요!"
"서당!
글은 배워서 뭐 하려고.
여자는 글 몰라도 시집만 잘 가면 된다.
집안 살림이나 잘하고 배울 생각이나 해."
하고 할머니가 못마땅한 듯 한 마디 했어요.
선옥은 서당을 며칠 다니다 포기했어요.
엄마를 돕고 집안 일 하는 게 더 중요했어요.
새아빠가 둘째 아들(명득)을 찾았어요.
명득은 호기심이 많아 이것저것 가지고 놀다 망가뜨리는 일이 많았어요.
감나무 밑에서 놀던 명득을 선옥이 데리고 왔어요.
"커서 뭐가 될 거야!
형처럼 공부를 열심히 해야 훌륭한 사람이 되지."
새아빠가 명득을 혼냈어요.
명득은 공부는 안 하고 밖으로 나가 친구들과 놀기만 했어요.
"맞아야!
정신 차릴 거야."
하고 새아빠가 말했지만 명득은 대답하지 않았어요.
"형!
열심히 한다고 해."
하고 막냇동생(명일)이 말했어요.
대답하지 않은 명득은 새아빠에게 회초리로 종아리를 몇 대 맞았어요.
큰아들(강일)은 중학교에 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어요.
집에서도 강일에게는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어요.
강일이만 좋아하는 새아빠가 미울 때도 있었어요.
오랜만에!
선옥은 장독대를 향했어요.
큰 간장항아리 뚜껑을 열고 얼굴을 비췄어요.
간장 위로 선옥의 얼굴이 보였어요.
"오랜만이야!
잘 지냈지."
하고 장독대 요정이 말했어요.
"네!
잘 지냈어요.
샘터에 물 길러 가지 않아서 좋아요."
"그렇지!
샘터에 가는 길이 멀었지.
그런데
지켜보니까.
샘터에 가는 시간만큼 밭에 가서 일하잖아.
일은 줄어들지 않았지!"
장독대 요정의 말이 맞았어요.
선옥은 일이 줄어들지 않았어요.
샘터에 물 길러 갈 때는 꽃도 보고 나비와 꿀벌과 이야기도 했어요.
그런데
샘터에 가지 않은 뒤로 그런 시간이 없었어요.
밭일과 집안일이 더 많아졌어요.
선옥은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새아빠 말이 생각났어요.
공부를 열심히 하는 남동생(강일)이 훌륭한 사람이 될 것 같았어요.
선옥은
창고에서 놀고 있는 명득을 찾아갔어요.